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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49)...이감

발행일시 : 2018-10-11 00:1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49)...이감

49. 이감

빈대코는 숟가락 든 손을 천천히 밥상 위로 떨궜다. 옆 밥상에서 막 밥을 뜨던 흑장미 영감이 뒤로 돌아 일어나더니 쇠창살 밖에 서 있는 교사에게 물었다.

“어딥니까? ……어디로 가요?”

서류를 넘기던 교사는 흘낏 바라보긴 했으나 흑장미의 질문을 무시했다. 대답 대신 방 안을 향해 재차 빈대코에게 지시했다.

“짐 다 싸서 기다리세요. 출근 전에 나갑니다.”

이감 가는 교도소는 가르쳐주지 않은 채 교사는 돌아갔다.

“여긴 신문사나 방송사를 제일 무서워한단 말이오. 저번에 거기로 편지할 때부터 뭔 일 일어나겠구나 했지…… 그런 보고 올라가면 즉각 딴 데로 날려버리거든.”

빈대코의 이감에 대해 흑장미가 말했고 이혼법정까지 끌려갔다 온 사람에게 불시에 닥친 이감통보에 놀란 망치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참 재수 없네요, 사장님은. 여기저기 다치고 그런 곤욕까지 치르더니 또 이감이네요.”

최 사장도 안타까운 눈으로 빈대코를 건너다봤다.

“추석이나 쇠고 보내지 왜 지금 갑자기……. 이제 정이 들었는데 이게 무슨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소리래?”

그러나 스님은 냉정했다.

“급수 떨어져 이감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어디 가도 여기보다 못하진 않아요. 괜찮습니다.”

넋 나간 표정으로 밥상 앞에 앉아 귀신 꼴을 하고 있는 빈대코에게 스님은 거푸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천지불인이라지 않소. 사장님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래도 세상살이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이 사람 저 사람 가리고 살펴 복을 주고 화를 내리는 게 아니거든. 우리가 겪어봐서 알잖아. 그러니 맘 편히 먹고 여기나 저기나 다 같은 징역살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오.”

망치와 최 사장은 빈대코만큼이나 기운이 싹 떨어진 듯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했다. 수저를 내던지고 곁으로 다가온 최 사장이 빈대코의 무릎을 주무르며 말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오.”

그러면서 쩝쩝 입맛을 다셨다.

“이 양반이 무슨 투서를 하겠나 비리를 고발하겠나? 응? 방송사 주차장에 있는 친구한테 편지 한 통 했다고 이감을 보내나? 추석이 낼모렌데?”

그러나 결정 난 일이었다. 헌금함 털이 종수가 설거지하는 동안 빈대코는 짐을 꾸렸다. 요로 깔고 자는 침낭 안에 사제 이불과 옷가지를 넣고 수건과 양말, 게이 영감이 선물로 준 사각팬티도 넣고 먹다 남은 종합비타민과 이가탄까지 챙기고 나니 끝이었다. 망치가 걷어다 준 칫솔과 치약, 우유팩 다섯 개와 사탕 한 봉지도 넣었으나 침낭은 여유가 있었다. 다른 수용수와 달리 여벌의 옷도 없고 책도 없으니 빈대코의 짐은 단출했다.

미처 정신 가다듬을 틈도 없이 이감은 현실로 닥쳤고 즉시 진행됐다. 이 교도소 주소와 10방 혼거수 여섯 명의 수번을 적어주며 탁 사장이 당부했다.

“가자마자 편지해요, 사장님. 간단히 몇 자 적기만 해도 돼요.”

그 종이쪽지를 받아들자 갑자기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하지만 빈대코는 울지 않았다. 왠가 하면 복도를 다 지날 때까지 6방과 5방에서 마지막으로 마주쳐야 할 친구들 때문이었다. 단정히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연고와 소독약, 일회용 붕대와 일회용 반창고까지 챙겨 넣은 뒤 빈대코는 교사를 기다렸다. 그런 빈대코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방장 망치가 당부의 작별인사를 했다.

“사장님, 앞으론 화내지 말고 조용히 사세요. 어디 가시든지……. 참는 게 징역살이하기보다 낫지 않소.”

망치로 두 명을 때려죽인 무기수가 하는 말이니 허투루 들을 말이 아니었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보다 노인들이 더 화를 낸답니다. 저번에 우리 공장 그 노인네들 봤죠? 그 꼴 나지 않으려면 나이 먹을수록 참아야 합니다. 성질나더라도 나 죽었다 하고 사세요.”

출입문이 열린 뒤 빈대코는 혼거하던 다섯 명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그러고선 문밖으로 나가 운동화를 신고 탁 사장이 내주는 침낭을 받아 왼쪽 어깨에 걸머졌다. 복도 왼쪽이 거실이고 오른쪽에는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이 있었다. 앞선 교사를 따라 몇 걸음 걷자 출근준비 하느라 수복을 입거나 아직 러닝셔츠 바람인 수용수들이 철창살에 붙어 복도를 내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이동하는 모양인데 누가 어디로 왜 가는지 내다보는 그들 사이에 털보의 얼굴이 보였다.

“……나 간다.”

빈대코가 손을 내밀자 털보는 말도 없고 손도 내밀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한 걸음 다가간 빈대코가 그 뒤에 선 쇼군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쇼군도 상황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어어…….”

그렇게 야릇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방으로 걸어간 빈대코는 철창 앞까지 바싹 다가서지 않을 수 없었다. 빠삐용은 아직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뒤돌아 앉아 있었다. 손만 허우적거리는 빈대코를 대신해 다른 수용수가 빠삐용을 불러 일으켰고 얼른 창가로 다가온 빠삐용이 빈대코의 손을 잡았다.

“왜? 이감이야?”

빈대코는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턱만 끄덕였다. 빠삐용이 너무 꽉 쥐고 세게 당겨 오른쪽 어깨가 시큰거렸으나 빈대코는 턱을 끄덕이며 그대로 있었다. 이윽고 오른손을 빼 왼손으로 잡은 침낭 귀퉁이를 모아 잡았고 그때 지나친 6방에서 털보가 소리쳤다.

“편지해라, 친구야!”

다음 방에 총무가 있는 줄 알지만 빈대코는 더 이상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앞서 가던 교사가 걸음을 멈춘 채 얼른 따라오라는 듯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층계에서 교사가 물었다.

“공장에도 들러야 합니까? 뭐 가져가실 게 있어요?”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교사가 그렇게 물으니 공장에 들러 기계조 자리를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네, 고무신이 있습니다.”

왼손으로 침낭을 메고 오른손으로 눈물 비어져 나온 눈가를 문지르며 빈대코가 말했다.

“운동화도 있습니다. 수건도 있고…….”

교사가 인솔하는 수용수는 빈대코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교사가 쇠창살로 된 공장 출입문을 여는 동안 빈대코는 그 곁에서 공장을 들여다보았다. 두 달 전 털보와 함께 들어서던 때와 달리 그곳은 포근하고 정겨운 어둠이 서린 깨끗하고 넓은 집이었다. 오른쪽엔 털보와 목욕하던 공용화장실과 주임 교위의 사무실이 있고 정면에 보이는 텅 빈 마룻바닥은 자신이 쇼핑봉투에 철컥철컥 리벳을 박던 바로 그 자리였다.

빈대코는 불을 켜지 않은 공장으로 들어가 신발장에서 고무신과 운동화를 꺼내 불량 난 쇼핑봉투에 담았다. 식탁 곁으로 다가가 빨래걸이 장대로 천장 높이 걸어둔 수건을 벗겼고 그 수건까지 한데 넣은 쇼핑봉투를 침낭에 담았다. 문 앞에 선 교도가 외쳐 부를 때까지 빈대코는 한동안 기계조의 영역을 휘둘러보았다. 그러면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지난 두 달 동안 너무 정들었나 보다, 하고 빈대코는 생각했다. 이 자리에서 털보와 빠삐용을 만났고 그들과 아보카도 과수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고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혼법정에 다녀온 날에도 빈대코는 이곳에서 우유를 마시며 털보가 건네주는 고소미를 씹어 먹었다. 인성교육 갈 때나 의무실에 갈 때나 늘 이곳에서 출발해 이곳으로 돌아왔으니 이곳은 그야말로 집이었고 가정이었다. 운동장에 나가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교도관이 있었으며 그들은 늘 곁에 붙어 다니며 자신을 보호하고 위로했다. 어쩌면 이곳은 빈대코 생애 가장 철저한 안전지대였고 가장 따뜻한 공동체였다. 그래서 빈대코는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동 출입구 로비에 도착한 빈대코는 오늘 이감수 총원이 여섯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세 군데 교도소로 분산 이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중에 경유하는 교도소 두 곳에 각각 두 명 세 명 내려주고 자신만이 오늘 최종목적지로 이감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신분확인 하고 수용수에 딸려 보낼 서류를 챙기느라 왔다 갔다 하는 교도관들을 바라보면서 빈대코는 멍하니 서 있었다. 완전히 정신을 비운 전면적인 멍 때리기였다.

그 어떤 곳이든 이런 상태로 잠들 때까지 버텨야지, 하고 빈대코는 마음먹었다. 전신에서 힘을 빼고 눈과 귀도 작동하지 않고 멍한 기분으로 멍하게 서 있었다. 수갑과 포승을 들고 나타난 CRPT 요원 둘이 이감수 여섯을 두 줄로 세웠다. 수갑을 채우고 포승으로 몸을 동인 다음 여섯을 한 줄로 엮었다. 맨 뒤에 서 있던 빈대코는 마지막으로 CRPT 요원 앞으로 나섰다. 검은 팔각모를 쓴 젊은 CRPT 요원이 수갑을 내밀기 전에 빈대코가 먼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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