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 딸
주인집 딸

드디어 배탈이 완전히 나았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아침을 제대로 먹었다. 주인이 아기가 입은 재킷을 보란다. 아기용 패딩이 예쁘다. 가슴에 붙은 로고를 보라는데 처음 보는 로고다. 아기가 새 신을 신고 있다. 아빠가 고르카 시내 가서 사온 거란다.

당나귀들이 물 먹고 기지개
당나귀들이 물 먹고 기지개

어제 내내 같이 걸었던 당나귀 팀도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같은 집에서 지낸 인연으로 마부와 친해졌다. 네팔말도 모르고 티베트말만 하는데도 눈만 마주쳐도 수줍은 표정으로 웃어준다. 순박한 모습에 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우리가 먼저 출발했다. 주인집 아기와 동네 친구인 듯 한 아이 둘이서 앞장서 걷는다. 어린 아이들이 산길을 넘어지지 않고 잘도 걷는다. 아장아장 걷는 것이 예쁘다.

한참 걸어가는데 숙소 아기와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계속 나타난다. 아기도 입고 있고 큰애들도 입고 있다. 새 옷인 듯 깨끗하고 색깔도 예쁘다.

당나귀 팀이 우리를 추월한다. 이젠 꽤 친해진 마부 친구에게 남겨둔 에너지 바 2개를 주었다. 수많은 당나귀들이 우리를 추월해서 앞지른다. 어제 내내 같이 걷던 당나귀들이 멀어졌다. 뒤 꽁지에 분홍리본을 달아서 예뻤는데 아쉽다.

열심히 걸어서 자가트에 도착했다. 체크포인트에 신고하고 올라올 때 묵었던 숙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숙소 주인이 기억하고 반겨준다. 기억못할수가 없다. 산중에서 외국인이라곤 어제 만난 미국인이 다다.

점심 먹고 다시 하산 길에 올랐다. 걷고 또 걷고 당나귀만나면 피하면서 또 걸었다. 오르락내리락 길이지만 하산 길이라 속도는 제대로 난다.

도반을 지나는데 식당 안에 외국인 단체 팀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대형 단체 팀 인 듯싶다. 길을 재촉해서 내려가는데 한 백인여자가 우산을 지팡이삼아 살랑살랑 걷고 있다. 얼굴이 희열에 차있다. 말을 걸어보니 횡설수설 수상하다. 아무래도 산속에서 마리화나에 취한 듯싶다. 일행들이 많다고 하니 우리 갈 길로 갔다.

오늘 숙소는 온천 숙소다. 온천 숙소라고는 해도 온천을 제대로 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노천에 아무 시설 없이 온천물줄기 나오는 것이 다이다. 롯지도 바로 온천 물줄기 옆에 달랑 2개있다.

제일 깨끗해 보이는 방으로 잡고 짐을 풀었다. 온천물로 샤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버켓에 물을 받아서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방법이 최선일 듯싶다.

저녁을 주문하고 샤워할 방법을 궁리 중인데 백인들이 하나씩 모여든다. 심각하다. 하나씩 도착하는 젊은이들이 따또빠니쪽으로 가더니 머리를 감는다. 우리도 일단 온천물에 머리부터 감았다.

머리를 감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냥 젊은 여행자들이 아니다. 오늘 오전부터 내내 만났던 아이들이 입고 있던 재킷의 기부자들이다. 스카이다이빙 동호회에서 전 세계 회원들로부터 38000불을 모금해서 아이들 재킷을 3천개이상 만들어 마나슬루산골을 돌며 학교 14개에 기부하고 다녔단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15명의 젊은이들이 직접 다니면서 8일 동안 나누어주고 오늘 마지막 날이란다. 처음 볼 때 마리화나 한 듯 한 여인은 시카고에서 왔는데 봉사한 보람의 희열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렇게 보인 듯하다. 거기에 약간의 알코올이 더해진 거란다. 점심 먹을 때 락씨 한잔 했었단다.

일단 원래 계획대로 버켓에 온천물을 받아서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온천물로 씻으니 몸이 날아갈 것 같다. 머리 결도 넘 좋아진 듯 부드럽다.

하루종일 마주치는 당나귀들
하루종일 마주치는 당나귀들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내려가니 젊은이들이 다 모였다. 작은 산장에 덩치 좋은 백인들이 가득하니 터져나갈 듯 한데 한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국 미국 캐나다 스웨덴 독일 덴마크 등지에서 모인 친구들이 봉사로 뜻을 모아서 그런지 다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산골 아이들에게 재킷을 나눠주고 다들 희열에 취한 듯 보인다. 선물 받은 아이들보다 선물한 사람들이 더 행복해한다. 자선이란 것이 그렇다. 세계 각지의 NGO들이 구호품을 끊임없이 보내고 종교단체들이 쉼 없이 선물을 들고 오는 곳이 네팔이다. 우리도 지진 때 성금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녀보니 지진 성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도움이란 것이 처음에는 작은 도움도 감사하다가 점점 기대가 커지면 웬만한 도움은 시시해진다. 도움 받는 사람은 더 큰 것을 바라고 돕는 사람은 맥 빠진다. 트래킹 족들도 오지 않는 산골에 재킷을 들고 와서 나눠주고 행복해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재킷 나눠 준 이야기를 하다가 트래킹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우리의 트래킹 이야기를 듣더니 다들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젊은이들이라 꿈도 원대하다. 에팔라치안트레일도 꿈꾸고 퍼시픽트레일도 꿈꾼다. 꿈꾸는 젊음이 부럽다.

캠파이어를 시작한단다. 껴도 되냐고 물으니 아름다운 커플인데 당연히 된단다. 젊은이들이라 다르다. 스피커까지 갖추고 다닌다. 음악이 산 속 마을에 가득 퍼지고 모닥불의 낭만이 깊어진다.

나이는 못 속이는지 우리는 졸렸다. 양치질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당으로 뚫린 창문으로 음악소리와 젊은이들의 유쾌한 대화가 이어진다. 마치 동남아 휴양지에 온 기분이다. 얼마 만에 듣는 사람들의 활기찬 소리인지 감동스럽다. 산속 젊은 낭만의 밤이 깊어간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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