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을 때, 꽤 많은 사람에게서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 ‘나도 뮤지컬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어린이 뮤지컬만 본다’는 대답이 바로 그것. 나 역시 엄마가 된 이후 비슷한 처지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는 어린이 뮤지컬 중에 어른이 함께 보아도 좋은 공연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를 보고도 같은 생각을 했다.

워낙 유명한 원작의 공연이라 지금까지 여러 제작사에서 여러 다른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PMC프러덕션의 ‘오즈의 마법사’가 유명하지만, 이 글에서는 2011년 EMK뮤지컬컴퍼니의 공연을 이야기한다.

EMK의 오즈의 마법사는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공연이었다. ⓒ윤영옥
EMK의 오즈의 마법사는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공연이었다. ⓒ윤영옥

벌써 20여 년쯤 전의 일이다. 신비스런 이미지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임은경의 통신사 CF를 기억하시는지? 그 CF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노래 Over the rainbow. 제목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노래가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의 삽입곡이다. L.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주디 갈랜드가 주연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대중에게 유명해졌다.

2011년 EMK뮤지컬컴퍼니에서 제작한 ‘오즈의 마법사’는 브로드웨이 버전으로서 이 버전이 한국에서 공연된 것은 2005년도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2000년도에 이미 ‘오즈의 마법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본 공연은 같은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다른 공연이었는지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체결하지 않은 공연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본 최초의 뮤지컬 버전 오즈의 마법사는 2000년 ⓒ윤영옥
내가 본 최초의 뮤지컬 버전 오즈의 마법사는 2000년 ⓒ윤영옥

이번 공연이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Over the rainbow를 직접 들을 수 있다고 하니 내가 본 2005년 공연에는 Over the rainbow가 없었나 본데, Over the rainbow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꽤 괜찮게 보았던 공연인 데다가 워낙 원작이 좋아 기대에 가득 차서 공연장을 찾았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포스터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포스터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공연을 보고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 작품이 너무 '어린이 뮤지컬'로만 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린이도 보아도 되는' 뮤지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만 보아야 하는' 뮤지컬은 아니니까. 이 뮤지컬이 주는 메시지 역시 어른들도 생각해 볼 만한 것이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에서 만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로드 뮤지컬이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허수아비는 머리(지혜)를, 양철 나무꾼은 심장(마음)을, 사자는 용기를 원한다. 원래 L.프랭크 바움의 원작 소설에서는 허수아비, 양철 인간, 그리고 사자는 각기 정치에 관한 생각과 지혜, 그리고 용기가 없는 민중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어린이들이 꼭 가져야 할 꿈과 희망, 지혜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 살짝 의미는 변했지만 그 역시도 우리 삶에는 중요한 것들이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중에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갔을 때 마법사가 제시해주었던 해결책이다. 허수아비에겐 졸업장, 사자에겐 훈장, 양철 나무꾼에게는 공로패(하트모양 시계)를 주는데 그것을 받고 그들은 너무 행복해하고, 또 자신이 원하는 지혜, 용기,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로 지혜, 용기, 마음을 마법사에게 받은 건 아니다. 그건 모두 이미 그들 안에 있었던 것. 모두 다 내 안에 있었는데,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평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이라는 열등감에 많이 시달리는 편인데, 이 공연을 보면서, 아마 내 안에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믿고 보는 PMC'로 통하는 PMCKIDS의 오즈의 마법사 ⓒ윤영옥
엄마들 사이에서 '믿고 보는 PMC'로 통하는 PMCKIDS의 오즈의 마법사 ⓒ윤영옥

그리고 이 작품의 대표적인 노래 Over the rainbow.

누구나 그리는 '무지개 너머 그 어딘가'는 실은 바로 여기라는 것,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도 느끼게 해 주었다.

도로시가 엄청난 모험을 했던 그 '오즈의 나라'가 실은 현실을 반영한 꿈이었다는 것도 바로 그것을 반증하는 거 아니겠는가. 오즈의 나쁜 마녀는 도로시와 토토를 늘 괴롭히던 못된 아주머니였고 도로시와 함께 마법사를 찾아 나선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는 도로시 삼촌과 숙모의 농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다.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영화에서는 그게 좀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뮤지컬에서는 명확하진 않았지만 시작 부분에 복선이 깔려 있었다. 아저씨들이 수레를 옮기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한 명은 허수아비를 들고 흔들고, 한 명은 양철 주전자를 들고 있고, 또 한 명은 '어흥~'하면서 놀래는 시늉을 하는데 그들이 바로 오즈의 나라에서의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마지막 부분에 그 주제 의식이 '집이 최고다!'를 수차례 외치는 직설적인 대사로 드러나지만 그래도 역시 집이 최고인 건 맞는 말.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런 대사를 만든 것 같지만, 어른인 내게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대사였는데.

위에서 얘기했듯이, 행복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근처에 있다는 것, 무지개 너머 어딘가는 바로 여기라는 것도 느꼈고. 또 좀 더 속세의 때가 묻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역시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

주제곡 Over the rainbow의 한국어 가사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 거다.

'멀리 파랑새 사는 그곳엔 왜 내 집은 없을까'

이 가사 듣고 요즘 말로 어찌나 웃펐는지.

높은 곳에 올라가 시내의 수많은 아파트를 보면 흔히들 '저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은 없을까' 생각하곤 하는데 Over the rainbow를 들으니까 딱 그 생각하고 겹치면서 너무 웃기고 전세금 오르는 소식이 떠오르며 슬프고, ‘그래, 집이 최고지’ 싶으면서 ‘아! 이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주는 작품이면서 무주택자의 설움을 노래한 작품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쳤던 재미난 기억이 있는 공연이었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EMK뮤지컬컴퍼니

무대도 의상도 화려하고 좋은 음악이 가득하고 내용도 좋은 이런 공연을 아이들만 보여주는 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대사로 인기를 끌었던 CF를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이만 보여주지 마세요. 함께 보세요~

윤영옥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윤영옥 기자는 우리나라에 현대 뮤지컬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공연을 보며 자라온 뮤지컬 덕후다. 서랍 속에 고이 간직했던 티켓북을 꺼내어 추억 속 뮤지컬 이야기를 연재한다.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