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명절을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던 한 유학 박람회에서 우리 가족은 삶에 대한 마음가짐 자체를 바꿀 만한 시작점과 맞닥뜨렸다. 그것은 바로 생각지도 않았던 유학 생활에 대한 동경이었고 우리는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이곳에 도착했고 유학 박람회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작은 도시 뉴질랜드 타우랑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지 벌써 100여 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뉴질랜드 타우랑가는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약 14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차로는 약 3시간, 비행기로 4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이곳의 고속도로는 한국 고속도로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이다. 1차선 도로도 많고 도로포장 상태 또한 나쁜 곳이 많다. 우리나라도 요즘 시내의 차량 제한 속도가 50km로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 마을 근처의 규정속도 50Km는 체감상 어마어마하게 느리게 느껴져 여기 생활의 시작 무렵에는 무척이나 이해하기 힘든 시스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타우랑가에서의 생활이 서서히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다. 인간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것을 나 자신을 보며 새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타우랑가는 뉴질랜드 북섬 중에서도 연중 날씨가 너무 좋아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1순위 도시답게 의료 시설도 잘 갖춰졌고 질서가 잘 잡혀있기 때문에 유학생 가족들이 지내기에 더없이 편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스프리(zespri) 본사가 이곳 타우랑가에 있다. 뉴질랜드의 토종새인 키위새도 있기 때문인지 뉴질랜드 현지인을 ‘kiwi’라고 부른다고 했다. 사람은 kiwi, 과일은 kiwi fruit로 표현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뉴질랜드 타우랑가의 가장 큰 매력은 해외 유학생들이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학생은 한 반에 한 명만 배정된다는 점 또한 이곳에서의 유학을 결정하게 된 중요한 시스템이었다.

이미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타우랑가 지역에서 학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처럼 큰 준비나 세세한 정보를 가지지 못하고 유학 온 가족도 드물다고 한다. 겁도 없이 이곳에서의 유학 생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마치 신의 한 수처럼, 인생의 쉼표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금의 시간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물론 일 년 후 한국의 교육 시스템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힘든 부분들이 존재하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긴 인생에서 몇 년의 느림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는 큰아이는 ‘College(year9~13)’에서 year9에 다니게 되었는데 과목별로 이동 수업이 진행되는 College 생활을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다. 학교에서 전적으로 아이들을 맡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자기 주도적인 방식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게 하여 학생들 개개인의 독립된 삶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것 같다.

처음 며칠은 엄마의 도움을 바라는 큰아이였지만 학교 안에서 하나씩 물어가며 해결해 내는 자신이 뿌듯하다고 이야기하는 큰아이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대견함을 느끼게 된다.

작은아이는 지금 속해 있는 학교에서 처음 받아 준 유학생 1호로 엄청난 지원과 관심을 받았었다. 올해 새 학기에도 작년과 같은 교실에 같은 담임으로 배정되어 낯설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 준 학교의 배려심 또한 놀라웠다.

이번 학기부터 방과 후 스포츠를 신청해 더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있으며 음악 수업도 신청해 현지인 선생님과 레슨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최대한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잘 활용하는 모습에 둘째도 훌쩍 성장한 듯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Flippa ball’이라는 일종의 수구 경기를 하는데 처음 경험해 보는 아이도 바로 경기에 참여시켜 경기를 하면서 규칙을 익히게 해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초등학생들의 경기임에도 심판이 있는 타우랑가의 학교생활은 무엇이든 즐기면서 배우게 하는 여유로운 교육 철학을 가진 듯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타우랑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다. 3개월여의 생활을 하면서 느낀 뉴질랜드 타우랑가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학교교육에서부터 그러한 바탕이 깔려 있기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당히 주관적인 생각을 해본다.

2019학년도의 마지막 무렵에 합류해 얼떨결에 시작한 학교생활과 6주간의 긴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뉴질랜드 생활에도 많이 적응을 한 상태라 2020학년의 시작을 안정된 상태로 즐기고 있는 우리 세 가족.

정말 놀라울 정도의 넓은 잔디 운동장, 어디에서나 놀 수 있도록 잘 갖춰진 놀이터 시설, 맨발로 잔디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참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아이들이 이 생활에 푹 빠져있다.

어느 날 큰아이가 교복을 입고 있으면 kiwi 들과 같은 소속감이 들어서 좋다며 먼 타국인 뉴질랜드 타우랑가에서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말했던 적이 있다. 아들의 말처럼 그 소속감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이 상황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 아이들이 현지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참여하는 지금을 잘 즐기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삶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기에 이곳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써나가고자 한다.

김선아 기자는 중학생인 큰아이, 초등학생인 작은아이와 함께 뉴질랜드 타우랑가에서 생활하고 있다.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현지의 이야기들을 소소하고 담백하게 연재할 예정이다.

김선아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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