6시가 넘으니 하늘이 밝아온다. 무곰파가 춥다고 소문난 곳이라 준비를 철저히 했더니 다행히 춥지않게 잤다. 슬리핑백에서 나오기 싫어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6시30분이 되자 법당에서 종소리가 난다.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내려갔다. 스님이 물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나도 따라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스님과 함께 절을 했다. 나는 한국식으로 3번 하는데 스님은 5번을 티벳식으로 한다. 따라해보고 싶은데 잘 안된다. 오체투지는 내게는 어렵다.

법당을 나와서 올라가려는데 스님이 작은 법당문을 열어주신다. 작은 법당은 또 다른 분위기다. 스님께서 초를 주시면서 불을 켜게 해주신다. 쭘밸리의 성지 무곰파에 불을 밝히니 뿌듯하다.

짐을 챙기고 부엌으로 가서 아침으로 또 감자를 먹었다. 호주팀은 어제저녁에 감자를 질리게 먹어서 괜찮다며 차만 마신다. 비상식량으로 비스켓을 챙겨왔단다. 우리는 감자로 배를 채웠다. 첩첩 산중 쭘밸리 구석탱이에서 감자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절은 원래 숙박비를 받지 않는다. 기부나 시주를 받는 법인데 얼마를 드릴지 난감하다. 우리 중 유일하게 티벳말을 하는 포터 카상에게 물어보니 우리 두 사람이 1500루피를 내면 된단다. 2천루피를 주방스님 손에 꼭 쥐어드렸다. 우리 장갑 중 남는 것 하나도 같이 드렸다. 카상이 주방스님께 티벳말로 뭐라뭐라 설명한다.

무곰파를 떠나며
무곰파를 떠나며

무곰파를 떠나는데 큰스님과 주방스님이 배웅을 나오셨다. 인사를 드리니 큰스님께서 한국에서 왔냐고 물으신다. 우리 여행의 안녕을 빌어주신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날아오를 듯 가볍다. 발목은 여전히 아프다.

무곰파를 내려오는데 야크한마리가 길을 막고 서있다. 남편과 빔이 야크를 피해서 길을 도는데 내가 가까이 가니 야크가 길을 비켜준다. 야크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올라올 때 힘겹게 올라온 길을 뛰듯이 내려왔다.

중국 국경으로 장보러가는
중국 국경으로 장보러가는

말을 타고 두 사람이 올라온다. 중국 국경으로 가는 중이란다.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가는중이란다. 당일에 가능하단다. 신나게 달려가며 우리에게 인사를 날려준다.

쭘밸리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중국이 일년에 한 두번씩 무상원조를 해준단다. 티벳족이 많이 사는 네팔인데도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간 이유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못 오는 이유와 같다.

쭘밸리 사람들은 중국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사원이나 집에는 달라이라마를 모시고 있다. 여러 라마들 사진들이 큰 사원에 걸려있는데 그중 달라이라마가 가장 큰 자리를 잡고 있다. 다들 달라이라마를 존경한다.

라첸곰파
라첸곰파

내려오는 중에 어제 들르지못한 라첸곰파에 들어갔다.

윤장대가 엄청 크면서 아름답다. 세 바퀴를 돌렸다.

대법당
대법당

비구니스님이 오시더니 대법당으로 안내해주신다. 법당에 촛불을 3개 밝혔다. 스님이 자상하게 도와주신다. 구법당도 보겠냐면서 안내해주고 문도 열어주신다. 구법당은 무곰파법당과 다를 것이 없다.

밖으로 나오니 남편이 기다리다 담배를 두개피째 피우는 중이란다. 스님께서 구석구석 보여주신 덕분에 30분이나 안에 머물렀다.

다시 길을 걸어서 드디어 체쿰파가 보인다. 샹그리라가 존재한다면 이곳일 듯 싶다. 중국의 샹그리라에 가봤지만 난 쭘밸리가 샹그리라에 더 가까워 보인다. 10년전까지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니 더더욱 그렇다.

자연도 아름답지만 사람들도 순박하다. 외부인에게 관대하고 친절하다. 누구나 마주치면 웃어주고 반가워한다. 이대로 순수한 모습을 계속 간직하면 좋겠다.

영어 공부가 하고 싶다는 처자
영어 공부가 하고 싶다는 처자

논두렁 길을 따라 걷다가 언덕에 오르니 체쿰파 처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다. 어제도 만난 처자다. 무곰파에 잘 다녀왔냐며 나와 같이 걸어준다. 영어를 잘하고 싶단다. 그래서 연습하는거란다.

계속 이야기 나누며 체쿰파까지 같이 걸었다. 드디어 우리의 숙소에 도착하니 호주팀도 와있다. 우리와는 다른 길로 왔단다. 여전한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준다.

일단 남편을 핫샤워시켰다. 내가 빨래를 시작하니 호주팀이 나한테 워싱레이디라며 놀린다. 이젠 놀리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웬일인지 다들 샤워하겠다고 줄을 선다. 빨래를 마치고 샤워하려고 하니 하리가 안에 있단다. 다음은 심각남이 할거란다. 심각남이 양보해준다. 덕분에 서둘러서 샤워를 마쳤다.

무곰파로 올라갈 때는 점심시간포함해서 8시간 걸렸는데 내려올 때는 4시간30분 걸렸다. 빨리 내려온 보람이 있어서 빨래도 하고 샤워하고 따스한 햇빛아래 시간을 즐겼다.

툭바로 점심 먹고 양지에 앉아 맥주도 한 캔 마셨다. 이곳이 진정 샹그리라다. 다들 무곰파를 마치고 쭘밸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다.

초승달이 뜨고
초승달이 뜨고

저녁을 일찌감치 먹었다. 남편이 컨디션이 안좋아서 자리에서 일어서니 다들 마지막 밤이라며 아쉬워한다. 호주팀은 내일 하산하지만 우리는 남은 일정 동안 더 어려운 길을 가야한다. 아쉽지만 내일을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걸려있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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