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보거나, 디자인을 해보거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보거나, 비누로 조각을 해보거나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은, 다시 말해서 머릿속에서 금방 튀어나와서 형상화를 처음 한 것은 항상 어설프기 그지없다. 더 어리고, 더 경력이 짧을수록 항상 더 어설프다. 이것이 지식산업, 지적산업의 첫 번째 특징이다. 물리적인 제약요건이 생산물에 거의 작용하지 않으므로 (맞춤법과 일관된 논리구조가 틀리다 해서 써놓은 글이 나무토막 쌓아올리다 무너지듯 무너지지 않는다) 정량적이고 물리적인 객관적 기준을 정하기가 아주 어렵다. 소프트웨어는 아예 더 능력 있고 경험 있는 개발자가 더 간결하고 명료한 코딩을 한다. 짧을수록 더 비싼 값을 갖는다! 건설업에서 양으로 따지는 노동결과와 상당히 다르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머리 바깥으로 가져다 놓는 일을 창조 혹은 구성이라 한다. 창조 혹은 구성이 4차 산업혁명의 중심 주제라 할 때, 어떤 창조 혹은 구성이 더 잘된 것이고 더 할 만 한 것이고 어떤 것을 골라서 해야 할 것인가를 따지는 문제, 즉 이에 걸맞은 ‘평가’는 다음 두 가지 속성을 꼭 반영해야 한다.

첫째, 창조 혹은 구성은 철저히 개인의 세계관과 시각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연구과제의 경우, 연구책임자의 이력과 경험이 무엇이고,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해왔는지 <장기추적>을 해야 한다. 또한 <장기지원>을 해야 한다. 머릿속의 아이디어가 연구자의 구성에 의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당시의 완성도는 항상 형편없다. 만일 태어났을 때부터 완성도가 높은 것을 요구한다면, 연구자들은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구성에 기대기보다는 타성에 젖은 개량 혹은 개선적인 안전한 연구 과제를 제안할 것이다. 당장 뭐가 잘못되진 않지만, 서서히 망해가는 안 좋은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 눈도 뜨지 못하는 만들다 만 것 같은 존재를 단지 2~3년 안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성장시킬 순 없다. 원래부터 이상해서 성장하지 못하거나, 망하거나, 아니면 너무 느리게 성장해서 지켜보다가 숨이 넘어갈 만큼 더딘 것도 있다. 미군이 선점형 OS가 탑재되어 빠른 탄도미사일 요격용으로 만든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쓴 시간과 돈과 노력을 생각해보면(최소 10년 이상 소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딥러닝이 나오는 데까지 무려 60년의 세월이 걸렸다. 1947년에 태어난 트랜지스터가 2018년 현재 퀼컴의 스냅드래곤 845나 삼성의 엑시노스 9810 같은 모바일 CPU로 상상하지 못할 만큼 변화했던 물질계의 변화에 비하면 50년대의 신경망이나 2018년의 신경망은 사실 서로 큰 차이가 없다.

아주 미묘하고 작은 부분, 그리고 신경망이 학습되고 계산되기까지 필요한 여러 가지 충족요건들이 60년 동안 모자라고 부족했을 뿐이다. 즉, 머릿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와서 제대로 된 구실을 할 때가지 수많은 방해요소와 기다림, 좌절과 의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평가가 그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

둘째, 생물의 종은 99%가 멸종한다. 이와 흡사하게도, 머릿속 아이디어가 태어나서 제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위의 1번 조건과 결합하면, 긴 시간 참고 노력해도 뭐가 제대로 안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고 해서 짧은 시간동안하면 더 안 될 것이다. 이를 투자 investment를 넘어선 위험도를 가지는 미래투입, 즉 투기 speculation라 불러 마땅할 정도다.

네덜란드 튤립 버블처럼, 인공지능이 거품부풀기-거품꺼지기 상태를 반복한 역사적 흐름이 이와 관련이 있다. 개인, 회사, 학교, 정부의 역사에서 단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큰일납니다!를 모토로 삼는다면, 창조 혹은 구성에 관련한 일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대중콘텐츠의 주 분야 중 하나인 영화산업을 예로 들자면, 헐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많은 흥행작으로 떼돈을 버는 것처럼 화려해 보이나, 실은 EBITDA 세금, 이자, 감가상각전 순이익)가 6~7%선이다. 제조업에 비해서는 높은 수치로 보이나 영화의 매출이 제조업과는 비교될 수 없이 작은 점을 감안한다면 초라한 사업이다.

흥행대작이 버는 돈을 무수히 쓰러져간 다수의 망작들이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창조 혹은 구성이라는 멋진 단어의 이면에는 속쓰린 불확실성, 높은 위험, 알 수 없는 방향성이라는 정말 피하고 싶은 속성들이 존재한다. 평가라는 점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할 정도로 큰 의미가 없고, 망하는 게 일상생활이라는 마음가짐이 창조 생태계의 기본 요건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다.

창조 혹은 구성적 ‘평가’가 반영해야할 요소 1. 장기투자 2. 높은 위험성을 꼽았다. 모든 평가는 타당성 validity, 신뢰성 reliability 이 두 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만 한다. 평가 대상의 상태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점이 타당성, 다른 시행에서도 유사한 측정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점이 신뢰성이다. 아쉽게도 창조 혹은 구성적 평가는 양적계측이 힘든 부분이 많으므로 계량화 평가가 쉽지 않다.

피블로 피카소의 <거울 앞에 선 여인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 평론가들이 내렸던 평가가 타당했던가? 아니면 신뢰할만했던가? 둘 다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즉, 평가의 타당성, 신뢰성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다.

구성주의적 평가는 1. 장기투자와 비슷하게, 오랫동안 지켜봐온 점을 바탕으로 평가를 내리는 정성적인 측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 한 번의 발표, 단 한 번의 제안을 놓고 내리는 엄밀한 평가가 거의 불가능하다. 파블로 피카소가 나름대로 구성한 새로운 유파 <입체파>나 <초현실주의> 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탕으로 개별 작품을 평가해야 어느 정도 타당하고 신뢰할만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 흐름의 시간은 실로 긴 시간이었다. 피카소는 오래 살면서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고 작품의 영향력 또한 대단했었으니까.

창조 혹은 구성이 어려운 이유는, 만들어내기 위한 정신적 프로세스가 고달프다는데 있다기 보다는 (대부분의 창조가 인위적으로 좋고 멋있는 것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목표의식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최초단계에서의 어설픔, 외면과 비난, 합목적적이지 않은 창발적 생성과 같은 후처리 프로세스가 어렵다는 데 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과제의 제안이나 우버-에어비앤비 같이 어찌 보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의 제안이 그걸 받아들이고 육성해야할 과학-재무적 커뮤니티의 수용성에서 그 성공-실패가 좌우된다.

과제의 평가가, 피투자 벤처기업의 선정의 과정이 엄격하고 절대적이고 논리적일수록 창조성하고는 더 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의 질적인 사회로의 변화가 요구하는 속성이 상대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다이내믹한 상태라는 정반대 속성의 요구사항이기 때문이다.

우버-에어비앤비가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앞으로 10년 후에도 살아남아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허나 공유 라이딩이라는 온 세계가 달라붙어있는 서비스를 우리는 절대적 이분법, 즉 엄격하고 절대적이고 논리적으로 명확해야한다는 평가속성 때문에 아직 시작도 못해보고 있다.

과연 공유 라이딩이 운송사업자들을 갉아먹는 제로섬 게임의 독점적 승리자가 될 것인가? 자동차 회사들이 공유 라이딩 서비스를 끝까지 안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운송사업자들이 공유 라이딩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인공지능과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글로벌 서비스 회사들에 비해서 무슨 경쟁력을 가질 것인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서 일 년 후의 새로운 서비스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과거평가의 절대적 잣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투자업 마이다스의 손인 손정의 회장은 무슨 평가근거로 온 세계 공유 라이딩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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