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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그곳에 가면 너를 만날까, 그리운 달동네로 가보자

발행일시 : 2019-05-23 02:00

정영주작가는 최근 해외 미술계에서 가장 열광하는 한국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요 몇 년 사이에 두각을 나타낸 많은 작가 중 정영주만큼 가파르게 인지도가 올라간 작가는 드물다. 전시회나 아트페어에서 가장 많은 대중들이 정영주작가의 달동네 그림 앞에 몰린다.

지난 201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으로 정영주작가의 그림이 낙찰된 후 대중의 관심이 더욱 쏠리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바이어들이 열광하는 정작가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자.

어릴적 그곳에 가면 너를 만날까, 그리운 달동네로 가보자

과거 급격한 도시화의 후유증의 산물인 이른바 달동네를 묘사하고 있다. 옹색한 집들이 빼곡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인데 과연 어떤 매력 때문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수 많은 집들에서 능히 일어날 만한 일상의 풍경들이며 정겨운 가족들의 얼굴이 저절로 떠오른다.

최근 작품에 대한 미술애호가들의 애정과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이에 작가의 열정이 보태어져 매년 수십 회가 넘는 전시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일회계법인, 해운대사회복지관, 프랑스 Givert Joseph 서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외 주요 단체 및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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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추상적 공간은 의미로 가득 찬 구체적 장소가 된다. 그리고 어떤 지역이 친밀한 장소로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지역에 대한 느낌, 즉 장소감(sense of place)을 가지게 된다.‘ 
인간주의 지리학자 Yi-Fu Tuan은 장소에 대한 사랑을 평생 학문의 주제로 삼았으며 ‘모든 민족에게 환경은 단순한 자원을 넘어 깊은 정과 사랑의 대상이자 기쁨과 확실성의 원천이다’ 라고 역설했다. 이와 같이 인간이 물리적 환경과 맺는 정서적 감정과 태도를 ‘Topophilia’ 즉 장소애(場所愛)라고 한다. 장소는 정지된 곳으로서 개인들이 부여한 가치가 머무는 곳이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친밀함이 축적된 곳이다. 소설, 시, 영화, 연극,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되어 온 ‘장소애’는 현대인들의 삶의 여정에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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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부터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기억으로부터 장소성을 발견하여 이를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또 다른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미술작가의 몫일 것이다. 작가들은 시간적으로 누적된 사건들을 기억하는 장소를 재구성하거나 상상의 장소를 입체적 혹은 평면적으로 시각화한다. 장소기억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개인적인 기억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사적인 요소도 포함하지만, 이러한 의도와는 독립적으로 작가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심미성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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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을 한다 할지라도 작가는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감성적이거나 회고적인 감정에 빠져있는 과거지향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기억하는 장소의 시간적 공간적 가변성을 인식하는 작가는 기억을 단순히 과거를 재생하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기억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간극의 시간에 무게를 둔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들과 감정이입으로 간극을 채워나갔을 또 다른 우리들이 그와는 다른 장소의 이미지를 만들고 의미를 불어넣고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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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장소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시간적 간극이 메워지는 과정은 장소적 간극과 결핍이 메워지는 과정과 일치한다. 따라서 작가는 그의 작품에 공감하고 작품의도에 동의함으로써 우리들이 간극을 메워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장소이미지는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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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에 대한 사랑을 회화로 풀어낸 작업들은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렸던 그리운 순간들을 환기시킨다. 정영주의 ‘도시-사라지는 풍경’ 시리즈는 ‘토포필리아’의 재현으로서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표현한다. 

그녀의 작품은 먼 곳으로 갈수록 작아지면서 점점 사라지는 집들의 풍경을 담았다. 노을이 지면서 어스름이 깔리는 하늘 아래 끊임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판잣집에 하나 둘 불이 켜진 모습은 그리움과 애잔함 그리고 따뜻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도시화 속 사라져 가는 풍경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이 풍경이 영원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에서 비롯된 장면이다. 노을이 지면서 어스름이 깔리는 하늘 아래 끊임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판잣집에 하나 둘 불이 켜진 곳은 실제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기억 속에 간직된 관념적 장소이다. 급격한 소멸과 사라짐 속에서 악착스레 빛을 뿜어내는 산동네는 작고 허름한 집들의 집적과 공존으로 표현된다. 산동네, 흔히 달동네라고 불리는 이곳은 한국의 근대화와 도시화의 문제들, 자본주의의 욕망들, 그리고 인간적인 공간, 나아가 시간과 기억의 관계 등 너무 많은 의미를 지닌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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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이용해 부조적인 표면처리를 하고 그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하는 작업 방식은 산동네라는 분위기를 촉각적으로, 물질로 더 실감나게 구현하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표면이 굴곡진 한지의 질감과 그 한지에 스민 색채의 깊이감은 아득한 시간의 흔적과 삶의 애환을 촉각화하고 심리적으로 강화시켜 준다. 평면과 한지의 결합을 통한 이중의 화면구성, 그리고 지붕과 벽으로만 표현된 자연스러운 집의 형상은 입체적 장소로 구현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실제 장소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과거 기억의 장소를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발휘하여 애잔한 감정으로 녹여내고 현재적 시점에서 부재한 시간에 간극을 메워 장소를 재해석하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 기억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기억이란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고 또 하고자하는 더 이상 시각적이지 않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 지나간 단면적인 장소라 할지라도 장소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2차적인 해석을 가능하게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어느 순간에 의미를 보태어가는 이러한 과정을 기꺼이 즐긴다.

정영주 작가는 1970년 서울 출생으로 1994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하여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대학 재학시절 전국대학 미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귀국 후 홍익대학교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1995년 베르사이유에서 첫 개인전 이후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국내외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그리고 아트페어에 참가하였다. 

 강수현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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