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 시인이 10여년만에 자신의 네번째 시집 '눈과 도끼'(천년의 시작, 148쪽)를 내놓았다.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눈'과 '도끼'는 시인의 말에서 드러나듯 우연이 필연의 인과를 입고 선명해진다는 비유의 관계이다.

눈이라는 '미지의 도끼'를 통해 시인은 폐허가 도사리는 삶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래서 찍는 행위는 시인이 시적 순간을 포착하는 행위이며,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이 된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 그러할 것이라는 개연과 이면의 진실, 밝음과 어둠 등 '모순'이 혼재된 현상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다.

김진수 문학평론가는 "정병근의 시 세계는 어떤 궁극의 한 점으로 수렴되는 압도적인 구심력의 작용에 의해 직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의 자장은 너무나 강력해서 시인의 존재와 삶 전체를 견인하고 있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고 평했다.

이 구심력의 근원에는 '고향'과 '어머니'의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다.

'광주리에 뙤약볕을 이고/등 뒤로 밭고랑을 밀며/갔고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짜며/갔고 철솥에 김을 펄펄 피우며/ 갔고 첨방 마루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갔다(중략)...엄마는 가는 사람/내 죄를 다 뒤집어쓰고 가는 사람/가고 난 뒤에 비로소 없는 사람/엄마는, 다 끝나고...'('엄마는 간다' 중)

그의 시는 현실이라는 지판위에서 몽유(夢遊)하듯 춤춘다. 시라는 형식의 시를 벗어난 시를 쓰고, 사유의 한계를 마음껏 넘나들며 상상한다. 프리즘을 통해 투영된 세상의 색깔을 시인만의 언어로 재조명한다. 그래서 그는 시 속에서 영원한 자유를 갈망한다.

어떤 시에서는 '아랑훼스' 협주곡의 아련함이 감지되고, 어떤 시에서는 '놀람' 교향곡의 익살이 느껴지거나, 또 다른 시에서는 쇼팽 '녹턴'의 감미로움이 녹아든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니 누고?"였다/할머니는 벽에 얼룩말을 그리고 가셨다/ 풍맞은 어머니는 "예? 예 예"하고는 영 말문을 닫았다/죽기 전 아버지의 말은 "와 이리 안 죽어지노"였다...나는 여태 한마디도 안 한 것으로 나를 우긴다/날이 가무는지 냇물이 말의 발목을 뚝뚝 끊고/얕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말이 많다' 중)

시인 정병근은 "한 빛나는 다발 속에 내가 찾아진다면 좋겠습니다. 별 뜻은 없습니다"라고 썼다. 나성률 기자 nasy23@nextdaily.co.kr

◇시인 이력
경북 경주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8년 '불교문학'으로 등단했고, 2001년 '현대시학'에 '옻나무' 외 9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오래전에 죽은 적이 있다' '번개를 치다' '태양의 족보'가 있다. 제1회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 정병근
시인 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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