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항생제 소비량은 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63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사소한 감기에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등 오남용이 만연하다. 사람에게 쓰는 항생제만 문제가 아니다. 가축 등 동물에도 무분별하게 쓴 항생제는 인간에게 부메랑이 돼 날아왔다. 항생제 내성균(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된 가축 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에 따른 슈퍼 박테리아 감염은 급속도로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작년 환자 수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근본적인 대책은 항생제를 줄이는 길 밖에 없다. 병원 감염관리, 적절한 치료제 개발·보급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은 감염 인프라 구축비용 부족을 호소한다. 치료제는 턱 없이 낮은 약가로 제약사가 개발을 포기한다. 인류에 닥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인 슈퍼박테리아 대응을 위해 국가 차원 대책이 절실하다.

◇슈퍼 박테리아 감염 1년 새 두 배 이상 증가

국내 슈퍼 박테리아 감염은 빠르게 증가한다. 새롭게 항생제 내성균이 발견되고 감염 관리가 강화되면서 신고 건수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감염병관리규정에 따라 모든 의료기관의 신고가 의무화된 슈퍼 박테리아는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종(CRE) 감염과 반코마이신내성황색포도알균(VRSA) 감염이다. 국내서 감염 사례가 보이는 균은 CRE가 대부분이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포털에 따르면 CRE 감염증 환자는 신고가 의무화된 2017년 5716건에서 2018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1만1911건을 기록했다. 올해 4월 기준 감염증 환자는 3948명에 이른다.

이형민 질본 의료감염관리과장은 “아직 국내 감염 사례가 없는 VRSA를 제외하고 CRE 감염증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다른 국가도 2~3년 증가하다 감소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우리나라도 2017년 국가 관리가 본격화된 이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항생제는 박테리아 생존에 필수인 신호나 대사과정을 저해한다. 내성균은 기존 항생제 작용기전을 회피해 사람 몸속에 우점종으로 남는다. 신규 항생제를 개발해도 기존 약품과 같은 작용기전을 갖는다면 효과가 없다.

◇항생제 오남용이 낳은 악재, 전 세계 확산

슈퍼 박테리아는 전 세계적으로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악재로 슈퍼 박테리아를 꼽았다. 영국 경제학자 짐 오닐은 보고서를 통해 항생제 내성 확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2050년까지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100만명이 사망하고, 약 100조달러(약 10경원)의 경제적 손실을 전망했다.

국내도 슈퍼 박테리아 감염으로 연간 최대 5500억원이 넘는 사회적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실에 따르면 CRE 균형증 환자 1인당 사회적 비용은 1억4130만원, 다재내성 녹농균(MRPA) 폐렴은 5807만원,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MDRA) 폐렴은 5621만원으로 나타났다. 슈퍼 박테리아로 조기 사망하는 환자는 연간 3900여명으로 추산됐다.

새로운 슈퍼 박테리아 위협으로 불안도 커진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칸디다속진균(C 아우리스) 세계 확산을 경고했다. 이 균은 박테리아가 아닌 곰팡이에 기반하는데 항생제뿐만 아니라 항진균에도 내성균이 발견돼 '슈퍼 버그' 우려를 키운다. 치사율이 60%에 이른다.

손장욱 고대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C 아우리스는 몇 년 전 미국에서 발견돼 수십명 사상자를 낸 균”이라면서 “아직 국내에서 보고된 바는 없지만 치사율이 높은 균으로, 국내로 전파되는 것은 시간 문제여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원인은 항생제 오남용이다. 항생제 사용이 만연한데다 약효가 듣지 않은 경우 더 강력한 약품을 사용해 내성이 커진다. 실제 '2017년 의약품 소비량 및 판매약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항생제 소비량은 32.0DID다. 1000명 중 32명이 매일 항생제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OECD 평균(19.6DID)에 1.63배에 달한다.

감염관리 체계도 부족하다. 정부는 2016년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발표하면서 CRE, VRSA 등 두 종에 대해 모든 의료기관의 감염 신고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 역시 배양검사 등으로 균이 발견됐을 경우만 한정한다. 대형병원이 아니고서야 모든 중환자에 배양검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제 대응이 어렵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슈퍼박테리아는 병원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70% 이상이기 때문에 원내 감염관리가 중요하다”면서 “중환자실을 중심으로 슈퍼박테리아 등 감염병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염 모니터링 체계·치료제 개발 병행 필요

슈퍼 박테리아는 대부분 중환자실이나 검사실에서 주로 감염된다. 병원 내 각종 검사도구, 혈액, 타액 등으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특히 감염 사각지대로 꼽히는 곳은 요양병원이다. 상대적으로 노인 감염률이 높은 상황에서 고령자가 많은 요양병원은 취약지다. 배양검사가 비교적 잘 이뤄지는 대형병원을 제외하고, 재정적으로 열악한 요양병원, 중소병원은 슈퍼 박테리아 감염이 빈번하다. 수가 등 감염 방지를 위한 인프라 지원을 확대하고, 중소병원 대상 감염 모니터링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손 교수는 “슈퍼 박테리아 배양검사 수가가 제한적인데다 중소병원과 노인이 많은 요양병원은 감염 취약지”라면서 “대형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 보균자라는 이유로 환자를 입원시키기에는 낭비되는 자원이 많아서 요양병원으로 보내야 하는데, 현재 감염 수준으로는 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약가 정책 개선, 연구개발(R&D) 확대도 필요하다. 현재 슈퍼 박테리아 치료제로는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의약품 2~3종이 전부다. 비교적 고가인데다 이마저도 국내 유입이 어렵다. 보건당국 약가협상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약가를 매겨 판매 동기가 떨어진다.

국산 제품도 마찬가지다. 동아에스티는 2014년 치료제 '시벡스트로'를 개발했지만 판매는 포기했다. 미국과 비교해 최대 3분의 1 가격에 약가가 매겨져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단순히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내 판매를 포기하면 기업윤리에도 맞지 않다”면서 “다만 슈퍼 박테리아 치료제는 반드시 필요한 약이지만 수요가 많지 않은 것을 고려해 정부가 합리적으로 약가를 보존해 주면 환자와 기업 모두 만족할 수 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 [인터뷰]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 “슈퍼 박테리아 전쟁, 감시체계·치료제 공급 필수”

“슈퍼 박테리아 대응은 전쟁입니다. 적이 누구고 어떻게 침투하는지 알아야 전쟁에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철저한 감시체계와 적을 분석하는 역량이 요구됩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슈퍼 박테리아를 단순 감염병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매년 4000명에 가까운 환자가 사망하는데다 현 의료체계에서는 감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어 국가 차원 대책이 필요하다.

엄 교수는 매년 슈퍼 박테리아 감염이 급증하는 이유로 열악한 감시, 대응 체계를 꼽았다. 감염 70% 이상이 병원 내에서 환자, 의료진으로부터 이뤄지면서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이 진원지로 부상했다.

그는 “국민은 병원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해야 할 공간이라고 인식하지만, 실상 병원에는 가장 많은 세균과 병이 존재하는 위험한 공간”이라면서 “현 병원 구조 상 모든 감염병과 세균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슈퍼 박테리아는 단순 검사나 증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배양검사로 균을 정밀 분석해야 한다. 이조차도 대형병원이 아니면 어렵다. 감시 체계도 열악하다. 2000년대 들어 대한의료관리감염학회를 중심으로 중환자실 대상 감염병 감시체계를 도입했다. 이 시스템에 가입된 병원은 전체 10%가 채 안된다.

엄 교수는 “국가 감염병 관리 대책에 따라 모든 병원이 슈퍼 박테리아 감염 사례가 나오면 국가 기관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것은 병이 발생하기 전 모니터링이 아니라 사후 신고 개념”이라면서 “재정적으로 열악한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은 배양검사 등이 어려운데, 이들은 제쳐두고 대형병원에서만 감시가 이뤄진다면 감염관리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고위험군 배양검사를 확대하도록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소병원, 요양병원에서 감염자가 증상이 악화돼 대형병원으로 옮겨지면, 거기서도 감염이 이뤄져 악순환이 반복된다.

장기적으로 사람뿐 아니라 동물까지도 항생제 사용 관리를 확대해야 한다. 실제 전체 항생제 사용량의 60%가 동물이 대상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항생제 내성균을 가진 가축을 가공해 식품으로 만들 경우 사람이 섭취했을 때 감염이 발생한다. 실제 정부도 최근 식품 유래 항생제 내성 문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치료제 출시나 개발 동기를 높일 합리적 약가 대책도 필요하다. 비싼 외국 의약품에 의존하기 보다는 합리적인 약가를 제시해 국산 의약품 개발을 장려해야 한다.

엄 교수는 “최근 항생제 내성균을 가진 가축 고기를 섭취했을 때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는 만큼 슈퍼 박테리아를 인간과 동물, 환경과 연관 짓는 원-헬스 개념을 인지해야 한다”면서 “무조건 낮은 가격에 약을 공급하기 보다는 일정부분 정부가 보존해 개발 동기를 부여할 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쟁점] 슈퍼항생제 '시벡스트로', 낮은 약가로 출시 포기

동아에스티는 국내 최초 슈퍼항생제 '시벡스트로'를 개발한 뒤 시판허가까지 받았지만 시장성이 낮은 약가로 출시를 포기했다. 슈퍼항생제는 내성을 지녀 박멸이 어려운 수퍼박테리아 감염을 막는다.

시벡스트로 국내 가격은 선진국 3분의 1 수준도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약 300달러선(약 34만원) 이지만 국내 시벡스트로 정재는 10만원대다. 국내 약가를 참고해 해외 발매 하는 상황에서 결국 국내 출시를 포기했다. 기업에게 약가를 낮추는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약가 때문에 시장에 제때 출시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약가제도는 신약 개발을 장려하고 우수 신약을 보상하기보다는 보험자 관점에서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약제비를 절감하는 구조다.

국내에서 경제성은 없지만 환자에게 있어 꼭 필요한 의약품은 퇴장방지의약품으로 등록해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 또 국내 제약사는 기초수액 등 수익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더라도 이를 지속 제조·공급한다. 국민 건강권 보호와 사회안전망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재정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외교 통상 문제로 국내 개발 신약을 우대하는 조항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면서 “국가 경제를 견인할 미래성장동력으로 꼽히고 있는 제약 산업 성장과 신약개발 장려를 위해 약가 측면이 아니더라도 세제혜택이나 규제완화 등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민욱 기자 kmu@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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