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대의 배경과 함께 보는 미술의 역사 (1)

작년 이맘때쯤 갤러리 투어를 할 목적으로 홍콩에 다녀왔다. 홍콩의 미술관과 갤러리 형태를 공부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는데 갤러리뿐만 아니라 유명 관광지와 박물관도 둘러보며 홍콩이란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뜻깊은 여행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여행에서 얻은 자료들을 토대로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과거 유럽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여행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족과 미술가들이 떠나는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성행했다는 그랜드 투어가 신고전주의 미술에 끼친 영향과 신고전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이탈리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과거 유럽의 많은 미술가와 귀족 계층은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일종의 예술 여행을 특정 국가인 이탈리아로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 그랜드 투어는 16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당시 유럽은 출판업의 발달로 여행에 대한 정보를 종전에 비해 쉽게 얻을 수 있었으며 종교 갈등이 비교적 약해진 때라 여행을 떠나기에 적절한 시기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미술가들과 귀족 청년들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목적이 같지 않았다. 미술가들은 고대 미술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얻어 미술가로서의 비전을 위한 투자라 생각했고 이 과정에서 귀족과의 친분을 쌓아 작품을 판매하고자 했다. 여행을 떠나는 귀족들의 경우에는 여행을 통한 학문과 지식 등을 배우고자 하였으며 훌륭한 미술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자신들의 여행을 그림으로 남겨 기념하고자 했던 심리도 함께 했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하고 귀족 고객을 확보하려는 미술가들과 교양을 쌓으며 자신의 모습을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한 귀족들은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며 이는 신고전주의 미술이 나타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사진: 요한 조파니, 「우피치의 트리뷰나」, 1772-1778, 영국 윈저 성 소장>
<사진: 요한 조파니, 「우피치의 트리뷰나」, 1772-1778, 영국 윈저 성 소장>

◇ 18세기 유럽: 밝혀진 고대 문명과 계몽주의, 새로운 미술사의 등장

앞서도 언급했듯 그랜드 투어는 16세기 무렵 시작되어 18세기가 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것은 과거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 태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당시 남부 이탈리아를 포함해 지중해, 이집트, 근동에 이르기까지 유럽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서 고고학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화산 폭발로 인해 묻힌 폼페이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뤄짐에 따라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과 생활상이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고고학 발굴 조사를 계기로 고전과 고대의 예술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당시의 이상과 이미지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그랜드 투어는 귀족과 예술가들의 이러한 관심을 여행으로 귀결되게 하였고 고전에 대한 취향을 제고하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사진: 18세기 발견 당시 폼페이 유적>
<사진: 18세기 발견 당시 폼페이 유적>

아울러 계몽주의 사상이 대두되면서 기존의 제도와 관습을 이성적으로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이것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이전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그림에서 탈피해 점차 엄격하고 기하학적이며 교훈과 도덕성을 주는 그림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이 또한 신고전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 자크 루이 다비드,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다

신고전주의 미술은 18세기 후반에 시작하여 다비드의 회화와 카노바의 조각에서 정점에 도달한 미술사조이다. 다비드는 많은 신고전주의 화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꼽힌다.

사회, 정치 그리고 구조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혼란과 모순에 처해있던 프랑스에선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개혁하려는 계몽주의 사상이 자연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 다비드는 근대 사회로 나아가는 격변의 시기에 신고전주의 화가로 활동하였다.

다비드는 기존 화단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취향의 로코코적 전통에서 벗어나 당시의 진보적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역사화를 통하여 표현한 화가로 추앙받기도 한다.

르네상스 이후 시대에서는 로마가 유럽 미술의 중심이었지만 다비드 덕분에 프랑스 파리가 로마에 대적할 만한 미술의 중심지를 떠올랐고 결과적으로 유럽 미술의 중심을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지게 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사진: 자크 루이 다비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자화상」, 1794,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자크 루이 다비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자화상」, 1794, 루브르 박물관 소장>

다비드의 작품 중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1801, 빈 미술사 박물관)은 이러한 시대 상황과 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에 열광했던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지지했고, 이 그림을 그림으로써 새로운 황제인 나폴레옹을 찬양하고 있다.

그의 신고전주의 화풍은 색조보다 대상의 경계선을 뚜렷하게 표현해 정밀한 윤곽선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말을 타고 있는 나폴레옹의 구도 자체가 매우 역동적으로 그려져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사진: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1801, 말메종 성 소장>
<사진: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1801, 말메종 성 소장>

다른 미술사조들과 마찬가지로 신고전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당대의 사회와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종교전쟁이 누그러진 시기, 고대 문명이 발굴되면서 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떠나게 된 귀족과 미술가의 그랜드 투어, 계몽주의의 바람 등 여러 사회·정치·문화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신고전주의’라는 미술이 탄생했다.

나새빈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나새빈 기자는 미술사를 전공했다.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서 어렵고 따분하게만 느껴지던 미술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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