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볼(그릇)만이 향기를 멀리 피운다. 작가는 없지만, 오롯이 남아 있는 작품이 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올해 초 작고한 동양의 신비로운 기운을 볼에 담아 구현해 온 이동수작가의 이야기다.

살아생전 오랜 작가 생활을 해오며 만리장성의 벽돌을 쌓듯 첩첩이 쌓아 올린 그의 그림인생이 6월 11일부터 7월 말까지 갤러리조은에서 재조명된다.

이동수 작가는 오랜 시간을 품고 있던 현(玄)의 찰나적 공명(共鳴)에 집중했다. 그의 ‘공명’은 때로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때로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연계와 조화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이뤄진 강과 바다에서 물방울들의 개별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듯, 우리 삶의 공간은 ‘서로 다름의 찰나들’이 쌓여 한 몸이 된 ‘시공간(時空間)’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심연(深淵)의 고요 속에 잠들어 있던 생명을 깨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작품 소재가 대부분 ‘그릇’인데 마치 거친 진흙에 신의 숨결을 불어 넣듯이 심혈을 기울여 캔버스에 밑칠을 한다. 수 십 차례의 손길을 거쳐 ‘공명’이라는 생명을 얻은 하나의 그릇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탕색은 흑색(黑色)이다. 혼돈의 우주, 아직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의 어두운 공간을 뜻하는 듯하다. 우주 어딘가 칠흑같이 깊고 깊은 어둠의 공간, 미지의 공간처럼 보인다. 그에게 여백은 텅 빈 하얀색이 아니다. 언제 생명을 잉태할지 모르는 어머니의 자궁 같은, 언제 밝은 빛을 뿜어낼지 모르는 깊은 응달 같은, 뒤엉킨 관계의 혼돈 그것이 여백인 것이다. 작가는 그 혼돈 속 어둠에서 하나의 생명을, 빛을, 숨결을 끌어내고 있다.

갤러리조은 조은주 큐레이터는 “이동수 작가는 스위스 바젤에서 한 시간 만에 작품이 솔드아웃되는 기록을 세운 울림이 있는 작가이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끝없이 갈망했다. 흙속에서 꺼낸 오래된 그릇처럼 늘 온기가 느껴지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과 같은 존재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세계와 동화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향선기자 hsle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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