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벗어나 국도에 접어들고 나서도 내비게이션은 쉼 없이 방향과 속도를 지시했다.
이기 길을 우째 다 아노?
종호가 말했다.
원래 다 안다.
옥순이 대답을 가로챘다. 운전석에 앉은 현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버님, 제가 어젯밤에 미리 가르쳐 줬어요.
그래? 늦도록 애 묵었다.
종호가 허허 웃고 나서 말했다. 옥순이 어이구, 이 양반아, 하고 웃었다. 현아가 아니었다면 그것을 빌미로 옥순은 또 한바탕 종호에게 퉁을 주었을 것이다. 종호의 농은 늘 어딘가 어설펐고 옥순은 순순히 넘기는 법이 없었다.
마스크 벗으셔도 돼요. 우리끼리잖아요.
맞다. 아까 밥도 같이 묵었는데. 찌개도 한 냄비에 숟가락 담굿고.
옥순이 마스크를 벗으며 현아에게 동의하자 그제야 종호도 장갑 낀 손으로 마스크를 벗어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차창 밖으로 싱그러운 봄빛이 물결치며 흘렀다.
꽃도, 꽃도, 마이도 네. 저기 무슨 꽃이고?
철쭉 아이가. 그것도 모리나?
저기 개꽃이라? 참꽃이 아이고?
참꽃 졌는 지가 언젠데.
봤나, 참꽃?
올개는 못 봤지.
종호는 연신 물었고 옥순은 퉁명스럽긴 해도 따박따박 답했다. 두 달 만에 처음 하는 나들이였다. 그동안은 자식들이 현관 문고리에 반찬을 걸어두거나, 잠시 집에 들러 마스크를 낀 채로 식재료를 냉장고에 정리해두고 가곤 했다. 감염병의 위세는 구십 년을 살면서도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저어가 어덴데 저래 예쁘게 꽃을 심가 놨노?
종호가 창에 이마를 붙이며 감탄을 섞어 물었다. 어린아이가 새 장난감을 받았을 때의 표정 같았다.
모텔이네. 쯧.
옥순의 심드렁한 대답에 종호는 창에서 이마를 떼고 좌석에 등을 푹 묻었다. 창밖으로 모텔이 연이어 지나갔다. 조악한 성 모양의 하얀 건물과 새로 지은 티가 확연한 유리 건물의 꼭대기에 모텔이라는 거대한 간판이 붙어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는 색깔만 다른 비닐 가리개가 늘어져 있었고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벚꽃은 다 졌나?
한참 만에 종호가 씁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라이. 인자 또 보겠나…….
와, 내년에 안 피나?
고마 죽어야지, 우리가.
종호가 말없이 옥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아는 룸미러로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내년에는 벚꽃 보러 진해 한 번 갈까요? 올해는 거기도 다 봉쇄했었대요. 아님 구례가 좋으려나…….
현아가 말을 흐리며 조수석의 창문을 조금 내렸다. 따스한 바람은 꽃향기가 아니라 두엄 냄새를 묻혀 들어왔다.
아이고, 이기 무슨 냄새고. 야이야, 닫아라.
구수하이 좋구만.
똥냄새가 뭐!
종호의 말마다 딴죽을 거는 것은 육십 년 넘게 이어진 옥순의 입버릇이었다. 버릇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졌고 종호의 반응은 그에 균형을 맞추기라도 하듯 흐물흐물해졌다. 옥순이 뒷좌석의 창문을 약간 내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똥냄새라미!
종호가 허허거렸다. 옥순은 못 들은 척했다. 창문을 두 개나 열자 바람은 두 배의 몇 배가 되었다. 옥순의 하얀 머리칼이 바람에 떨었다. 바람이 훑어 올린 이마에 크고 작은 검버섯들이 바위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염색도 커트도 하지 못한 채 석 달 가까이 지났다. 종호가 갑자기 기침을 시작했다. 현아가 서둘러 창문을 올렸지만 한 번 터진 기침은 쉽게 멎지 않았다. 옥순이 자그마한 천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보리차를 따라서 건넸다. 종호는 사레가 들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물을 조금씩 삼켰으나 아차 하는 사이 물이 쏟아져 바지를 적셨다.
알라도 아이고, 그거 하나 똑바로 몬하나! 델꼬 댕기지를 몬하겠다!
옥순이 버럭 성을 냈다. 현아가 조수석의 티슈 상자를 얼른 뒤로 넘겼다. 옥순이 티슈를 뽑아 종호의 다리를 때리다시피 물을 닦아냈다.
그라만 내리? 여게서 내리까?
농반진반인 종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차가 터널로 들어섰다. 졸음을 쫓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조명이 울긋불긋한 빛을 뿜었다. 멀리 하나의 점이 커지는 듯하더니 차는 순식간에 눈부신 초록의 세계로 빠져나왔다.
아직 멀었나?
종호가 멀리서 다가왔다 도망치듯 멀어지는, 푸르러진 산을 보며 물었다.
와! 급하나!
종호가 룸 미러를 통해 현아의 눈치를 살폈다. 현아는 속도를 줄이고 주유소로 진입했다. 입구에 큼지막하게 오늘의 유가가 표시되어 있었다. 지난겨울에 비하면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현아가 내려서 주유구에 노즐을 꽂고 있는 동안 종호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까 집에서 가지.
옥순은 내리지 않는 대신 종호의 뒤통수에 대고 기어이 한 마디를 쏘았다. 돌아온 종호의 손바닥에 손세정제를 동전만큼 짜준 현아는 자신의 손에도 그만큼 짜서 손을 비볐다.
아무껏도 안 만다.
종호가 귀찮다는 듯 말하자 옥순이 재빨리 덧붙였다.
문손잡이 잡는 거 내가 봤다.
현아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국도에는 오가는 차가 별로 없었다. 워낙 한산한 곳인지 통행량이 부쩍 줄어서인지 길은 퍽 여유로웠다. 목적지가 없었다면 이대로 쭉 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목적이라는 것도 바깥 공기를 쐴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멀리 보이는 둥글둥글한 활엽수들의 이파리가 무더기무더기 봄빛을 뽐내고 있었다. 연둣빛과 초록의 중간쯤 되는 맑은 색이었다. 황소 조형물이 나오면 금방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봄빛 때문이었을까, 현아는 조형물도 내비게이션의 지시도 모두 놓쳐 버렸다. 직선으로 이어진 사차선 국도는 유턴 지점이 멀었다. 옥순이 조급증을 내기 시작했다.
저녁 전에 집에 가겠나.
와! 급하나!
종호가 짐짓 궁금하다는 투로 시침을 뚝 떼고 말했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옥순은 입을 꾹 다문 채 종호에게 눈을 흘겼다. 목적지는 유턴을 해서 제법 거슬러온 길가에 있었다. 서청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쇄석이 깔린 넓은 주차장에 차는 한 대밖에 없었다. 현아는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칸에 차를 세우고 내린 다음, 두 사람이 수월하게 내릴 수 있도록 팔을 잡아주었다. 종호와 옥순이 허리를 펴고 서자 두 사람의 장갑 낀 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덧씌워주었다. 팔꿈치로 자동문 버튼을 누른 현아는 열린 문 사이에 서서 두 사람이 천천히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매장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말린 파뿌리는 보이지 않았다. 말린 파뿌리를 사러 이곳에 오자고 한 사람은 옥순이었다. 종호의 기침이 좀체 차도가 없던 터에 말린 파뿌리를 달여서 먹으면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경로당의 누가 전화로 알려줬다는 것이었다. 경로당 문을 닫은 건 이미 석 달 전이었다. 종호가 다니던 복지회관도 그 무렵 폐쇄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집 안에서만 지냈다. 어쩌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올 때도 옥순은 계단을 이용했다. 이십 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 3층을 고집한 사람은 옥순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걸어 다닐 수 있는 높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순이 염두에 두었던 무슨 일은 화재나 정전이었지 감염병은 아니었다.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아흔의 종호나 그 몇 살 아래인 옥순에게는 3층도 무리였지만 못 오르내릴 높이는 아니었다. 옥순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설 때마다 종호에게 자신의 혜안을 잊지 말라고 으스댔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카이.
쫌 잘 알아보고 오지.
종호가 툴툴댔다.
하필 오늘 딱 떨어졌을 줄 알았나.
옥순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의 기세와 달리 시르죽어 있었다.
고여히 야만 고생 시키고.
괜찮아요, 아버님. 오랜만에 드라이브하셨으니 좋잖아요.
맞다. 속이 시원하다. 답답해가 죽는 줄 안 알았나. 겁이 나가 어데 나갈 수가 있어야재.
옥순은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했다.
그래도 지름만 내삐리고, 이기 뭐꼬.
종호는 입맛을 쩍 다셨다. 옥순이 종호의 옆구리를 쿡 쳤다. 종호는 뭔가 더 말하려다 말고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가까웠다. 현아가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에 집중하는 동안 종호와 옥순은 각자의 차창 밖을 마치 처음 보는 풍경이라도 되는 듯 열심히 눈에 담았다. 옥순이 갑자기 신통한 생각을 해냈다는 듯 싱긋 웃으며 머리를 종호에게 들이댔다.
자, 파뿌리! 여게 있다!
할마시가 미나!
종호가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종호는 차문에 몸을 바짝 붙이고 창밖을 보다가 혼자 빙그레 웃었다. 가지런한 틀니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옥순은 창밖을 보며 딴청을 했다. 아까 보았던 모텔들이 가까워졌다. 모텔 간판은 이른 시각임에도 조명을 켜두어 멀리서부터 눈길을 끌었다. 모텔과 도로의 경계석 사이에 심어진 철쭉 무더기가 점점 커졌다. 현아는 룸 미러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눈길이 갔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룸 미러로 현아를 흘깃거리던 종호가 옥순의 팔을 툭 치고는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십년만 젊었어도.
종호가 한숨처럼 나지막하게 말하자 옥순은 빠진 어금니자리가 드러나도록 웃었다.
영감재이가 미나!
옥순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종호는 고개를 돌린 채 다시 한 번 차문에 몸을 바짝 붙였다. 현아는 오른쪽으로 차선을 바꾸고 가속기에서 발을 뗐다. 경계석 사이에 무더기무더기 핀 철쭉이 느릿느릿 다가왔다가 흘러갔다. 제철을 맞은 꽃은 한껏 탐스럽게 피어났으나 옥순의 뺨만큼 붉지는 않았다.(끝)

소설가 이경란
소설가 이경란

◇작가 이경란

소설가.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오늘의 루프 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라면과 홍차와 미자', '요일 팬티 7종 세트' 등 다수의 단편소설을 문예지에 발표했으며, 등단한 해에 노래극 '정선아리랑 여자의 일생'의 각본을 맡아 SAC아트홀에서 초연했다.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