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백년대계'로 불리는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은 중장기 에너지 정책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산업경쟁력과도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정부는 3차 에기본에서 원전·석탄을 과감히 줄이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현재보다 4~5배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일부 전문가는 주민수용성·입지조건 문제 등을 배제한 '비현실적 목표'라고 지적한 반면, 정부는 글로벌 추세·산업경쟁력·미세먼지 및 온실가스 감축 등을 감안한 '도전적 목표'라고 응수했다.

◇'산 넘어 산' 재생에너지 35% 목표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3차 에기본 공청회에는 정부가 제시한 에너지정책 비전·목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7%대에 머물러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까지 최대 35%로 끌어올리겠다는 과감한 목표에 대한 이행계획이 미흡하고, 전기요금 인상 등 불가피 요인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실장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최대 35% 목표치에 대한 현실성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태양광은 산림훼손·산사태 문제, 풍력은 소음 문제 등이 유발되는데 주민수용성 측면에서 이를 어떻게 해결할 지 고민해야 한다”며 “전망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미세먼지·온실가스 감축 등을 고려해 에기본을 수립하는데, 그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요인도 담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배정환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30~35% 목표를 내걸었으면 인력양성 지원책을 함께 마련해야 했다”면서 “원전·석탄 등 전통 에너지원이 수십년간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던 건 충분한 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국내 재생에너지 인재양성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정부는 청년기업인이 재생에너지 비즈니스 모델을 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호정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도 “3차 에기본에는 주민수용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에 대한 로드맵이 담기지 않았다”며 “정부는 도전적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수립했는데, 초기에는 우량 입지를 중심으로 원활한 발전이 가능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입지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3차 에기본 연구용역을 맡은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최대 35% 목표 달성이 100% 가능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면서도 “에기본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장기적 방향과 비전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 추세,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 등을 고려한 도전적 목표 제시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용환 산업부 에너지혁신정책관은 “재생에너지 계획입지제도로 주민참여형 모델을 확대하도록 지방자치단체와 논의 중이고, 관련 법안이 국회에도 발의돼 있다”며 주민수용성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시장친화적 제도 뒷받침 필요”

정부가 3차 에기본을 성공 이행하기 위해서는 '시장친화적 제도'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3차 에기본 세부 이행방안을 마련할 때 명령규제방식이 아닌 시장친화적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인센티브 제도를 기반으로 한 정책효과 극대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전력 소비구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국민이 긍정효과를 예상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부는 '소비구조 혁신 중심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내걸고 3차 에기본에 △국민DR(소규모수요자원거래) 시장 개설 △전력프로슈머 확산 △V2G 기술 실증 등 추진 내용을 담았다.

국민DR는 전기사용이 집중되는 시간대에 에너지를 절약하면 이에 상응하는 혜택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에어컨 사용자가 전력 피크 시간대에 아낀 전기요금만큼 가전 포인트로 돌려받는 사례 등이다. 에너지 프로슈머는 한국전력에서 일방적으로 전기를 공급받는 것에서 탈피, 개인 간 전력거래를 뜻한다. V2G는 전기차 주행 후 남은 전기를 전력망으로 다시 송출, 소비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이서혜 E컨슈머 연구실장은 “소비자가 국민DR·전력프로슈머 등 에너지 정책에 참여했을 때, 기대효과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3차 에기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며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을 유도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 교수는 “앞서 정부는 여러차례 녹색요금제(그린프라이싱) 도입을 추진했지만 참여율 저조로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가정과 산업을 연결해 국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추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3차 에기본에서 제시하는 미래예측 가능범위가 극히 한정돼 있다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계획을 전망할 때 △기준(안) △소극적(안) △적극적(안)으로 구분·발표한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수요관리 차원에서 이상기온에 대비하는 정책이 미흡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거나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국민에게 에너지 절감만을 요구할 순 없다”며 현실을 반영한 보완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밖에 '에너지 복지' '전력시장 개방'에 대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정부가 에어컨 파동 문제 해결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도시가스 미보급 400만 가구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력·가스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시장개방 정책을 폈고, 민간사업자가 대거 참여하면서 경쟁 촉진 효과가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이 국장은 “도시가스 공급부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이라며 “다만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지역까지 도시가스를 공급하게 될 경우 설비에 따른 비용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탈(脫) 원전 이행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재확인했다.

이 국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민 안전 불감증이 크고 사용 후 핵연료 문제도 존재한다”며 “신규 원전은 짓지 않고, 기존 원전은 수명연장을 허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60년에 걸쳐 원전 발전 비중을 축소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슈분석] 시대 상황 따라 변화한 에기본…3차 에기본 남은 과제는?
국가 에너지기본계획은 지난 2008년 처음 수립됐다. 올해 마련하는 계획은 3회차다. 에기본은 국내외 에너지 수급 상황과 전망에 맞춰 5년마다 20년을 바라보는 중장기 전망을 담는다.

1차 에기본은 2030년까지 계획을 담았다. 2차는 2014년에 만들어져 2035년까지, 3차는 2040년까지 전망을 담는 식이다. 20년 후 목표를 세우고 주력 에너지원을 중심으로 정책 목표를 제시한다.

◇3차 에기본, 재생에너지 비중 공격적 확대

올해 수립한 3차 에기본의 가장 큰 특징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 범위를 30~35%로 제시한 것이다. 1차와 2차에서는 11%에 그쳤던 재생에너지 비중을 3배 이상 늘렸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높인 것은 지난 2017년 말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내놓으면서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노후 원전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최대 20%까지 끌어올리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실제 지난해 태양광 보급을 확산하면서 2017년까지 누적 보급용량 3분의 1에 해당하는 2027㎿ 설비가 지난 한 해 동안 한꺼번에 보급됐다. 3차 에기본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30% 넘게 잡으면서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강화된 것은 3차 에기본이 처음은 아니다. 1차 수립 당시만 해도 대외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요구가 컸다. 화석연료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등 인류 전체에 다가올 미래 위협에 국가적 연대가 필요했다. 대안으로 꼽힌 것이 원전과 재생에너지였다.

1차 에기본에서는 2006년 2.24%에 그친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2030년까지 11%로 확대하는 것을 제시했다. 2006년 당시 선진국 대비 70% 수준이던 재생에너지 기술을 2030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획도 포함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달라진 원전 위상

1차 에기본 수립 때만해도 원전 비중은 2030년까지 지속적으로 높일 방침이었다. 2006년 26%이던 설비 비중을 41%까지 올리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신규 원전 부지 확보 계획도 앞당겨졌다.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대안으로서 원전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아울러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자원 외교가 활발히 이뤄졌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원전 비중 축소가 시작된다. 2035년까지 계획을 다룬 2차 에기본에서 원전 비중 목표는 29%로 낮아졌다.

원전 등 대규모 집중형 발전시설 확대 방식에서 벗어나 분산형 전원을 활성화함으로써 국민이 받아들이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다양한 계통 안정화를 꾀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2차 에기본에서 강조된 것이 에너지 믹스다. 에너지 수급과 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에너지 안보, 온실가스 감축 효과, 산업 경쟁력, 수용성 등을 고르게 반영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정부 들어 국민 안전을 최우선 고려하면서 석탄 발전 비중과 원전 축소 등이 본격화됐다. 노후 석탄발전 조기 폐쇄와 원전 축소 등에 속도가 붙었다.

◇3차 에기본, 남은 숙제는

에기본은 5년마다 계획을 세우면서 그때마다 달라진 시대상황과 기술변화에 발맞춰 변화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여서 에너지 수급을 맞추겠다는 정부 의지가 얼마나 실현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주요 발전원으로 성장하기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점에서다. 일본이 다시 원전 비중을 늘리는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지난해 2030년까지 계획을 담은 제5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2013년 대비 26% 감축하는 방안을 담았다. 또 2030년 전원 구성 목표율을 석유 3%, 석탄 26%, LNG 27%, 원자력 20~22%, 재생에너지 22~24%, 바이오메스 3.7~4.6%, 지열 1.0~1.1%로 설정했다.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전 비중을 되레 확대했다.

업계 관계자는 “3차 에기본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한 점에선 이견이 없다”면서도 “산업과 경제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에너지원 확보도 필수”라고 지적했다.

강수현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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