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 등 20여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조 단위 연매출을 올리고 있는 회사의 수장이 40대 여성인 곳이 있다. 이랜드월드 정수정 대표 이야기다.

이랜드월드는 사업형 지주법인이자 패션사업을 맡고 있는 이랜드그룹의 핵심 법인이다. 정수정 상무는 지난해 2월 이 곳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정수정 이랜드월드 대표
정수정 이랜드월드 대표

►좀 ‘쎈’ 남직원만 내려 보내던 부산 지역 영업 담당, 처음으로 여직원이 내려가다

정 대표가 1996년 이랜드에 입사해 초기에 맡은 업무는 숙녀복 브랜드 로엠의 부산지역 영업담당이다. 당시 부산 지역은 기가 센 사장님들만 모여 있는 곳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이렇다보니 ROTC 출신이거나 남직원들 중에서도 좀 '쎄다' 하는 직원들만 줄곧 내려 보내던 곳이었고 영업부 직원과 대리점주의 트러블이 끊이지 않았다.

정 대표는 당시를 기억하며, “부산 지역에 여직원이 영업부 직원으로 내려 온 것은 제가 처음 이었다”면서 “다들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내기라도 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정 대표의 끊질 긴 노력과 여직원 특유의 감성으로 대리점 주들과 단 한 번의 소음 없이 조화를 이뤄냈다. 그리고 몇 년 후인 2003년 로엠 브랜드장에 올랐다.

이후 중국 사업부 로엠 본부장, SPA 브랜드 미쏘 본부장 등 20여 년간 패션 사업부 현장 경영에 앞장서며 전략과 경영 노하우를 습득해 왔다.

10여 년 전 초반 중국 사업부에서 로엠 본부장으로 있던 시절 일화도 유명하다. 경영계획 수립 때문에 중국 전역의 지사장을 모으고 회의를 하면서, 정 대표는 계속 2배의 매출 성장을 이야기 했다는 것.

당연히 모두 안 된다고 하고 낮추자고 말렸지만 정 대표는 결국 목표 수립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높게 잡은 매출을 정 대표는 모두 초과 달성했다.

►대표이사 취임 후 경쟁력 강화 위해 경영시스템 개선에 집중

대표이사 자리는 단일 브랜드 운영만 책임지면 되는 본부장 역할과는 다르다. 여러 사업부 본부장들과 브랜드 책임자들을 이끄는 한편, 사업적으로는 굵직한 결단들을 내리고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여성 리더로서 그룹의 대표법인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나올 법 했지만 정 대표는 취임 하자마자 그런 우려를 말끔히 날려 보냈다. 대대적인 사업부 개편을 펼치는 등 특유의 강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소형 매장 위주로 운영되던 아동복 9개 브랜드를 유통사업 법인인 이랜드리테일로 영업 양수하고, 이랜드월드는 SPA 등 패션영역 강화에 집중했다. 또한 수익 창출 극대화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수익 브랜드와 적자 매장을 철수하는 등 경영시스템 개선에 집중했다.

지난해 장기적인 경영 계획에 따라 체질개선에 나선 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인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2천 4백억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던 아동복 매출이 빠졌음에도 매출은 1조 5천억을 올렸으며 영업이익률도 5%대를 유지했다.

►“내 실력이 특출 나서가 아니라 여성 경쟁력을 인정한 기업 문화 덕분에 가능했죠”

정 대표는 여성으로서 그룹의 대표법인에 총괄 책임자로 선임 된 것은 본인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여성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이랜드의 오랜 기업 문화 덕분이라는 것.

정수정 대표는 “회사 창업 초기부터 우리 사업의 70%가 여성에게 선택 받는 서비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성의 안목으로 사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직원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 같다”며 “사업에 대한 이해도 역시 여성이 더 뛰어날 뿐만 아니라 남성보다 더 프로패셔널 하다고 평가 받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랜드그룹 전체 임원 중 여성 임원 비율은 33% 달한다.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2.7% 인 것에 비해 12배가 넘는다. 임원뿐만 아니라 평직원 중에서도 여성 비율이 타 기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 패션 사업부문인 이랜드월드의 경우 지난해 전체 과장급 이상 관리자 비율 중 여성 비율이 36%에 달한다.

이렇게 여직원이 높은 비율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여직원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도 많이 작용했다. 이랜드는 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서 음주를 금지하고 있는데, 술 회식 및 접대문화가 없어 여성 직원들이 업무 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채용에서부터 배치, 평가, 승진에 이르는 모든 인사 시스템에서 남녀 차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하는 것도 이랜드의 강점이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온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사제도가 바탕이 되어 성별과 학력 등의 구분 없이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정 대표도 2000년대 초반 임신 하자마자 유산기가 있어 잠시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장기간 육아 휴직이 힘든 때였다.

하지만 유산 소식을 들은 당시 여성복 브랜드 사업부 본부장이 사원이었던 자신을 직접 불러 놓고 “아무런 걱정 말고 쉬고 싶을 때 까지 쉬고 오라”고 다독였다고 한다.

정 대표는 “아직도 그때 출산에 대한 고민을 해결 해주신 회사가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된다”며 “여성이 기업에서 자리 잡아 성장할 수 있는 기업 문화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능력위주의 철저한 인사시스템과 인재운용 방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랜드월드, 글로벌 경쟁력 강화하는 한 해 될 것”

한편, 정 대표는 올해 이랜드월드가 한층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까지 진행한 저수익 브랜드와 매장의 효율화를 마치고 수익성 향상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 “특히 성장 주축인 SPA 브랜드는 상품기획에서부터 생산, 판매까지 수직계열 구조의 완성으로 글로벌로 성장하는 데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월드는 SPA 부문에서 이미 최초, 최다, 최고의 3관왕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정수정 대표는 “중화권 시장 확대와 글로벌 이커머스와의 제휴를 통한 채널 강화 등 한국을 대표하는 SPA를 넘어 세계적인 SPA로 성장 할 수 있는 원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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