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의 내용이 어렵거나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자 탓이 아니다. 대개는 글쓴이의 솜씨가 부족하거나 번역이 형편없기 때문일 것이다. 숨은 글맛을 음미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고, 지적 수준과 무관하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맛깔 나는 글이 좋은 작가의 글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30년 동안 한결 같은 작가를 생각한다. 이립에 발표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부터 서거한 대통령의 자서전 정리는 물론, ‘국가란 무엇인가’, ‘나의 한국 현대사’, ‘어떻게 살 것인가’ 등으로 검증받은 이순의 그이가 ‘역사의 역사’를 들고 나왔다.

이념 편향 논란을 일으킨 2013년 교학사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가 왜곡과 부실 문제로 선택받지 못하자 뉴라이트 친화 정권은 반대 의견을 대놓고 묵살하며 아예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거꾸로 가는 정부에 무기력해진 수많은 지식인들이 역사 서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공공지성 유시민은 ‘역사 서술의 역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릇된 정권은 오래지 않아 자멸의 길을 걸었고,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모든 것을 원래의 검정체제로 되돌려놓았다. 역사가 길을 잃은 시대에 시민이 참을 수 없었던 기록의 파편이다.

6·25전쟁 발발 68주년에 출간된 ‘역사의 역사’는 병기된 영어 제목처럼 ‘역사 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제목이다. 역사란 사실을 쓴 이야기이고 언어로 재현한 과거인데, 우리의 언어가 아닌 글로 재현한 남의 과거사에 감정을 이입하고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다른 문명의 오래된 기록들까지 거대한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역사전문가라면 오히려 난해할 수밖에 없는 그것을 최고의 제너럴리스트 유시민이 맡았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2,500년 전 사람이지만 사유 능력은 현대의 역사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어려움과 해결해야 했던 과제, 역사를 서술한 목적도 비슷했다. 그들은 모든 시대의 역사들과 마찬가지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기에 책의 첫머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중략) 헤로도토스는 인간의 성취를 기록하고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밝히려고 한 반면, 투키디데스는 오로지 기록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 것 같아서 헤로도토스가 역사 서술의 목적에 대해서 더 깊이 사색하고 고민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전체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 36쪽

헤로도토스(BC484?~BC430?)는 그리스 출신의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이었던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함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문명의 위대하고 놀라운 업적을 서술했다. 주변국들의 정치, 사회, 민속, 종교, 문화와 인간의 성취를 기록하는데 아낌없는 서술과 공정성으로 세계사의 시작을 빛내준 것이다. 키케로(BC106~BC43)는 ‘역사’를 최초의 역사서로 인정하며 그에게 명예로운 작위를 수여했고, 역사 서술의 역사를 고민하던 유시민은 키케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첫 장을 열었다.

아테네 시민 투키디데스(BC460?~BC400?)는 민족주의자였다. 헤로도토스보다 한 세대 늦게 태어난 그는 지휘관으로서 직접 겪었던 전쟁의 역사를 썼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내전의 역사를 기록했지만 그 역시도 델로스동맹과 펠로폰네소스동맹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뤘기 때문이 높이 평가 받을 수 있었다. 사실주의 예찬자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는 키케로의 의견에 반박하며, 사실을 검증하고 해석하는 솜씨가 빛났던 투키디데스를 ‘역사 서술의 창시자’로 지목했다. 유시민은 두 사람 모두의 시선을 존중하며 진일보한 역사의 역사를 정리했다.

“사마천은 사실을 기록하는 일에 엄청난 열정을 쏟았지만 그것을 역사 서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으면 인간 본성의 빛과 그늘, 삶의 의미, 군주의 덕성, 권력의 광휘와 비루함, 반복되는 사건의 패턴을 포착해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사회와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자들, 지나간 역사를 보면서 삶의 보편적 의미를 사유하는 평범한 역사 애호가들,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방법과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에 관심을 가진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사기’를 읽는다.” - 66쪽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그들만의 역사를 구성하려다 사마천(BC145~BC85?)을 만나면 사료와 문학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위축된다. 궁형이라는 치욕을 견디며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을 위해 선택한 처절함의 산물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서양 최초의 역사서가 2,500년 전 파피루스에 기록된 민간인들의 온전히 개인기였다면, 동양 최초의 역사서는 전한시대의 역사기록관이었던 공무원이 죽간에 먹으로 기록한 역작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편향되지 않은 공정성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생명력을 유지한 역사의 역사가 놀랍다.

상고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 아우르는 ‘사기(史記)’는 ‘표’ 10편, ‘본기’ 12편, ‘세가’ 30편, ‘서’ 8편, ‘열전’ 70편 등 모두 130편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기록물이다. 복잡한 구성을 나무로 치면 ‘표(表)’는 뿌리, ‘본기(本紀)’는 줄기, ‘세가(世家)’는 가지, ‘서(書)’는 마디와 옹이, ‘열전(列傳)’은 잎과 꽃이라는 유시민적 비유가 예술이다. ‘본기’를 통해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확인하고, ‘열전’을 통해 행운과 불운의 간섭을 받으면서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다 간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들을 탐색할 수 있다는 조언이 사기를 훨씬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는 힘이다.

튀니스 출신 이븐 할둔(1332~1406)은 독학파 역사학자로 스승도 없고 선배도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는 세상을 일곱 기후대로 나누어 환경과 문명의 관계를 살피면서 세계 최초의 인류사를 기록해 역사학이 하나의 과학적 학문으로 정립되는 기반을 다졌다. 아랍어로 ‘무깟디마’라고 불리는 ‘역사서설’은 본래 하나의 독립된 책이 아니라, 일곱 권짜리 3부작 ‘성찰의 책’에서 앞부분만을 따로 발췌하여 다시 엮은 것인데, 14세기 왕권의 흥망을 정밀하게 기록한 아랍사회와 이슬람 문명에 대한 종합보고서다.

‘역사서설’이 이슬람 세계 극소수 권력자와 지식인들만의 전유물로 수백 년 간 독점되다가 19세기 불어로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 전파되었고, 현대 역사연구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줄 수 있었다. ‘역사의 연구’로 이름난 아놀드 조셉 토인비(1889~1975)가 대표적이다. 토인비는 동서고금의 문명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에서 공통의 패턴을 뽑아내 문명 일반의 흥망성쇠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단순한 세계사가 아니라 소멸했거나 살아 있는 모든 문명을 탐사한 ‘문명의 백과사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격렬한 동족상잔의 전쟁이 문명 사멸의 원인이 된 경우는 아주 많다. 현대 서구 역사의 불길한 징후는 무엇보다 독일 군국주의 출현이다. 나치 독일의 군국주의는 문명의 역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잔인하다. 그러면 나치 군사 기구가 저지른 전대미문의 파괴 행위에 넌더리를 내면서 서구화되어 가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군국주의 성향을 버렸는가?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나 희망적인 징후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의 노예 제도는 전쟁과 함께 문명을 따라다닌 쌍둥이 암이었다. 하나를 박멸했다면 다른 하나도 박멸할 수 있다. 서구 문명의 해체 징후로 눈을 돌리면, 지배적 소수자와 내적·외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분열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볼 수 있다.” - 265쪽, ‘역사의 연구’ 축약 인용

유시민은 16명의 역사가가 집필한 18권의 역사서를 원문보다 쉽게 읽도록 다듬었는데, 군더더기를 없애기 위해 직접 번역하고, 축약하고 재해석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에 있어, ‘창조적 소수자가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해 문명이 쇠퇴한다’고 고찰했으며, 지나간 역사의 흔적과 교류 과정을 살펴 문명 충돌의 패턴을 연구했고 미래를 낙관했던 토인비가 술술 읽어지는 것도 그 덕분이다. 아울러 문명의 공존과 상호존중을 외친 헌팅턴이라는 걸출한 제자의 호소력을 담아 토인비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 명의 역사가는 존재론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기록을 남겼으나 관계론적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다. 레오폴트 랑케(1795~1886)는 난해하고 지루한 저작들로 공감능력이 형편없었으나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등장을 설명했고, 슈펭글러(1880~1936)는 천재적 횡설수설로 평가받은 어마어마한 혹평의 ‘서구의 몰락’을 통해 토인비 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1952~)는 터무니없는 환상과 편견의 ‘역사의 종말’을 드러냄으로써 토인비의 이론에 충실했던 새뮤얼 헌팅턴(1927~2008)의 ‘문명의 충돌’도 빛났다.

‘역사의 역사’는 전문가들에게 트집 잡힐지도 모르지만 일반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역사를 읽어내도록 잘 배려한 세계사의 나침반이다. 역사가도 역사학자도 아닌 감수성 예민한 청년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문명의 변화 양상을 풀어내며 오로지 미래를 바꾸는 데만 관심을 쏟았던 것과, 덕분에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은 그의 철학을 추종하는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는 해석도 그렇다. 에드워드 H.카(1892~1982)가 말한 것처럼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재레드 다이아몬드(1937~)와 유발 하리리(1976~)에 이르기 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2500년 동안의 역사가들은 이미 그들 사회의 지식인으로 당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독립적이고 수준 높은 문명사회의 지식인이었기에 그들이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관심을 기울였고 사회와 역사의 일반 법칙을 탐색할 수 있었고 인류 전체를 생각하면서 역사를 쓸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한반도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식민지 조선의 역사학자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을 읽으며 더 특별하게 감정이 이입되고 먹먹해졌던 까닭이다.

“인간은 운이 아주 좋아야 100년 정도 산다. 혼자 무인도에 사는 게 아니라 특정한 기술과 제도, 문화, 관습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런데 지배적인 기술과 제도, 문화, 관습은 우리들 각자의 취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져 있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짧은 시간에 크게 바꾸기 어렵다. 그런데 그것이 더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고 부당하며 더러는 큰 감사를 느낄 정도로 합리적이고 훌륭하다. 이 모든 것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도대체 왜 지금처럼 살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역사를 살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또한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역사를 읽는다.” - 315쪽

10여 년 전, 인생의 책으로 ‘역사의 연구’를 꼽았던 소장파 국회의원 한 분을 모셨었다. 의원회관 8층 코너에 자리 잡은 우리 의원실 정문을 나서면 양옆으로 매우 대비되는 기운의 두 인물의 팽팽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우측 방에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것과 달리 참으로 한산했던 독설가 전여옥이 있었고, 좌측 방에는 언제나 불야성을 이루던 워커홀릭 초선의원이 버티고 있었다. 일중독자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인데,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애송한다던 보스 때문에 그 방의 보좌관들을 불쌍하게 쳐다보던 추억은 이제 부러움이 되었다.

17대 국회가 종료되고, 파주출판도시의 이름 없는 노동자가 된 나는 그곳에서 낡은 SM5를 탄 먼발치의 그이를 보았다. 지식소매상이란 명함을 들고 다니던 모습에서 혹시 이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정치적으로 체념한 것은 아닐까 서글픈 생각도 들었지만, 날카롭던 눈빛이 점점 더 부드럽고 온화하게 변해 가는 것만큼은 다행이다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역사의 역사’는 김경태의 사진이 훌륭하고, 김수한의 편집도 나무랄 데가 없지만, 그동안 출간된 유시민의 다른 저작보다 특별히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그저 유시민다운 평범하게 훌륭한 책이다.

최근 몇 년간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방송 ‘썰전’에서 하차하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그이의 선언은 아쉽지만 아름다운 결정이라 생각한다. 온전히 작가로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그이를 응원하며 자신이 공부한 역사 노트를 대중에게 공개한 것에 대해 한 사람의 독자로서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 비단 역사만의 매력이 아니라, 이 시대 지식인들과 책으로 소통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책들은 미완성이고, 그것을 완성시켜 나가는 데는 고민하는 독자의 몫도 있지 않겠는가.

출판기획자로 ‘더불어민주당’+‘the민주’ 당명을 만들고 제안했다. 컴퓨터그래픽 및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며,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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