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오후 3시, 대한상공회의소(서울 중구 세종대로 39) 중회의실B에서 한국미디어경영학회 주최로 넷플릭스 국내 진출에 대한 평가와 대응 전략을 논의하는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서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의 콘텐츠 유통전략과 과제’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특별 세미나는 지난 5월부터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 제휴 움직임으로 다시 쟁점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 국내 진출 관련 평가와 대응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재 국내 시장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는 넷플릭스에 대해 ‘대형 해외자본의 의한 독과점 우려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규제를 촉구하는 입장’과 ‘소비자 선택 폭을 늘리고 국내 콘텐츠 제작역량을 개선·강화를 위해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서로 대립 중이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미디어경영학회는 2009년 창립 이래, 미디어 경영 및 마케팅에 관련된 제반 학술 연구와 교육 활동 워크숍 등을 수행하고, 국내외 산학연 관련 기관 협력 교류를 통해 국내 미디어산업 발전과 미디어 산업 전문가들의 이익 및 친목 도모를 위해 설립됐다. 지난 2017년부터 토크콘서트 등 다양한 형식과 주제로 관련 행사를 주최하고 있는 한국미디어경영학회는 미디어와 관련한 쟁점을 과학적 분석방법을 통해 기업, 소비자, 정부 등 각각의 입장에서 고민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세미나에는 미디어 관련학과 학생을 비롯해 산업 관계자와 학계 및 언론인 50여 명이 방문해 참관했으며, 발제자 곽규태 교수를 비롯해 연세대학교 이상우 교수, 성균관대학교 박민수 교수, 성균관대학교 이대호 교수, 경희대학교 이상원 교수, 법무법인 세종 이종관 박사, 한국외대 지성욱 교수, 고려대학교 최세정 교수, 인하대학교 한지수 교수, KISDI 황유선 박사 등이 함께 참여해 심도 있는 토론도 이어갔다.

세미나는 성균관대 이대호 교수의 사회로 시작됐다. 그는 지난 5월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 제휴 움직임을 언급하며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이 국내 미디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아직도 많은 논쟁 중인 것 같다”며 이번 세미나를 준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첫 순서는 순천향대학교 곽규태 교수의 ‘콘텐츠 유통 경쟁 패러다임의 변화와 전략적 시사점’이라는 강연으로 시작됐다. 그는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을 살피기 전에, 국내 유료방송 생태계를 분석하고 OTT(Over-The-Top) 시장현황과 서비스 이용형태를 보여주며 국내 콘텐츠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조망했다.

곽 교수는 넷플릭스의 국내시장 진출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유통시장 △제작시장 △해외 진출 △수익배분 △공정경쟁 △문화적 영향 등 5개 요소를 중심으로 각각의 긍·부정 평가를 고루 내리며, “넷플릭스 국내 진입이 메기 효과일지 황소개구리 효과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시장의 경우,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는 이점을 꼽았다. 국내시장 독과점 우려에 대해서는 먼저 넷플릭스가 진출한 일본의 경우 점유도가 9%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들며, 기우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넷플릭스 제휴는 국산 플랫폼을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이로 인한 소비자의 기회주의와 코드커팅(유료 방송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인터넷 TV, OTT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상) 현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제작시장의 경우, “우물 안 경쟁을 넘어 실험적 창작이 늘어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넷플릭스의 회당 제작비가 15억이 넘는 고비용 구조인 점을 짚으면서, 대규모 자본에 의한 국내 제작시장 종속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특히, 수익배분 측면에서는 해외 판로 확대로 제작사 매출 증가를 예상했다. “콘텐츠 유통과정에서 9:1의 불합리한 수익배분 구조로 인해 수수료 역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나, 중간유통이 없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조건이 유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남겼다. 그는 넷플릭스를 ‘메기’에 비유하며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이 그동안 국내에서 쉬쉬하던 업계 문제들을 수면화하고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러한 ‘메기효과’를 통해 국내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촉발하는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 교수의 1시간에 걸친 발표가 마무리된 이후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넷플릭스 국내 진출에 대한 평가와 대응과 관련하여 대학교수 등 학계 전문가와 참가자가 함께 하는 열린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서는 이상우 교수가 준비한 질문 △국내 VOD 소비패턴 변화에 대응하는 미디어 사업자의 경쟁력 △넷플릭스 진출로 인한 국내시장잠식 가능성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 실효성 △글로벌 OTT 업체 진출에 대한 정부 역할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국내 대형 기업의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방안 등을 중심으로 다각도의 전문가 관점이 다뤄졌다.

넷플릭스에 의한 시장잠식 우려에 대해서 지성욱 교수는 넷플릭스에 의해 시장이 잠식된 영국을 사례로 들며 “콘텐츠 시장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분야”라며 “한번 쏠리면 독과점을 멈추기 어렵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취했다.

이에 이종관 박사는 “영국은 우리나라처럼 성숙한 VOD 시장이 아니었고, 지상파 TV 중심의 미디어 환경을 가진 유럽 전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라며 영국 시장의 특수성을 설명하며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국내 VOD 시장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IPTV를 중심으로 아주 강력하게 형성돼있다”며 단기적으로 미치는 넷플릭스의 영향이 미미하거나 전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규태 교수는 “현재 국내 VOD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S-VOD(주문형 비디오) 기반 글로벌 OTT 사업자들의 국내 진입으로 VOD 시장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일어날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시장붕괴보다 시장 성장의 가능성을 더 높게 전망했다.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 실효성(실익)에 대해서는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었지만, 사실상의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부의 규제 또한 불필요하며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이대호 교수는 “국내 미디어 사업자들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해외로케로 제작하고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해 투자한 바가 거의 없다”며 “방송산업 구조 개선을 위한 방향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 형태로 사용이 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규제를 통해 해외 사업자의 진출을 막더라도 단기적으로 국내 사업자들이 해외 사업자들에 대응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며, 규제보다는 현재 국내 미디어산업 환경개선이 더 우선임을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넷플릭스의 400억 자금 투자는 초기 보여주기 투자에 불과하다”며,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입하더라도 아직 국내 사업자들에게 대응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봤다.

한지수 교수는 현재 국내 미디어 시장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혁신이 쉽지 않은 사정을 언급했다. 그러나 과거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진입을 시도했을 때, 삼성의 적극적 대응과 LG의 소극적 대응이 어떤 상반된 결과를 초래했는지 사례로 들며, 넷플릭스 또한 동일 선상에 놓고 혁신의 촉매제로써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한 교수는 “콘텐츠 시장에서 갈라파고스나 다름없던 일본 시장의 경우, 넷플릭스의 진출로 인해 기존 일본 시장에 거대한 충격을 주면서 지난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성장했다”며 국내 또한 수많은 진통에도 불구하고 타산지석으로 활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박민수 교수는 과거 국내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시행한 스크린쿼터가 국내 영화 시장 성장에 실제로 도움이 된 적이 없고 국내 산업은 이와 별개로 자체 경쟁력을 갖춰 생존할 수 있었다고 봤다. 넷플릭스 진출에 대해서도 “국내 콘텐츠 시장을 보호한다고 해서 성장하거나 보호해야 할 정도로 연약하지 않다”며 정부 규제의 무용론을 지지했다.

이종관 박사는 정부가 규제에 나선다면 규제 요건으로 국내산업의 △보호 △유치 △공정성 기여 등의 부분에서 합리성과 타당성이 무엇인지 짚어가며 “단순 기존 사업자 간 이해관계로 인해 규제를 요청하는 것이라면 보호가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DJ정부 때 ‘일본문화 개방’ 쟁점에 ‘국뽕 정서’로 반응했던 업계 반응을 들며 ‘정말 그들의 주장대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망했는가’ 반문하고, 정부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국내 시장의 역성장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기존 사업자 보호보다 국내 시장에서 역차별받는 부분을 개선해주는 게 낫다”며 진입규제보다 산업 환경 개선을 통한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더 무게를 뒀다.

소비자 측면에서,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진입이 기존 VOD 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다소 부작용이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소비자 효용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중립적인 견해를 밝힌 최세정 교수는 소비자의 선택 폭이 증가하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넷플릭스의 시장지배 우려에 대해서는 “처음 유입 요인이 있어서 한 번 선택하면, 지속적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넷플릭스 진입 이후 소비자 반응이 일어나는 시기의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그 시기에 시장 점유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점을 예고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곽 교수가 ‘넷플릭스 국내 진입이 메기 효과일지 황소개구리 효과일지 논의했던 부분’을 언급하고 개인적으로는 메기 효과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그는 “국내 사업자들이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긍정적이다”라며 “외주 제작사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도 있겠지만, 그동안 관행으로 해왔던 일에 대해 다시 분석하고 개선 혁신방안을 고민하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며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에서 콘텐츠 제작 활성화와 질 좋은 콘텐츠로 소비자에게 이익을 환원할 수 있는 구조가 되길 바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광회 기자 (elian118@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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