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인 듯 밴쿠버 아닌 밴쿠버에서의 생활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어려워진 밴쿠버에서 우리 가족 모두는 말 그대로 집에 콕 박혀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 보다 먼저 재택근무를 시작한 남편과 봄방학 이후 집 밖을 나가본 적 없는 아이들과의 집콕 생활에 말 그대로 뉴노멀 라이프를 만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다. 외부 활동 없이 집에서 가족들끼리만 지내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밴쿠버인지 가끔은 헷갈릴 정도다.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우리 가족의 집콕 생활을 소개해 보려 한다.

이번 기회에 잠자리 독립을 해보기로 한 아이들은 밤 9시가 되면 배꼽 인사를 하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간다. 시작한 지 한 달 남짓이 되어가는데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난 듯 떠들다 잠이 드는 편이다. 아이들의 수다 소리가 끊기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이들 방에 슬쩍 들어가 이불을 정리해 준다. 밤 문화가 없는 밴쿠버에서는 어른들도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재워놓고 야식과 함께 TV를 시청하며 술도 한잔했었는데 밴쿠버에서는 그런 즐거움이 없어졌다. 하지만 밤늦게 먹던 야식이 줄었으니 조금은 건강해졌으리라 생각하며 위로한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은 정동향 방향이라 아침만 되면 블라인드 사이로 환하게 햇빛이 들어온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아침마다 환하게 들어오는 햇빛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집콕 생활이 계속되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도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물론 거창한 한상 차림까지는 아니지만 프렌치토스트, 구운 바게트, 시리얼 등 나름의 아침 준비로 아침 시간이 바쁘다. 거기에 새로 맛 들인 브렉퍼스트 소시지는 밀가루가 아닌 고기가 듬뿍 들어있어 꼭 챙겨 먹는 아침 메뉴 중 하나이다.

날씨가 좋아 해가 드는 날은 테라스에 나가 나름의 야외수업을 한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요즘 테라스의 존재는 너무나도 고맙다. 한국에서는 테라스가 확장된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그래서인지 조경이 보이는 이곳의 테라스는 또 다른 여유가 있는 생활의 일부이다. 아이들 등교 후 홀로 모닝커피를 즐기던 테라스의 릴랙스 체어 옆에는 이제 돗자리와 함께 쉴 틈 없이 떠드는 아이들이 함께 한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 때문에 테라스에서도 모자를 꼭 써야 하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이 즐겁다.

얼마 전에는 캐나다구스라 불리는 기러기 한 쌍이 우리가 살고 있는 콘도 안 연못가에 둥지를 틀었다. 테라스에 나갈 때마다 알을 품는 기러기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자연과 가까운 밴쿠버 삶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실은 그전에 다른 기러기 한 쌍도 둥지를 틀었는데 새로 온 기러기 부부와의 싸움에서 지고, 알이 든 둥지를 두고 떠나가는 모습에 아이들과 함께 슬퍼하기도 하였다. 한 번은 알을 훔쳐 먹으러 온 라쿤을 향해 떠나갈 듯 울어대는 엄마 기러기 소리에 새벽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알이 무사함을 확인하고는 새벽에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였다.

테라스에 심어놓은 상추와 파에 매일 물을 주는 것도 하루의 일상 중 일부분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한인 마트에 가야지만 살 수 있다는 깻잎 모종을 얻고는 뿌듯해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맞벌이와 육아에 치여 집에 있던 모든 초록 식물들을 죽였던 일명 똥 손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지켜보며 돌보게 되니 초록 식물들도 잘 키우고 있다. 가끔은 우리 식탁에도 올라와 식탁을 풍성하게 꾸며주기에 마냥 고마운 초록 식물들이다. 작년 이사 선물로 받았던 국화 화분도 겨우내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자 새로운 초록 잎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를 보는 것 역시 또 다른 기쁨이 되고 있다.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한 시간씩 ‘고 누들(GoNoodle 유튜브 채널, 학교에서 추천해 준 실내운동 콘텐츠)’을 함께하는 시간도 만들었다. 학교 수업에서도 사용되는 콘텐츠라 하니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아이들 또한 지칠 줄 모르고 즐겁게 따라 하며 땀에 흠뻑 젖는데 어쩜 그렇게 잘 따라 하는지 먼저 지쳐서 그만두게 되는 것은 항상 나다.

아침 식사와 테라스에서의 아침 수업을 끝내고 나면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다. 정규 수업은 주 2회 수업이지만 ELL 수업 2회까지 화, 수, 목, 금요일의 오전은 수업으로 가득 찬다. 아직은 저학년의 아이들이라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꼭 학부모가 같이 참관하기를 권했고 덕분에 아이들과 같이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진정 나를 위한 영어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교육청에서 이민자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학부모 영어 대화모임(English Conversation Circle)이 영상 수업(Virtual English Conversation)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교육청에서 주관하고 있기에 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화 연습에 도움이 된다. 온라인 수업이라는 점이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온라인 매체의 활용으로 관련 더 풍부한 내용으로 수업할 수 있기에 마음에 든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의 과제를 도와주다 보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9시에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 보통 8시까지 정리를 해두는 편이다. 중간중간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고 정리까지 하다 보면 하루가 정말 짧게 느껴진다.

외출이 제한되어 이따 보니 주말이라고 다를 바 없는 생활이지만 장을 보기 위해 격주로 주말 외출을 하고 있다. 밴쿠버에서도 배달 주문을 통해 장을 볼 수 있지만 한인마트의 경우에는 배달이 되지 않기에 2주에 한 번 정도 잠시나마 외출을 하게 된다.

우리의 뉴노멀 라이프는 핵가족이 그 중심에 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가정을 이루고 지내왔지만 지금처럼 서로를 함께 오랫동안 지켜본 적은 없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이 가족 구성원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돌보며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전혜인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전혜인 기자는 한국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슈퍼우먼이었다. 지난여름 생활의 터전을 대한민국에서 캐나다로 옮기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그녀가 전하는 밴쿠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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