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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48)...아보카도

발행일시 : 2018-10-10 00:1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48)...아보카도

 
48. 아보카도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월요일의 점심 설거지가 끝난 뒤였다. 직책이 있는 수용수 몇은 창고에서 추석맞이 특별음식과 운동경기에 관해 회의 중이었다. 조장인 쇼군이 자리를 비운 기계조는 식탁에 둘러앉아 빈대코의 과수원에 관해 떠들고 있었다.
 
“사장님 형기가 6개월만 더 남았더라면 직훈 가면 좋을 텐데요.”
 
탁 사장이 빵잡이 경력을 자랑하며 아는 체했다.
 
“약용작물 재배와 표고버섯 재배 직훈이 있잖아요. 딱 좋은데.”
 
“좋으니 뭐 하나. 난 안 된다는데.”
 
“그렇죠. 직훈 가려고 징역살이 더 할 수도 없잖아요.”
 
하나마나 웃기는 소리를 듣고 있던 총무가 아보카도라는 아열대 과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장님, 이젠 복숭아나 사과 농사 비전이 없어요. 새로운 품종으로 바꿔봐요. 아보카도요. 아보카도는 열매도 씨앗도 돈이 되고 잎도 수피(樹皮)도 다 약재로 팔아요.”
 
빠삐용이 동의했다.
 
“그래, 그거 일류 샐러드 재료야. 그리고 열매하고 씨로 짠 오일은 마사지 오일로 쓴다.”
 
독서량 많은 총무가 빠삐용보다 정보가 많았다.
 
“씨앗을 약재로 쓰기도 해요.”
 
빈대코가 물었다.
 
“그 나무는 어디서 구하나? 몇 년이나 키워야 하고?”
 
“우리나라는 제주도 서귀포에 아보카도 농장이 있대요. 그쪽에 알아보면 묘목을 구할 수 있겠죠.”
 
과수에 관해서는 빈대코도 상식이 있었다.
 
“그런 나무는 접붙이기할걸? 묘목을 키우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하니 수지가 맞지 않아. 이러나저러나 제주도라면 모를까 우리 동네는 안 돼.”
 
“추운 지방에서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이 있대요.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젠 아열대 기후라잖아요.”
 
빈대코가 대머리를 휘저었다.
 
“사람하고 과수는 달라. 나무는 조금만 추워도 크질 않고 열매도 열리지 않아.”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면 되잖아요.”
 
빠삐용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 나무가 키가 커 보통 비닐하우스에선 키우기 어려울걸? 특별한 비닐하우스가 필요할 거야.”
 
“요즘 비닐하우스 설치 기술이 대단하잖아요.”
 
갖가지 요리교육을 마스터한 빠삐용이 아보카도의 판로에 대해 말했다.
 
“생산하면 판매 걱정 없지. 고급 식자잰 데다 한창 유행을 타는 중이고 다 수입하니까.”
 
기계조 조원은 빈대코 과수원 과수품종을 아보카도나무로 밀어붙였다. 총무는 한술 더 떴다.
 
“그 나무 아래엔 인디언시금치를 재배하세요. 인디언시금치도 요즘 대셉니다.”
 
기계조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빈대코는 기분이 일어나지 않았다. 기왕에 키우던 감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는 정이 들어 그렇지만 낯선 나무를 새로 키운다는 사실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길게 한숨이 내쉬고 난 빈대코가 우유팩을 꼭꼭 접으며 앉아 있는 털보에게 엉뚱한 소리를 했다.
 
“자네는 아들이 있어 좋겠다.”
 
정방형으로 접은 우유팩을 앞뒤로 돌려보면서 털보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들 있고 손자 있는 사람이야 나무도 심고 꽃도 심겠지만 난 그럴 기운이 없다. 기운이 쪽 빠졌어.”
 
털보가 퉁을 줬다.
 
“그러니 마누라 하자는 대로 하지 왜 그랬어?”
 
표정 변화 없이 빈대코가 또 엉뚱한 소리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 새벽엔 어머니가 꿈에 보이더라. 추석이 닥치니 내가 이러네…….”
 
빠삐용이 빈대코에게 따끔하게 말했다.
 
“여동생도 동생인데 성묘를 하겠지 왜 그렇게 걱정이 많나? 그만해!”
 
털보가 빈대코에게 물었다.
 
“친구야, 자네 아버지 쪽으론 아는 사람이 없어? 먼 일가친척도 없어?”
 
“친구야,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여동생 아버지는 알아도 내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고…… 어머니가 가르쳐주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물어보지 그랬어?”
 
눈길을 천장으로 향하며 딱딱한 목소리로 빈대코가 대답했다.
 
“물어봤지 안 물어봤겠어? 돌아가시면서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어쩌나. ……그까짓 거 알아서 뭐 하냐고 하시더라.”
 
빈대코만이 아니라 나머지 넷도 일제히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때 배호의 노래가 구성지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 너 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
 
너무 고루한 노래라고 생각하면서도 모두 흐뭇한 기분으로 듣고 있었다. 도라지꽃에 산딸기에 풀피리 불며 불며 물방아와 새소리를 들먹이던 노래는 두 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간다면서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수수밭 감자밭에 씨를 뿌리며 너와 살련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계조 다섯은 저마다 자신이 돌아갈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 돌아갈 곳 없는 털보와 빈대코와 탁 사장의 처지가 더 심하긴 했으나 아내를 잃은 빠삐용이나 얼결에 전과자로 전락한 총무의 신세도 처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수도 감자도 씨를 뿌리나?”
 
빠삐용이 빈대코를 향해 질문했다.
 
“감자는 씨감자를 심는 줄 아는데…… 그리고 수수는 씨를 뿌려?”
 
“뭘?”
 
씨를 뿌리든 꺾꽂이를 하든 남의 생각엔 통 관심이 없는 빈대코를 대신해 털보가 대답했다.
 
“감자는 씨감자 조각을 땅에 묻고 수수는 모종을 낸다고 하지. 그걸 파종이라고 하지만 씨를 뿌린다는 말은 좀 그렇다. ……내 말 맞지?”
 
농부인 빈대코를 돌아보며 확인을 요청했으나 빈대코는 여전히 저만의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응?”
 
남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내가 그때 너무했나? 하고 이젠 돌아볼 이유조차 없는 이혼한 아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참을걸 그랬나? 하고 빈대코는 한편으론 후회하고 한편으론 원망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고 남자가 한을 품으면 동지섣달에 땀띠가 난다더니 기어이 이런 꼴이 되고 말았구나, 하고 빈대코는 작업대 양쪽에 줄지어 앉은 수용수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제야 빈대코는 명절이 코앞에 닥친 지금 교도소에서 징역살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참, 내가 정신이 없다.”
 
“왜 그래?”
 
“내가 정신이 나갔다.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얼이 빠진 채 명절 강박증을 앓고 있는 빈대코와 달리 나머지 넷은 ‘선데이 서울’과 ‘주간경향’이라는 주간잡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배호의 노래 탓이지만 가을 탓이기도 하고 일주일 남은 추석 때문이기도 했다. 총무는 국민학생 시절에 겪은 혼분식 도시락 검사와 주산학원 다니던 이야길 했다.
 
“그렇게 주산 1급을 땄는데 그 뒤론 주산으로 계산해본 적도 없고 주산을 구경하지도 못했어요. 요즘 애들은 주산이 뭔지도 모를걸요?”
탁 사장은 자신이 중학교를 중퇴하게 된 사건을 털어놓았다.
 
“그 비닐우산만 아니었으면 중학교는 마쳤을 텐데. 그때까지는 난 본드 할 줄 몰랐어. 근데 그 새끼가 내 우산을 자기 거라고 지랄하니 어떡해.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운동화까지 잃어버렸거든.”
 
총무를 상대로 말하던 탁 사장은 털보와 빠삐용에게 눈을 맞추더니 말투도 바꿨다.
 
“종례 끝나고 나와 보니 신발장에 있던 운동화가 없어졌어요. 이틀 전에 산 새 거였는데…… 우산은 좋지도 않은 비닐우산이었어요. 운동화도 없지 그 새낀 자기 우산이라고 지랄을 하지…… 그래, 씨발새끼 니 가져라 하고 아구창을 날리고 세숫대얄 확 발라버렸죠. 그러곤 비 쫄딱 맞으며 맨발로 집에 와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제 빵잡이 팔자가 다 운동화하고 우산 때문이죠. 지금은 별것도 아닌데 그땐 그랬잖아요.”
 
빠삐용이 슬며시 웃었다. 어리석은 빵잡이로 여기던 탁 사장이 자신과 같은 시절을 살아왔고, 더군다나 신산스러운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니 가슴이 쓰라렸다. 검정고무신과 푸른색 천운동화, 찢어진 비닐우산과 왕대로 만든 우산살과 우산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빠삐용을 슬프게 만들었다.
 
“요즘엔 구두도 우산도 다 피에르 발망이나 피에르 가르뎅이잖아. 세월 참…….”
 
그들이 그러나 마나 빈대코는 여전히 자신만의 공상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 묘소를 둘러싼 감나무와 사과나무 대신 이제는 다른 풍경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털보의 주유소와 빠삐용의 멋진 레스토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자신의 과수원이었다. 줄지어 선 늘씬늘씬한 아보카도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아보카도 열매를 바라보면서 빈대코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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