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로버트 파우저 / 출판사 혜화1117

외국어는 우리 교육사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는 간과해왔다.

언어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접점에서 ‘외국어’로 전파됐지만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며 인류 문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언어 전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출발한 인류가 언어의 사용과 확산의 과정 속에 어떤 문명의 변화가 생겼고, 어떤 역사적 시점에 어떻게 조우하는 가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인 언어학자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영어가 아닌 한글로 펴낸 신간 ‘외국어 전파담’이 주목받는 이유다.

고대문명에서 언어는 종교의 전파 과정과 분리할 수 없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각 지역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획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등 문명권마다 장구한 역사에 걸쳐 흔들리지 않는 패권을 유지하는 언어가 있었다. 그 언어의 패권은 권력자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글이 아닌 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권력은 분산되었고, 각 나라마다 표준 국어를 둘러싼 힘의 논리가 작동되었다. 그것은 곧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의 역사로 연결되고, 전쟁을 거쳐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면서 외국어의 전파 양상은 새로운 방향으로 물꼬를 틀었다.

‘외국어 전파담’ 은 바로 이러한 외국어의 전파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이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며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써왔는 가에 주목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인 로버트 파우저 씨가 오랫동안 다종다양한 외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고찰해온 언어 전파의 관찰기이자 탐구의 기록이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 중국은 물론 인도와 베트남, 몽고, 이슬람 왕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선주민 등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가 각 문화권 별로 어떻게 활용, 전파, 습득되었는 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어떤 차이와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매력포인트는 외국인이지만 한국어에 능통한 저자가 한국어 외에도 해박한 언어 능력으로 조사하고 수집한 다양하고 희귀한 자료를 통해 인류 역사에서 언어의 전파가 만들어낸 매우 특별한 문화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바로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외국어가 어떤 풍경으로 전파, 활용되고 있는지, 나아가 언어의 전파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가도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한글로 ‘미래시민의 조건’과 ‘서촌 홀릭’을 출간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책은 그동안 간과했던 외국어 전파를 통한 인류 역사의 변화를 쉽게 이해하고 현재의 언어생활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앞으로 변화의 과정을 예측해보는 기회를 줄 것이다.

이향선기자 hsle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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