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갑가지 선언했다. 이러한 갑작스런 뉴스 가운데 캐나다에 대한 이슈가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도 예외 없이 모든 ‘우방국’은 관세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캐나다와 멕시코가 맺은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 개정 협상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필자는 캐나다와 길게 국경이 닿는 미시간 주 앤아버 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65킬로미터 거리의 캐나다에 자주 놀러 다녔다. 미시간 주에서는 캐나다의 동전이 함께 사용될 정도로 친숙하다. 예전에 자동차를 타고 캐나다에 가면 운전면허증만 보여 주면 됐다. 캐나다의 길이나 건물은 미국과 같았고 말도 비슷하고 표기만 영국식이었다. 분위기와 말이 다른 미국 남부가 오히려 캐나다보다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도 사실 캐나다에 대해서는 자세히 잘 모른다. 학교에서도 캐나다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고 뉴스도 거의 접하지 않는다. 캐나다의 대기업이나 유명한 브랜드도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SNS의 영향으로 캐나다인의 포스팅과 사진을 통해서 캐나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인 대상으로 실시한 갤럽 여론 조사에 의하면 94%가 캐나다에 호의적이며, 조사한 22개국 중에 제일 높은 호감도를 보였다.

캐나다의 존재감이 커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의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상대적으로 캐나다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 이 변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0년 초이지만, 뿌리는 1960년대에 찾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미국은 소련과 팽팽한 냉전 속에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고 흑인 인권 운동이 확산됐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와 비판이 커지면서 흑인이 받는 차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미국의 이미지에 심한 타격을 입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했던 디지털 혁명과 경제 호황 때문에 이미지가 회복했다. 이 시기에 이민자들이 늘면서 많은 나라가 미국과 깊은 인적 교류를 시작했다.

캐나다도 1960년대에 큰 변화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2류 시민으로 살았던 프랑스어 지역인 퀘벡 주민의 독립 운동이 가속화됐다. 18세기 말부터 퀘벡 주는 점차 영국 지배를 받게 되는데 프랑스어를 하는 주민은 차별을 받게 되었다. 19세기에 퀘벡 주에서 빠른 속도로 공업화되는 미국으로 이민이 늘었고 1960년대까지 퀘벡 주 대기업과 경제계의 공통어가 영어였다. 오랫동안 쌓였던 분노가 1960년대에 독립 운동으로 표면화되면서 캐나다는 국가적 위기에 빠졌다. 인구수 면에서 2위인 퀘벡 주가 독립하면 경제적 타격과 함께 영토가 지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위기에 1969년 현 수상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Pierre Trudeau, 1919년~2000년)는 이중언어 정책을 도입해 연방 정부의 공용어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했고 영어권 지역에 프랑스어 교육을 의무화했다. 1971년에 캐나다가 이민을 늘리기로 했고 ‘이중언어 틀 안에 다문화 정책’을 도입해 언어를 초월해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게 되었다. 즉, 18세기 말부터 계속 지배했던 영어권 정체성은 바로 캐나다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깨고 새로운 언어와 민족에서 분리된 ‘다원주의적 캐나다’라는 정체성을 세우려고 했다.

한 나라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빠른 시간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 퀘벡 주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995년에 독립 찬반 주민 투표가 50.6% 대 49.4%의 아슬아슬한 표차로 통하지 않았다. 그 후에 독립 운동은 점차 약화했다.

이에 비해서 미국은 같은 시기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형성했던 초강대국과 ‘세계 경찰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흑인 인권 운동이 성공했음에도 미국의 정체성은 여전히 영어와 백인 문화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이민자가 ‘미국화’될 거라는 기대가 컸고 그렇지 못하면 소외의 대상이 됐다. 2015년 공화당의 한 예비 선거 후보 토론회에 도널드 트럼프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젭 부시를 보고 “미국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라고 강조한 것은 미국의 정체성에 영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1990년에 냉전이 끝나고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국제적으로 캐나다의 열린 다원적 이미지는 점차 매력이 커졌고 폐쇄적으로 보이는 미국의 매력은 떨어졌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에 미국은 군사적 대응, 특히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반면기후 변화와 같은 ‘지구적 문제’와 관련해서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는 캐나다의 이미지가 더욱 좋아졌다.

결국 2018년 초에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에서 이민을 꺼리는 배타적 보수적 세력의 정치적 영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가 거의 유일하게 열린 다원주의와 국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지키는 다른 선진국의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민족과 언어에서 나온다. 때문에 배타적 보수 정치가 언제든지 재개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정치가 심해지면 민주주의와 인권 그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어두운 현 상황에 국가적 위협으로부터 새로 형성되고 있는 캐나다의 정체성은 배타적 보수 정치로 인해서 국가적 위기에 빠진 다른 나라에게 교훈이 된다. 즉, 인류의 평화와 생존을 위해 국가의 정체성을 민족과 언어에서 분리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 발전시키고 열린 다원주의와 국제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현 시대에 귀감이 되는 캐나다의 존재에 고마움과 더불어 모든 나라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며 참여형 새로운 외국어 교육법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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