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 포스터(20세기폭스 코리아 / 유니버설 픽쳐스 코리아 제공)
사진='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 포스터(20세기폭스 코리아 / 유니버설 픽쳐스 코리아 제공)

영국 여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두 편이 개봉한다. '랍스터', '킬링 디어' 등의 작품으로 평단과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시얼샤 로넌의 연기가 일품인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가 국내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다.

두 편 모두, 중세 대영제국의 통치를 했던 여왕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의 후보에 오르고 수상하며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 팽팽한 ‘경쟁’의 스토리

먼저, 2월 21일 개봉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18세기 영국의 왕실을 배경으로 한다.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집권 하에, 나라 밖에서는 전쟁이 내부에서는 두 당파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여왕의 페이버릿(국가 통치자 옆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이를 지칭)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 분)는 괴팍하고 어린애 같이 성숙하지 못한, 앤 여왕을 보필하며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실직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이다.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귀족에서 하녀 신세가 된,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 분)이 궁중의 시녀로 들어오게 된다. 그때부터, 앤 여왕을 중심으로 한, 사라와 애비게일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애비게일은 서서히 앤 여왕의 관심과 사랑을 차지하기 시작하고, 귀족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을 되찾으며 권력을 쥐게 된다. 사라는 그런 애비게일을 견제하고 아내려 하지만, 이미 여왕의 마음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궁을 떠나게 된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앤 여왕의 모습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아이처럼 묘사된다. 이런 여왕을 두고 그 자리를 지키려는 자(사라)와 빼앗으려는 자(애비게일)의 대결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느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 못지않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가 영국 여왕과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는 두 여왕의 갈등을 그려낸다. 영화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마고 로비)와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시얼샤 로넌)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16세기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군림 아래 있었고, 스코틀랜드는 제임스 5세 사후, 프랑스의 왕비였지만 프랑수아 2세의 병사로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메리 스튜어트가 정권을 쥐게 된다.

촐처=네이버 지식사전
촐처=네이버 지식사전

이때부터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의 측근들은 더 적통에 가까운 메리 스튜어트를 견제하게 된다. 또한, 메리 퀸은 스코틀랜드 내에서도 기존의 존 녹스를 비롯한 개신교 세력들과 그녀의 이복오빠 제임스 등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며 힘겨운 왕권을 유지하지만, 세 번의 결혼 실패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잉글랜드로부터의 제대로 왕권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폐위 당하게 된다.

이후, 엘리자베스의 보호 하에 잉글랜드로 도피 생활을 했으나, 끊임없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죽이고 자신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등극하기 위한 모반을 꾸미다가 참수형을 당하고 만다. (영화에서 입은 빨간색 드레스는 그녀의 종파인 가톨릭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메리 스튜어트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굽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볼 수 있다.

기구한 운명의 메리 퀸은 단리 경과의 2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만이 유일한 그녀의 희망이었고, 훗날, 메리 퀸의 아들 제임스 1세는 최초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시키며 통치하게 된다.

사진='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컷
사진='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컷

◇ 캐릭터가 주는 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의 세 명의 배우가 보여주는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먼저, 올리비아 콜맨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블랙 코미디로 재해석한 앤 여왕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재연했다.

극중, 앤 여왕 캐릭터는 변화무쌍한 감정의 기복을 보여주는데, 콜맨은 조울증 환자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캐릭터로 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그녀의 연기는 지난 1월에 열린 제 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인정받은 바 있고, 이번 25일(한국시간) 열리는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강력한 여우주연상 수상 후보로 올라있는 상태이다.

사진='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컷
사진='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 컷

탐욕스런 하녀 애비게일 역의 엠마 스톤과 강직한 카리스마 넘치는 사라 제닝스 역의 레이첼 와이즈 역시, 그에 못지않은 연기를 선 보였다.

엠마 스톤은 지금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힘들었던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애비게일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으며, 레이첼 와이즈 역시 강직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라 제닝스의 역에 감정이입을 제대로 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3명의 배우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보여주는 앙상블은 팽팽한 균형감을 이루며 극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에서는 메리 퀸 역의 시얼샤 로넌의 당찬 연기가 돋보인다. 마고 로비가 맡은 엘리자베스 여왕 보다 메리 퀸의 비중이 큰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시얼샤 로넌은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 시키며,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사진=IMDB
사진=IMDB

어리지만 당차고 강단 있는 모습, 관용을 베푸는 인자함, 그리고 한 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정 선의 연기까지, 시얼샤 로넌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메리 스튜어트’라는 인물과 혼연일치가 됐다. 특히, 마지막에 레드 드레스를 입고 사형장에 서면서도 그 권위와 기품을 잃지 않던 장면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고귀함이 느껴지는 ‘여왕’ 그 자체였다.

마고 로비 또한, 천연두를 앓고 난 엘리자베스 여왕 역을 재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분장에 할애했다.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는 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2019) 분장상과 의상상 후보에 올라있다.

사진=IMDB
사진=IMDB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하고 남자로 살아가겠다”고 선포한 극중의 대사처럼, 엘리자베스 여왕은 통치권을 위해 많은 것을 버려야만 했다. 메리 퀸에 비해, 이성적이며 차분한 캐릭터를 연기한 마고 로비의 모습은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견제와 경쟁의 대상일 수도 있는 메리 퀸을 보호해주고 끝내 사형집행에 동의는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임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마고 로비의 섬세한 감정연기를 잘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상반된 이미지의 두 여왕이 등장하지만, 각각 캐릭터가 가진 개성을 돋보이게 함과 동시에 서로 보완해주면서 영화는 강한 몰입감을 준다. 작년 미국 시사회 후, “시얼샤 로넌과 마고 로비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를 통해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외신의 확신에 찬 보도가 있었다. 과연, 두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가 국내에서는 어떤 평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시각적인 즐거움

두 영화는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등에 후보에 올라있다. 여왕들이 입은 의상들과 16세기, 18세기 궁중의 모습들에서 화려하면서도 그 시대적 특징도 느낄 수 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등장하는 미술품들과 의상들은 당시 잉글랜드 귀족사회의 문화를 잘 보여주며,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에서의 마고 로비의 분장, 시얼샤 로넌의 빨간 드레스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여성 통치자들의 어려움을 잘 묘사해 냈다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두 편의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는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서 한 시대를 군림했던 세계적인 인물들의 재해석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다 신선한 흥미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21일 개봉이며,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는 현재 CGV에서 진행 중인 ‘2019아카데미 기획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넥스트데일리 컬처B팀 김승진 기자 sjk87@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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