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도착했던 그 첫날

밴쿠버와 한국과의 시차는 16시간이고 하루가 더 느리다. 때문에 한국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한 후에야 밴쿠버에 도착하였지만 우리는 출발한 날의 오전에 밴쿠버에 도착한 셈이 되었다. 짧지 않은 비행으로 인해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입국 절차를 밟았지만 왠지 하루를 번듯한 느낌에 기분만큼은 좋았던 기억이 있다.

비자를 발급받는 오피스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준비되어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밴쿠버에 입국한 우리들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놀이시설 옆에서 입국심사 차례를 기다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덕분에 밴쿠버에 도착하고 느꼈던 첫인상은 바로 어린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여유로운 곳이라는 점이었다.

밴쿠버의 파랗고 높은 청명한 하늘
밴쿠버의 파랗고 높은 청명한 하늘

우리는 밴쿠버에서 최고 날씨를 볼 수 있다는 지난 7월에 밴쿠버에 도착하였고 입국심사를 마치고 마주한 밴쿠버의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며 10시간이 넘는 비행의 피로를 단번에 풀 수 있었다.

밴쿠버 공항의 주차장을 가득 메운 렌터카들
밴쿠버 공항의 주차장을 가득 메운 렌터카들

밴쿠버 공항 주차장에는 렌터카 사무실이 준비되어 있어 미리 렌트한 차를 받아 다운타운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짐을 풀고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는 것으로 밴쿠버 도착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했었다.

우리가 밴쿠버에 도착한 7월 1일은 '캐나다 데이'였고 다운타운에서 화려한 불꽃놀이 행사를 한다고 했다. 그 불꽃놀이 행사를 보기 위해 밴쿠버로의 입국 날짜를 조정했었는데 시차 때문인지 오랜 시간의 비행 때문인지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이른 저녁에 모두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일찍 잠든 탓에 다시 눈이 떠진 시각이 새벽 3시였고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일주일 넘게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고생했던 것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한국으로부터 오는 짐의 세관신고를 위해 찾은 캐나다 보더 서비스 (Canada Border Services Agency). 관공서의 모든 안내문은 영어와 불어가 동시에 표기된다.
한국으로부터 오는 짐의 세관신고를 위해 찾은 캐나다 보더 서비스 (Canada Border Services Agency). 관공서의 모든 안내문은 영어와 불어가 동시에 표기된다.

캐나다로의 이주를 준비하면서 직접 들고 올 수 없는 짐들을 분류해 선박과 화물 비행기로 미리미리 짐을 보내두었다. 한국을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빠르게 받아야 하는 것들은 화물 비행기로 조금 천천히 받아도 되는 짐들은 선박을 통해 캐나다로 보내 놓은 상태였다.

예정대로라면 그렇게 미리 보내 둔 짐들 중 화물 비행기로 보낸 것들은 우리가 캐나다에 도착한 다음 날에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화물 비행기로 캐나다에 도착한 짐들은 세관신고와 스케줄 조정 등의 여러 절차가 있어 바로 받아 볼 수 없었고 도착 직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짐들은 보름이 더 걸려서야 받아 볼 수 있었다.

선박으로 보낸 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관 신고 인터뷰가 필요했고 짐을 받아 보는 스케줄을 조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선박으로 보내 둔 짐들은 입국하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신넘버 발급을 위해서는 공항에서 발급받은 비자와 여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넘버 발급을 위해서는 공항에서 발급받은 비자와 여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처음 캐나다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진행하는 정착 프로세스는 신넘버(주민등록번호 같은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발급으로 시작되어 은행 계좌 개설(신넘버 필요), 차량 구매와 앞으로 지내게 될 집을 구하는 것으로 진행되며 우리 가족 역시 그 절차를 밟아야 했다.

신넘버를 받는 캐나다 서비스(Sevice canada center) 접수창구
신넘버를 받는 캐나다 서비스(Sevice canada center) 접수창구

입국하고 다음날 신넘버(Sin number)를 발급받기 위해 들른 캐나다 서비스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정부 전산망이 다운이 되어 신넘버 발급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었고 신넘버가 있어야 다음 절차인 은행 계좌개설이 가능하기에 우리의 모든 스케줄은 꼬이기 시작했다.

정부 전산망의 다운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캐나다 정부의 전산망이 다운되었고 더불어 언제 고쳐질지 기약이 없다는 그곳 직원들의 말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다음날에는 가능하냐는 질문에 장담할 수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는 다시 한번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비스 캐나다 센터의 대기장소 순서에 따라 오른쪽 창구에서 상담원과 개별 면담 후 신넘버가 발급된다
서비스 캐나다 센터의 대기장소 순서에 따라 오른쪽 창구에서 상담원과 개별 면담 후 신넘버가 발급된다

정부 전산망이 다운되었는데 직원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라니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기에 당시에는 그 직원들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캐나다 서비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아이들을 위한 색칠공부 코너에서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반년 이상 경험한 지금에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이곳 사람들의 삶에 적응이 되었는지 입국 초반에 겪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 중이다.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이곳 밴쿠버의 여유로움은 한국에서는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것이었고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우리가 한국에서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이기에 속해 있는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살면서 크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거의 모든 행정 절차가 인터넷으로도 진행되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캐나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터득하고 있다.

전혜인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전혜인 기자는 한국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슈퍼우먼이었다. 지난여름 생활의 터전을 대한민국에서 캐나다로 옮기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그녀가 전하는 밴쿠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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