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물벼락 갑질'에서 시작한 '한진 사태'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조현아·현민 자매가 모든 직책에서 사퇴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국민사과가 있었지만 고육지책(苦肉之策)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벼락에서 시작한 한진 '갑질'과 '비리' 의혹
한진 사태는 지난 12일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사건 보도로 시작했다. 지난달 조 전무가 광고대행사와 회의를 하면서 이 대행사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컵을 던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조 전문가 공식적인 사과 대신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이날 예정된 연차휴가를 사용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면서 기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은 물론 '#나를 찾지마'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후 이틀 뒤인 14일 오마이뉴스가 대한항공 직원으로부터 제보받은 음성파일을 공개하며 조 전무의 갑질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음성파일은 상식을 벗어난 발언으로 가득했으며 한진그룹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를 기점으로 조씨 일가의 갑질과 관련한 제보와 증언이 시작됐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증언이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와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것은 물론 한진그룹 오너가의 갑질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진그룹은 이번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무가 15일 새벽 귀국한 후 직원들에게 사과 이메일을 보냈지만 사퇴 언급이 없었으며 대한항공 역시 경찰 조사가 나올 때까지 조 전무를 대기발령한다는 조치만 취했다.

이런 가운데 한진 사태와 관련,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적기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번 사태를 두고볼 수 없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 대한항공 직원들이 카카오톡에서 만든 '대한항공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도 이때 만들어지면서 한진 오너가의 폭언·폭행, 밀수, 관세포탈 등의 제보가 구체적으로 나왔다.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도 갖가지 막말·욕설 논란에 휩싸였고 최근에는 조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말이 새나가지 않도록 방음공사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터졌다. 불과 3년 전 '땅콩 회항'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조 전무의 언니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집행유예가 끝나기 전인 지난달 말 복귀한 사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졌다.

◆조양호 회장이 직접 나섰지만 국민은 '냉랭' 수사는 '본격화'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조 회장이 지난 22일 직접 대국민사과를 하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대한항공의 회장으로,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제 여식이 일으킨 미숙한 행동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저의 잘못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의 임직원 여러분께도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직접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 여러분들께도 머리 숙여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특히 조 회장은 조현아·현민 자매를 한진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사퇴토록 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대한항공의 전문경영인 도입 요구에 따라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보임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진그룹 차원에서 이사회 중심의 경영도 강화하고 외부인사를 포함한 준법위원회를 구성, 향후 유사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갑질에 이어 밀수와 관세포탈 등의 의혹으로 경찰과 관세청이 조사를 본격화 하고 있으며 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한진 오너가는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조 전문의 갑질 등 한진 오너가의 갑질을 수사하고 있다. 오픈채팅방 등 폭로를 한 제보자들 다수가 수사에 협조하기로 하면서 경찰 수사를 탄력을 받고 있다. 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조 전무의 휴대폰 자료 등의 조사를 끝내고 조 전무를 소환할 예정이다.

관세청은 한진 오너가의 밀수·탈세 의혹에 집중하고 있다. 자택과 대한항공 사무실 압수수색을 벌이며 칼을 꺼내든 관세청은 한진그룹 불법 의혹을 파헤치는 중이다. 특히 조 회장 일가가 특정일에 해외에서 물품을 사 오면서 이를 회사 물품으로 둔갑시켜 운송료와 관세를 내지 않았다는 등 탈세 의혹이 관건이다.

현재 관세청 인천본부세관 수사팀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물품 증거자료를 검토 중이다. 이를 토대로 조만간 한진 오너가를 직접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번 조사를 계기로 상습적인 탈세 의혹이 확인되면 오너가는 물론 관련 직원들의 줄소환 후 재판에 넘겨지게 된다.

이와 함께 국토교통부의 대한항공 봐주기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조 전무는 2010년부터 6년간 진에어 등기이사로 재직했는데 미국인인 조 전무는 한국 국적항공사의 등기이사로 재직을 할 수 없다. 이는 명백한 국내 항공법 위반이다. 이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8일 감사 착수를 지시했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일괄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도 타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대한항공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 관리자는 '조 회장 일가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를 계획 중'이라고 공지했다. 공지 후에는 참가하겠다는 답글이 이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갑질로 시작한 이번 사태가 한진 오너가의 비리 의혹으로 확산됐다. 경찰과 관세청이 조사에 들어갔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오너가의 퇴진과 진정성 있는 사과인 만큼 이번 사과로 사태가 진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재용 기자 (hsoul38@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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