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더 와이프'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영화 '더 와이프'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팝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족이나 연인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 헌신하면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게 가족이든 연인이든 세상이든 간에. 자신의 존재를 낮추거나 감추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른다. 사람은 그 어떤 존재도 자신 앞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해야 세상도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더 와이프'는 평생을 남편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 여성 조안 캐슬먼(글렌 클로즈 분)을 조명한다. 조안의 남편이자 유명 작가인 조셉 캐슬먼(조나단 프라이스 분)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조안의 얼굴에는 수심이 드리운다.

조셉과 조안은 대학교수와 학생으로 만나 사랑을 했고, 유부남인 조셉은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조안을 선택한다. 이에 조안은 조셉의 글을 대필하며 그의 사랑을 갚아가고 이때부터 둘의 운명은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린다.

사진=영화 '더 와이프' 스틸컷
사진=영화 '더 와이프' 스틸컷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셉은 작가 아들인 데이빗(맥스 아이언스 분)과 아슬아슬한 부자 관계를 형성하고, 스톡홀름으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가하러 가서도 그 불안정한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거기에 조셉의 업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나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터 분)이 가세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노벨상 수상자로 극진한 대접을 즐기는 조셉에 반해, 조안과 아들 데이빗은 모든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남편과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는 정체성의 혼란이 그들을 힘들게 만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안은 남편을 충실하게 내조하며, 나다니엘과 집요한 의문과 데이빗의 추궁에도 진실을 숨기고 흔들림 없이 남편을 보호한다. 조셉은 공식석상에서 늘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만, 조안은 그때마다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노벨상 수상소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빼달라고 하지만, 조셉은 언제나처럼 아내 조안에게 감사로 수상소감을 전한다. 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내 조안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조안은 조셉에서 그간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그로 인해 평소 심장질환이 있던 조셉은 조안이 보는 앞에서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사진=영화 '더 와이프' 스틸컷
사진=영화 '더 와이프' 스틸컷

사랑했기 때문에 남편을 위해, 평생을 ‘킹 메이커’로 살아온 조안에게 조셉의 죽음은 충격적인 슬픔이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작점일 수 있겠다. 평생을 누군가의 삶을 위해 살아온 그녀에겐 탁 트인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아내와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삶을 찾아가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조차도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감내하는 조안의 모습은 어쩌면 자신보다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야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쉽게 여우주연상 수상에 실패했으나, 절제되고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준 글렌 클로즈의 명품연기는 조안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조셉 역 조나단 프라이스도 못지않은 연기로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등장은 재미를 더했다. 또한, 젊은 조안 역을 연기한 애니 스털크는 실제 글렌 클로즈의 딸로 알려져 이목을 끌었다.

사진=영화 '더 와이프' 스틸컷
사진=영화 '더 와이프' 스틸컷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지만, 남편의 ‘킹 메이커’를 자초한 한 여성의 삶과 희생이 짙은 여운으로 남는 영화 '더 와이프'는 지난 달 27일 국내 개봉했다.

넥스트데일리 컬처B팀 김승진 기자 (sjk87@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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