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을 비롯한 전국 주요 항만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26일 '항만 대기질 개선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각종 규제를 받게 됐다. 특별법은 항만과 인근 영향지역의 미세먼지 배출과 오염을 집중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별법에 따라 정부는 대기오염이 심한 항만이나 대기오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항만지역을 '항만대기질관리구역'으로 지정, 관리할 수 있다. 구역 내에 '황산화물(SOx) 배출규제 해역' '저속운항 해역' 등을 별도로 지정 관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항만은 하역장비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주요 부두에 육상전력공급설비(AMP)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AMP는 선박이 항만에 정박해 있을 때 필요한 전기를 육상에서 공급하는 설비다.

◇대형 컨테이너선 1척 SOx 배출량, 디젤 승용차 5000만대 수준

대형 선박의 입출항과 정박, 하역, 운송 등이 이뤄지는 항만은 오랜 시간 미세먼지 배출관리의 사각지대였다.

항만의 최대 미세먼지 배출원은 선박이다. 다량의 황을 함유한 벙커C유를 비롯한 저급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선 1척의 SOx 배출량은 디젤 승용차 5000만대, 초미세먼지(PM2.5)는 트럭 50만대의 배출량과 맞먹는다. 매년 증가세인 초대형 크루즈선은 경유 자동차 350만대에 달하는 황산화물을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최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기오염물질 배출 요인 가운데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증가세다.

전체 대비 선박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질소산화물(NOx) 13.1%, 황산화물 10.9%, 초미세먼지 6.6% 규모다. 공공·민간 발전시설 배출량(질소산화물 12.0%, 황산화물 21.9%, 초미세먼지 3.5%)과 비교해 질소산화물과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더 많다.

자동차, 철도, 선박, 항공, 농업기계, 건설장비 등 이동오염원 가운데 선박의 비중은 질소산화물 22.5%, 황산화물 97.1%, 미세먼지 28.5%, 초미세먼지 28.5%, 휘발성 유기화합물 24.3%로 자동차에 이어 가장 높다. 황산화물은 자동차 배출량의 184배에 이른다.

초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도로이동 오염원'과 항만, 철도 등 '비도로이동 오염원'을 비교한 수치도 주목된다. 서울과 대구는 0.9배, 0.7배 수준인데 반해 부산은 4.8배, 인천 1.6배, 울산 4.1배로 항만지역의 비도로이동 오염원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선박에 의한 대기오염물질은 주로 연안 400㎞ 이내에서 배출돼 연안지역 대기오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요 항만을 보유한 부산시, 인천시, 울산시, 전라남도가 광역지자체 가운데 선박에 의한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두드러진 곳이다.

부산시는 전체 배출량 대비 선박 비중이 질소산화물 41.1%, 황산화물 70.2%, 미세먼지 15.5%, 초미세먼지 37.8%로 선박이 대기질 오염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부산항은 중국 7개 항만, 두바이,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10대 초미세먼지 오염항만'이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 추진하는 선박속도 저감프로그램, 선박 대기오염 배출량 측정 등 입출항 선박 관리 정책이 미미한 실정이다. 항만 하역장비를 친환경 연료시스템으로 개선하거나 교체하는 일도 예산 부족으로 더디다. 미세먼지를 비롯한 항만 대기오염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는 상시관측망도 없는 상황이다.

◇해안지역 심폐질환 내륙보다 심해

피해는 고스란히 항만 종사자와 인근 주민이 받는다. 국내에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 실태 규모는 보고된 바 없지만 해외 통계 자료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네이처는 지난 2016년 보고서에서 세계 선박 대비 동아시아 지역 선박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비중이 2002~2005년 4~7% 수준에서 2013년 16%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부산항을 비롯한 아시아 10대 컨테이너항만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어 이 지역에서 배출하는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세계 항만 배출량의 20%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미세먼지로 인한 동아시아 지역 심폐질환 사망자 수는 2015년 기준 1만3800명, 폐암 사망자수는 1480명으로, 항만이 있는 해안지역 사망자수가 내륙지역보다 수천배 높게 나타났다.

세계 10대 초미세먼지 다량 배출 항만 분포도.
세계 10대 초미세먼지 다량 배출 항만 분포도.

이번 특별법 제정으로 항만 대기오염을 방지·저감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 추진에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해수부와 환경부는 오는 2022년까지 항만지역 미세먼지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해수부는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을 0.1% 미만으로 하는 배출규제해역, 일반해역보다 강화된 속도 기준을 적용하는 저속운항해역을 지정할 방침이다. 선박 속도를 20% 감속할 경우 시간당 미세먼지를 49% 줄일 수 있다. 하역 장비의 연료도 경유에서 액화천연가스(LNG)로 바꿔 나간다.

환경부는 대기질 개선 효과 분석을 위해 오는 2020년까지 주요 항만에 이동측정망을 설치, 항만 지역 대기질을 측정한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면 노후 경유차의 항만 출입을 금지하고 날림먼지 발생 시설 관리도 강화한다.

전문가들은 항만지역 대기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후속 사업을 신속하게 발굴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항만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오염 행위의 관리 의무, 권한, 부처·기관별 업무 경계, 지역 관할 경계 등 기본 사항을 시행령 등 하위 법령으로 빠르게 규정해 특별법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안용성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양정책연구실 전문연구원은 “항만 오염물질 배출원과 배출 실태, 현황, 이로 인한 영향 등 보다 세부적인 기초자료를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항만 지역 오염농도와 분포, 이동·확산 현황, 보건·환경적 영향 등을 통합 관리할 전담 조직과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항만 미세먼지 또한 국가 경계를 넘어선 문제이므로 동북아 또는 아세안 지역 차원의 국제협회나 기구를 창설하거나 기존 협력 체계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슈분석] 해외 선진국 친환경 항만 전략

미국은 환경청(EPA)을 중심으로 연방과 주정부, 항만당국, 유관 기관 등 주요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해 친환경 항만 운영을 도모한다.

EPA는 매년 '국가 항만전략 평가'를 통해 주요 항만의 오염 현황을 조사·분석·예측하고 배출원별 저감 방법, 추진·운영을 위한 방안 등을 제공한다. 항만 오염물질 배출 저감과 관련한 '청정디젤 프로그램' '스마트웨이 프로그램(민·관협력)' '선박 감속운항(VSR) 프로그램' 등이다. 주정부와 항만당국은 이를 정책 개발, 사업 추진의 근거와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한다.

미국은 주정부와 항만당국이 항만 오염물질 감축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고, 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관련 법률로 재원 규모, 지원 형태와 대상, 규제 근거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놓고 있다.

기본법과 상위법에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부처·부서·기관, 항만당국의 역할과 업무·관할 경계, 항만·선박의 배출 저감과 오염 방지를 위한 기술 개발, 기술 보급 촉진, 이를 위한 재원 마련과 지원 근거 등이 명확하다. 이를 반영한 하위 법령은 구체적인 기준과 대상, 방법 등을 담고 있다.

디젤엔진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물질 저감을 지원하고자 만든 '디젤엔진 배출 저감법(DERA)'은 디젤차량의 배기가스 감축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사업에 대한 지원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과 국가별 항만의 환경 지속가능성 제고, 친환경 항만 운영을 위한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을 위한 정확한 정보와 방법론을 제공한다.

유럽 환경청(EEA)은 유럽의 주요 의사 결정기관과 공공기관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 유럽 전역의 환경 증진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유럽 내 주요 항만은 EEA에 매년 이산화탄소를 포함해 각종 오염물질 배출 현황을 보고하고 EEA는 이를 취합해 분석한다.

유럽 해사안전청(EMSA)은 선박·항만으로 인한 환경오염 방지를 포함해 선박 관련 분야의 EU입법을 지원하고 있다. 대기오염물질 관리와 관련해 EU의 '황산화물 지침'을 개정했고 이와 관련한 EU위원회 결정이나 연차 보고서 검토, 기술 지원, 회원국의 이행 등을 이끈다.

'에코항만 이니셔티브'는 EU내 친환경 항만구축 협의체다. 개별 항만에 자가진단법(SDM)을 제공해 환경 위험성을 진단하고 이를 검토할 수 있게 지원한다. 각종 인증제도도 개발, 제공하고 있다.

EU 주요 항만은 EU의 정책방향, 요구사항 등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발적으로 '항만 배출 저감 전략'과 실천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이슈분석]세계 10대 오염항만... 부산항의 미세먼지 대책

이번 특별법 제정을 가장 반기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한 곳이 부산시다. 국가 차원에서 항만 오염물질을 관리해 '세계 10대 초미세먼지 오염 항만'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부산은 겨울에는 북서풍 영향으로 중국을 비롯한 국외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면 여름에는 남동풍이 불어 부산 자체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 영향이 최대치에 이른다.

배출원별로 보면 겨울에는 자동차, 화물트럭 등 도로이동오염원 영향이 가장 크고, 여름에는 항만 선박 등 비도로이동 오염원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는 자체 배출원별 배출량 상세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7월 완료할 '배출량 산정 용역' 결과를 토대로 장기, 중단기 대책을 마련한다.

시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에 맞춰 우선 단기적으로 선박연료의 황 함유량 적정여부 확인, 경유자동차 정밀검사와 배출가스 단속,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 단속 등을 강화할 방침이다.

부산항만공사는 선박 유해배출가스 저감을 위한 육상전력공급설비(AMP) 설치를 확대한다.

이미 소형선박용 저압 AMP 77개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120억원을 추가 투입해 부산 신항에 대형 선박을 위한 고압 AMP 시범설치를 시작했다. 시범운영 결과에 따라 고압 AMP 설치를 확대해 선박이 배출하는 유해가스를 지속적으로 줄여 나갈 계획이다.

야적장에서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야드 트랙터 연료를 경유에서 친환경 LNG로 바꾸는 개조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김건호 기자 kkh@nex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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