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두번째 며느리 순빈 봉씨가 여종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승철 작가가 13년만에 자신의 두번째 장편소설 '아담의 첫 번째 아내'(도서출판 삼인, 248쪽)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작가는 여성들의 소설 이어쓰기라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폐출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순빈 봉 씨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지아비(문종)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내밀한 공간에서의 은밀한 사랑이 그리움과 외로움, 처연함과 결연함 속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순빈 봉 씨는 종부소윤 봉려의 딸로 1429년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으로 책봉되지만 여종과의 동성애 스캔들로 인해 1436년 폐출된다. 그 과정이 '조선왕조실록'에 그대로 수록돼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봉 씨의 목소리는 없다.

이에 15명의 여성들이 '이 땅에 딸로 태어난 이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이 땅에 여자로 자라난 이들이 어떻게 고통받고 스러졌는지'를 밝히기 위해 '거짓말쟁이들의 추리'라는 소설을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한다.

그러나 글쓰기에 참여한 여성들은 차례로 살해당하고, 출간된 책조차 서점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신승철 작가는 능수능란하게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첫번째 장편소설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줄거리나 문장 대신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오가는 공문서와 탄원서, 해명서 등을 그대로 교차시키며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이 유포되는 과정, 거기에서 드러나는 인간 사회의 거짓과 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포착해냈다.

형식의 파괴는 이번 '아담의 첫 번째 아내'에서도 다시 시도된다. 여기에도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설명 없이 소설은 대화만으로 이뤄져 연쇄 살인사건과 그것을 파헤치는 형사와 기자의 추리를 속도감 있게 그려 나간다.

한편 유대신화에서는 인류 최초의 여자이자 아담의 첫 번째 아내는 '릴리스'라고 기록돼 있다. 이브는 아담의 두 번째 부인인 셈이다. 릴리스는 개방적인 성격에 독립심이 강했고, 성적인 면에서도 아담과 동등하길 원했다. 결국 성격 차이로 아담과 결별한 뒤 홍해로 가 혼자 살면서 많은 남자들을 유혹했다고 신화는 전한다.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인 순빈 봉 씨는 문종의 무관심 속에 아예 사랑의 방향을 틀어 여종을 사랑하기로 했다. 사랑과 삶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했고 독립심이 강했다는 점에서 릴리스와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까.

신승철 작가는 "꽤 오래전에 쓴 소설이다. 소설의 일부는 단편으로 발표도 했었다. 끝내 이 작품을 포기하지 못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 혹은 이 땅의 ‘릴리스’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어머니가 밑줄 그으며 읽던 성경책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라고 썼다.

이순원 소설가는 "이야기는 두 축으로 흘러가는데, 어느 쪽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긴장과 재미가 있다. 결말의 반전도 기막히다. 2020년 벽두, 추리소설의 반불모지와 같은 한국 문학판에 아주 멋진 소설 한 편이 우리에게 던져졌다"고 평했다. 온라인뉴스팀 onnews2@nextdaily.co.kr

신승철 작가. 사진=삼인출판사
신승철 작가. 사진=삼인출판사

◇작가 이력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다녔고, 신문과 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했으며, 출판사에서 출판기획자로 일했다. 현재 사이버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199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낙서, 음화 그리고 비총' '태양컴퍼스', 장편소설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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