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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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유아인 화제 속 칸 영화제 대부 故피에르 르시앙의 추천사 공개 (전문)

지난 5일 별세한 피에르 르시앙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그가 타계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남긴 영화 '버닝'(감독 이창동)에 관한 소개 자료가 공개됐다.
8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에서 제 71회 칸 영화제가 개막했다. 영화제 측은 공식성명서를 통해 고인이 된 피에르 르시앙에 대해 추모사를 밝혔다.

“故 피에르 르시앙은 5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칸 영화제’란 세계적인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였다. 지구 멀리 떨어진 나라의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자신의 창의력을 그간 아낌없이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칸 국제영화제에 대해 강렬하고 독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우리에게 기쁨과 갈망을 선사했으며 그와 크와세트 거리에서 만나기를 매년 기다리곤 했었다”고 그를 추모, 애도를 표했다.

81세로 세상을 떠난 故 피에르 르시앙은 프랑스 영화 프로듀서이자 칸 영화제 자문위원으로 ‘칸의 대부’라 불리었다. “영향력있는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는 버라이어티 지의 소개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등 세계적 유명인사들과 오랜 유대관계를 유지해오며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특히 한국 영화와 각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는 故 피에르 르시앙은 오랫동안 한국 영화를 유럽에 소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칸 영화제 측 역시 “2018년은 반드시 ‘그의 해’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버닝’ 이창동 감독에 대해 각별한 코멘트를 전했다. 한편 故 피에르 르시앙은 별세하기 직전, 영화 ‘버닝’에 관한 생각에 대해 특별한 글을 남겨 화제다.

영화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 지금까지 한국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이슈작 ‘버닝’은 5월 17일 국내 개봉한다.

10일 간의 칸 영화제 기간 중 후반부에 공식 상영 된다. ‘버닝’ 팀은 차주 프랑스 칸에 입성하여 전세계에 첫 베일을 드러낼 예정이다.故 피에르 르시앙은 별세하기 직전, '버닝'에 관한 생각에 대해 특별한 글을 남기도 했다.

아래는 故 피에르 르시앙이 미국 영화전문 매체 인디와이어에 남긴 '버닝'에 대한 글이다.

'버닝'의 운명

세월이 얼마나 빠른가. 쿠알라룸푸르에서 우연히 우-웨이 빈 하지 사리(U-Wei bin Haji Saari) 감독의 영화 '방화범'을 본 지도 벌써 20년도 더 지났다.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태우기(Barn Burning)'를 말레이시아 문화에 뿌리를 내리게 각색해서 영화화한 그 작품은 매 순간이 예측불가능성의 연속이었다. 그 영화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되며 큰 성공을 거뒀고 그 이후 텔루라이드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여타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앞으로 걸어 나오는 아이를 오랫동안 잡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심금을 울린다.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들이 순수함을 재발견하게 되는 장면이다. 우리들 안의 순수함 그 자체를. 두어 해 전에 이창동 감독은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단편도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태우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당시는 나는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장면, 인물의 뒤를 카메라가 이리저리 따라가는 긴 쇼트, 그리고 첫 음향들로부터 우리는 우리 주변의 가깝고도 먼, 시끌벅적하고 와글거리는 삶의 현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매 순간 예측할 수 없었던 것들로 이어진다.

1952년에 발표된 '강의 굽이(한국 제목:분노의 강)'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영화는 단순한 서부 영화 이상의 조예 깊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버닝'이 꼭 그와 같은 영화이다. 영화가 원작자가 꾸며낸 것들로부터 멀어져서 영화 자체로서의 맥박으로 그만의 고유한 생명력을 얻는 순간, 그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

이창동은 아주 드문 휴머니스트 영화감독이다. 작품이 결코 '메시지'로 무거워지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또한 나는 영화 '버닝'이, 나 스스로가 놀랍게도, 한국인이 조상의 문화를 복원하면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을 예견하게 되리라는 꿈을 꾸어본다. 이것은 아마도 과거의 신상옥과 임권택, 그리고 오늘날 이창동의 숨겨진 야망이었을 것이다.

윤정희 기자 (jhyun@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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