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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여사의 여행일기 히말라야편 Day-12] 마나슬루 트레킹(9)

발행일시 : 2018-02-28 00:00

눈을 뜨니 창 밖이 훤하다. 10시간을 한번도 안 깨고 푹 잤다.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세수하고 거울을 보니 처참하다. 발목은 여전히 아프다. 염증이 생겼는지 빨갛게 부어있다. 남편은 어제 샤워한 뒤에 감기 걸린 모양이다. 얼굴을 만져보니 다행히 열은 없다.

아침 먹으러 식당에 가니 다들 앉아있다. 호주팀과 함께 하는 마지막 아침이다. 쭘밸리트래킹에서 외국인이라곤 우리가 유일하다. 호주팀이 아니라면 우리만 있을 뻔 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우리를 무시하듯 하더니 이젠 대하는 것이 달라졌다.

체쿰파의 정든 숙소 <체쿰파의 정든 숙소>

아침 먹고 호주팀이 먼저 출발한다. 이제 다시 만나기는 힘들다. 우리 걸음으로는 호주팀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작별인사를 거창하게 했다. 내가 한사람씩 안아줬더니 다들 나를 꼭 안아준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내가 호주팀에게 처음 만났을 때가 지금보다 훨씬 잘생겼었다고 했더니 웃는다. 미남이 말에 쓰러졌다. 나는 여전히 아름답단다. 이젠 서로 아무 말을 해도 좋다.

아발란치길을 다시 건너고 <아발란치길을 다시 건너고>

호주팀을 보내고 천천히 출발했다. 오르락내리락 한참 가니 공포의 산사태 길이 나타났다. 당나귀들이 짐을 잔뜩 싣고 건너온다. 당나귀들이 건너오는 모습을 보니 용기가 생긴다. 후들후들 조심조심 건넜다.

호주팀이 환영 <호주팀이 환영>

산사태 길을 힘겹게 건너서 올라가자 호주팀들이 기다리고 있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호주팀 미남이 기념 담배를 피고있다. 남편도 같이 기념 담배를 피웠다.

다시 호주팀과 함께 길을 걸었다. 카상이 옆에 서서 함께 걸었다. 51살이고 아이가 6명이란다. 딸이 대학을 다녀서 돈이 많이 든단다. 트레킹 손님을 소개시켜달란다.

사실 하리 빔 카상 3사람중 가장 실력 있는 가이드다. 하리는 마나슬루쪽은 처음인 주제에 카트만두여행사직원이란 이유로 가이드로 왔고 카상은 마나슬루나 모든 지역에 대한 경험이 많은데도 일자리를 구해서 포터로 동행한거다. 네팔 가이드와 포터의 현실이다.

[허여사의 여행일기 히말라야편 Day-12] 마나슬루 트레킹(9)

쭘밸리 들어올 때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간다. 같은 길인데 느낌은 사뭇 다르다. 열심히 걸어서 춤링에 도착했다. 점심 먹으러 롯지에 들어서니 호주팀이 점심을 먹고 있다.

점심식당에서 다시 만남 <점심식당에서 다시 만남>

다시 또 격하게 반가워했다. 아침에 이별의 포옹을 진하게 했는데 자꾸 만나니 김빠진다. 그래도 좋다. 마지막 수다를 나누고 이젠 진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발 아파서 휴식 <발 아파서 휴식>

발목 통증은 이제 참기 어려운 지경이다. 신발을 벗고 연고를 바르는데 빔이 와서 뭘 먹겠냐고 묻는다. 티벳브레드 2인분을 시켰다. 빔이 티벳브레드로는 지는 충분하지않단다. 참고있던 화가 폭발했다.

이번 일정 중 가이드식비등 모든 것을 이미 지불완료하고 시작했다. 점심을 같이 먹고 돈을 따로 내는 것이 어색해서 점심값은 내가 내주고 있던 참이다. 점심값만 아껴도 상당한 팁이 될 것이다.

내가 발목이 아파서 계속 고통을 호소했는데도 들은 척도 안하더니 티벳브레드로 지 점심이 부족하다니 기가 막힌다. 내가 지금 발이 아파서 누굴 돌볼 처지가 아니니 알아서 너 먹고싶은거 주문하라고 했다. 점심이 나오는데 보니 티벳브레드 3인분이 나온다.

빔은 영리하고 좋은 청년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 어려보였는데 37살이란다.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고 항상 솔직했다. 여태까지 만난 가이드나 포터 중에서 제일 맘에 든다고 좋아했는데 내가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값도 내주고 간식도 똑같이 나눠먹었다. 다니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절에서 시주하는 것을 본 뒤로 변했다. 사람들에게 잘해주면 감사하는 걸로 만족하면 좋겠다. 그 이상을 넘어서 기대가 커지면 그때부터는 서로가 실망하게 된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점심값도 각자 내고 지나치게 잘해주지 않았어야 했다.

[허여사의 여행일기 히말라야편 Day-12] 마나슬루 트레킹(9)

점심 먹고 다시 길을 걸었다. 남편이 심각하게 말을 시작한다. 쭘밸리를 마쳤으니 하산하잔다. 내 발목도 심각하고 남편은 감기기운이 있어서 5천급에 가서 폐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이란다.

더 힘든 에베레스트3패스트래킹도 마쳤는데 안될 말이다. 하는데까지 해보자고 용기를 줬다. 남편은 내 발목 염증이 심해져서 나중에 걷기 힘들어지면 더 큰일일까봐 걱정이란다. 더 아플 때도 걸었으니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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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격려하면서 계곡을 따라 절벽 길도 걷고 긴 다리도 건너고 긴 잔도도 건넜다. 지루한 정글숲길을 지나고나니 록파가 나타났다. 쭘밸리 들어와서 처음 점심을 먹은 곳이다.

오늘의 숙소 룩파에 도착 <오늘의 숙소 룩파에 도착>

오늘 묵을 곳이다.

방을 잡고 슬리핑백을 깔고 남편을 쉬게 했다. 빨리 컨디션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강차를 주문해서 꿀을 듬뿍 넣고 먹였다. 저녁을 주문하고 밥이 될 때까지 쉬라고 했다.

빔에게 네팔약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빔이 가지고 있던 네팔오일을 준다. 바르니 아무 느낌은 없다. 송진냄새같은 것이 난다. 네팔 정글에서 채취한 성분들로 만든 것이란다.

저녁달밧이 다 되었단다. 저녁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니 네팔사람들이 잔뜩 앉아있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인 모양이다. 다들 티벳말로 떠드는 모양이다. 빔도 말없이 앉아있다. 네팔말이 통하지않는 네팔 속 티벳마을이다.

내일부터는 쭘밸리를 떠나서 또다른 트레킹을 시작한다. 설레이면서도 두렵다. 남편이나 나나 상태가 안좋다. 몸을 잘 달래가면서 할일이다. 이젠 나이도 생각해야하고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허여사의 여행일기 히말라야편 Day-12] 마나슬루 트레킹(9)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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