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 시간이 아닐까. 아무리 꼭 잡고 있으려해도 놓치기 마련이고 지나간 시간 속에는 꼭 후회가 남으니. 그래서 사람들은 불가능하고 부질없는 짓인 걸 알면서도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타임 슬립'은 이제 우리에게 낯선 소재가 아닌데, 2014년 보았던 뮤지컬 '시간에'도 그러한 상상을 담은 뮤지컬이다. 뮤지컬 전문잡지에서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 비주류(?) 뮤지컬이지만 제2회 DIMF 국제뮤지컬페스티벌어워드에서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약간의 기대감이 생겼는데. 기대보다도 훨씬 좋았다.

뮤지컬 '시간에' 2014년 공연 티켓 ⓒ윤영옥
뮤지컬 '시간에' 2014년 공연 티켓 ⓒ윤영옥

헤어지자는 말을 밥 먹듯 하던 지수는 프러포즈를 상상하던 2주년 기념일에 이별을 통보받는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살아온 명운은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다. 소매치기 현실은 어릴 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훔친 지갑 속에 들어있던 1등 당첨 로또를 잃어버린다.

각각의 이유로 절망에 빠져있던 세 사람은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게 되고 버스 안에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시계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후회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로 혹은 미래로 가게 된다.

2014년 공연 포스터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4년 공연 포스터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주년 기념일에 이별을 통보받은 지수는 남자친구에게 이기적으로 굴었던 것을 후회하며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간다. 예전에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잘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2년 동안 싸우지 않고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사랑을 키워왔는데. 또 뜻밖의 이별의 상황을 맞게 된다.

건강 검진 결과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명운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고 굽실거리며 살아온 삶을 후회하며 과거로 돌아가 독하게 성공한다. 그리고 건강 관리도 철저히 하지만 다시 똑같은 상황을 맞게 된다.

복권을 잃어버린 현실은 복권을 잃어버리기 전으로 되돌아가는데 경찰과 마주치면서 미래로 도망을 갔으나 미래의 모습도 그리 좋지 않아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의 모습은 뜻밖이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아 만족했으나 슬픈 소식을 듣게 된다.

2014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4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움직일 순 있었지만 세 명 모두 원하는 행복한 삶을 얻지는 못했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결과다.

우리는 현재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이런저런 가정을 한다. 만약 내가 과거의 그 시점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 그 잘못을 하지 않는다면, 만약 내가 다시 과거로 간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정말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내가 원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따라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나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므로 다시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는 생각이다.

2014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4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사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관련이 없다.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개별 이야기가 따로 놀지 않게 구성이 상당히 좋았다. 세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고 미래로 가고 현재로 돌아오는 복잡한 이야기들이 산만하지 않게 잘 엮여 있었다.

그리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한 버스를 탈 수도 있는 것처럼 이들은 과거에도 우연히 한 번씩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서로 알아채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 세상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스쳐지나가고 마주쳤을지 모른다.

스토리가 사랑 얘기뿐만이 아닌 것도 좋았다. 소극장 뮤지컬은 보통 로맨틱 코미디가 많은데 뮤지컬 '시간에'는 그렇지 않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물론 사랑 이야기도 있지만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러면서 마냥 진지하지만은 않게 웃음 포인트를 적절히 배치해놓았다는 것도 이 작품의 장점.

2014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4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시간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공연을 보고 나서 생각했다.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가 생긴다면……

위에서도 말했듯이 난 이런 시계가 있다고 해도 과거로 되돌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현재가 지금보다 더 좋을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이 시계가 생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6년 전 4월 16일로.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윤영옥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윤영옥 기자는 우리나라에 현대 뮤지컬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공연을 보며 자라온 뮤지컬 덕후다. 서랍 속에 고이 간직했던 티켓북을 꺼내어 추억 속 뮤지컬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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