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천재안무가 Wim Vandekeybus의 공연을 서울에서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안무가이면서 무용수이기도한 그는 시종 역동적 몸짓과 템포빠른 전개로 극을 치닫게 했으며, photographer이기도한 그는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신화 속 공간과 인간과 사건들을 백스크린 위에 입체적으로 구현해내었고, 심리학 전공자인 그는 신화적 스토리를 창조,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대사들을 쏟아내며 테마를 끌어내었다.

이 공연의 매력들은 극이 전개되는 동안 수시로 빛을 발하며 관극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고대도시의 풍경을 새의 시각을 통해 입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사건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관객을 안내해간 매력적인 오프닝. 무대의 확장성을 위해 백스크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공간의 한계를 파괴함은 물론, 극의 엔딩에서마저 무대마루를 덮은 천 마저도 인물들을 삼킨 웜홀로 활용하는 등 공간의 입체적 설계. 극중 상황과 밀착된 메탈 냄새 짙은 음악들과 때론 색감을 달리하는 적절한 악기편성, 극의 비극성을 관객들의 가슴으로 던져대듯 흐느끼는 노래들.

그러나 이런 시각적 청각적 완성도에 앞서 극의 감동을 이끌어낸 것은 역동성과 정교함을 다 갖추고 표현해낸 배우들의 힘이었음은 물론이다.
쉬임없이 마루를 박차고 날아오르고 뛰고 뒹굴며 댄서로서 역동적 공연을 선사했을 뿐 아니라 모든 대사들을 오버랩으로 소화해 거칠고 템포빠른 연기를 뿜어낸 배우로서의 역량. 전 출연진이 댄서로, 충분히 잘 훈련된 배우로, 가수로 자신들의 언어를 뿜어냈지만, 정작 무대를 완벽하게 지배한 이들의 '몸뚱아리'야말로 그 자체로 언어라고 느껴졌다.

고대라는 시간적 배경, 창조된 신화 속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국가와 이념의 충돌과 그로 인한 꼬리를 문 폭력. 이 비극적 스토리는 느닷없이 발생한 웜홀이 도심과 사람들을 삼킴으로써 결말을 맺는다.
수미쌍관식 극전개, 사건의 전달자를 통해 궂이 테마를 설명하려한 상투성이 옥의 티로 느껴졌지만, 이마저도 관객들이 크낙한 감동을 가슴으로 안는데는 결코 장애일 수 없었다.
잘 준비된 무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호응, 드물게 무대와 객석의 일치감을 끌어낸 공연.
100분간의 시간은 그만큼 황홀했다.

지난 2일 예술의 전당에서개막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는 22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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