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이륜차 생태계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주목받는다.

현재 도로 위를 달리는 전기이륜차 수는 1만대가 채 안 된다. 2020년이 되면 20만대로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전체 이륜차 시장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변수가 있다. 충전 인프라 확보가 관건이다. '배터리공유스테이션(이하 스테이션)'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배터리를 수시로 교환할 수 있는 자판기 형태 시설이다. 정부는 물론 국내외 민간 업체가 스테이션 구축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스테이션 확대, 업체 10여곳 '의기투합'

스테이션 사업에 나선 국내 업체는 10여곳 안팎이다. 대림오토바이 오토스원, CJ대한통운이 가장 적극적이다. 삼성SDI와 KT, GS칼텍스도 뛰어들었다.

업체별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대림오토바이는 국내 유일 이륜차 제조기업이다. 40년이 넘게 이륜차 개발에 집중해 왔다. 지난해 8월에는 첫 전기이륜차 '재피'를 선보였다. 고효율 리튬이온 배터리와 국내 주행에 최적화된 모터를 적용했다. 주행성능과 내구성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 스테이션 표준화도 주도할 목표다.

해외시장을 상대로 스테이션 구축 실적을 확보한 곳도 있다. 오토스원이 최근 필리핀 진출에 성공했다. 스테이션 국산화율이 80%에 달한다. 소모품만 중국산을 쓴다. CJ대한통운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관련 업계와 컨소시엄을 구성, 이르면 올 하반기 스테이션 사업을 시작한다.

삼성SDI도 참전했다. 배터리 기술력을 앞세워 스테이션 확산에 힘을 보탠다. 삼성SDI는 견고한 각형 배터리 구조와 혁신적이면서도 안정적인 팩 설계 기술을 확보했다. 미국 유명 모터사이클 회사 할리데이비드슨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이들 기업 모두 지금은 아군이다. 전기이륜차 시장이 이제 막 태동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고민을 함께한다. 기술적 한계 극복에도 협업이 필요하다.

기존 전기차 충전소와는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스테이션에는 크게 다섯 가지 이상 요소기술이 들어간다. 네트워크(통신), 전력·전자, 전기 회로, 배터리 분야가 포함됐다. 스테이션 내부 구조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알아야 한다.

설비 진단 후 에러 코드를 서버로 보내는 작업도 이뤄진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에서 들어오는 충전상태(SOC) 값을 안정화하는 기술도 요구된다.

대구시가 추진하는 배터리 교체형 전기이륜차 디자인.
대구시가 추진하는 배터리 교체형 전기이륜차 디자인.

◇표준화 선점 경쟁…주유소와 달라

스테이션이 자리 잡은 후에는 표준화 경쟁이 불붙는다. 국내 5대 정유사 주유소는 차량, 이륜차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받는다.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전국 어느 주유소에서도 연료를 채울 수 있다.

반면 전기이륜차는 제조사가 정해준 배터리만 장착 가능하다. 배터리는 전력 공급 외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데이터 통신이 이뤄지도록 한다. 배터리 SOC 값, 잔량을 속도계에 보내준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과도 정보를 주고받는다.

제조사별 이 같은 시스템 운영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전기이륜차 배터리와 운영 방식 표준화가 시급한 이유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배터리 대역에 대한 교통정리가 불가피하다. 배터리는 현재 48·60·72V(볼트)로 나뉜다. 스테이션을 통해 세 가지 대역을 전부 감당할 순 있지만, 많은 대역을 공급할수록 에너지 효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20% 가까이 충전 요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전기차 대상 급속·완속 충전기는 대부분 고전압 하나를 쓴다. 그런데도 충전 요율은 100%가 아니다. 정부는 95%만 넘기면 안정적인 것으로 본다.

스테이션 내 배터리를 얼마나 둘지도 숙제다. 지역·배터리 대역대별 전기이륜차 충전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

정부도 민간 노력에 호응한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이 표준화를 진행 중이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도 배터리 공용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표준화가 언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2030년이 넘어갈 수도 있다. 지금은 전기이륜차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업계는 표준을 기다리지 않는다. 전기이륜차, 스테이션 시장을 동시에 키우면서 표준을 준비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친다. 임시 허가 제도를 활용, 시범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션 인프라 선점 업체가 표준 주도권을 쥘 것”이라며 “업체 간 절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분석]가솔린VS전기…이륜차시장 승자는?

전기이륜차는 이제 막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가솔린 이륜차에 맞서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이륜차 수요가 가장 많은 분야는 배달이다. 국내 이륜차 220만대 중 170만대가 배달용으로 쓰인다. 전기이륜차 점유율은 1%에도 못 미친다.

배달용 이륜차는 속도 경쟁을 벌인다. 주문 한 건이라도 더 처리하려면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전기이륜차는 가속력, 순발력이 떨어진다. 최대 50m를 2초대 끊는 일반 이륜차보다 2배 가까이 더 걸린다.

이 같은 격차는 배터리 수명 때문이다. 기본 성능만 놓고 보면 전기이륜차가 밀리지 않는다. 되레 첫 스타트는 전기이륜차가 앞선다.

그러나 제조사들은 토크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최대 성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한다. 배터리 수명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은 배터리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셀 간 균형을 계속 조정한다.

주행거리도 전기이륜차가 짧다. 일반 이륜차 대비 3분의 1 안팎이다. 7리터 연료로 최대 280km를 달리는 가솔린 이륜차와 달리 100km 정도에 그친다. 그만큼 배터리 충전 횟수가 늘어나는 셈이다.

평균 충전 시간은 4~5시간이다. 급속 충전 시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제조사 대부분은 완속 충전을 권장한다. 전기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급속 충전은 배터리 수명 감소 원인이다.

제품 가격도 전기이륜차가 비싸다. 350만원에 이른다. 가솔린 이륜차(150만~200만원)보다 높다. 그러나 '배터리공유스테이션'(이하 스테이션)이 확산되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당장 충전 이슈가 해결된다.

스테이션 구축이 주유소를 세우는 것보다 간편하다. 더 많은 장소, 공간에 스테이션을 조성할 수 있다. 220V(볼트) 전기가 들오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능하다. 새 배터리로 갈아 끼우는 데 15초면 충분하다.

가격 경쟁력도 급상승한다. 배터리를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구입비가 50만원가량 내려갈 전망이다. 230만원 상당 정부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일반 이륜차 이용자가 전기이륜차로 바꿀 경우 폐차지원금 명목으로 2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유지비도 줄어든다. 일반 모드로 주행했을 때 30~40% 절감된다. 소음도 적게 발생한다. 배달관련 업체는 이륜차 소음 관련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친환경 이동수단이라는 강점도 있다. 대림오토바이에 따르면 가솔린 이륜차 1대를 전기이륜차로 바꾸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669kg 감소한다. 이는 소나무 62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배달 대행업계도 전기이륜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스테이션 확대 작업 추이를 지켜보며 갈아탈 준비를 시작했다. 바로고, 생각대로 등 일부 배달 대행업체는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바로고 관계자는 “2020년 전기이륜차를 실제 업무에 적용할 목표”며 “배달대행과 전기이륜차 산업 간 결합으로 새로운 먹거리 창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로고는 현재 등록 배달기사 3만여명을 확보했다.

[이슈분석]전기이륜차, 세계는 지금

대만의 고고로(Gogoro) 서비스. 전기이륜차 운전자가 고스테이션(GoStation)에서 충전이 다된 배터리팩을 꺼내고 있다.
대만의 고고로(Gogoro) 서비스. 전기이륜차 운전자가 고스테이션(GoStation)에서 충전이 다된 배터리팩을 꺼내고 있다.

세계 전기이륜차 시장은 무주공산이다. 아직 산업을 이끄는 맹주가 나타나지 않았다. 후발주자에게도 선두권으로 치고 나갈 기회가 열려있다.

일단 중국이 가장 앞에서 달린다. 중국 전체 이륜차 중 절반 이상이 전기이륜차다. 정부 의지가 뒷받침됐다. 내연기관(가솔린) 이륜차에 대해선 운행 허가를 안 내주는 도시가 늘고 있다. 인구 천만 이상 대도시가 즐비하다. 상하이, 베이징, 선전, 광저우가 대표적이다.

수요가 늘면서 전기이륜차 업체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유럽으로 수출 길을 뚫었다.

대만도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확보했다. 대만 회사 고고로, 킴코가 선봉에 섰다. 가솔린 이륜차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전기이륜차로 전이할 목표다.

배터리공유스테이션(이하 스테이션) 확장에도 속도를 낸다. 고고로는 자판기 형태 배터리 교환시설을 운영 중이다. 공유경제 기반 서비스다. 운전자는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고스테이션'을 찾는다. 완충 상태 배터리로 갈아 끼울 수 있다.

이 시설은 대만 시내 주유소·편의점 등 600곳에 설치돼 있다. 관련 특허도 200개 넘게 보유 중이다. 고고로는 국내 진출도 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EU)도 전기이륜차 도입에 적극적이다. 관련 법·제도를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 배터리 대역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정리했다. 전기이륜차용 배터리는 현재 48·60·72V(볼트)로 나뉜다. EU는 고전압을 쓰지 못하도록 한다. 48볼트 제품에 한해 보조금과 인증이 나온다.

배터리는 누전에 따른 감전사고 위험을 내포한다. EU는 이 같은 점을 우려, 48볼트로 시장을 열 계획이다. 다만 전압이 내려갈수록 전기이륜차는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48볼트 배터리 적용 전기이륜차 최대 속력은 50km 안팎이다.

반면 미국을 포함한 북미 지역 분위기는 냉랭하다. 영토가 넓기 때문이다. 전기이륜차는 가솔린 이륜차 대비 주행거리가 3분의 1가량 짧다. 배터리 기술 개발로 극복해야 할 숙제다.

국내에서는 2016년부터 전기이륜차 붐이 일고 있다. 정부는 2017년 전기이륜차 1200대에 보조금을 집행했다. 관련 업체 수도 10곳이 넘는다. 중국에서 주요 부품, 완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에 크게 밀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산업 표준 주도권을 쥐려면 국내 생태계부터 서둘러 확대해야 한다”며 “보조금 없이도 시장이 클 수 있도록 배터리공유스테이션을 늘리고 보험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민욱 기자 kmu@nextdaily.co.kr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