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선정작으로 무대에 올려진 '프로젝트 미탁'의 연극 '모이라이 게임'은 관객들에게 그리 편안하거나 친절한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멈추어 곱씹어 보아야 할 사건과 사고들에 대해 참여진들의 리서치와 고민들을 담아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았나 한다.

지난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단 4일간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 '모이라이 게임'을 관람하고 많은 의문점들이 생겼고 함께 관람한 다른 기자들과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 응해 준 배우는 이번 '모이라이 게임'에서 모이라이 역할을 맡은 다섯 명의 배우들 중 가장 나이 어린 김희주 배우다.

단순히 궁금한 점들에 대해 답을 얻고자 질문지를 보낸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답으로 돌아온 김희주 배우의 피드백에는 연극 '모이라이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아래는 연극 '모이라이 게임'의 김희주 배우와 주고받은 1문 1답의 전문이다.

1. 극 중에서 배우들의 본명을 밝히고 자기소개를 하는 이유

개인(나)의 정체성에 통합되는 참사의 기억은 무엇일까?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만들어갈 개인
(나)은 참사의 ‘무엇을’ 선택하여 기억할 것인가? 이 연극의 목표는 위 질문에 대한 논의의 장
을 여는 동시에 참사에 대한 기억과 개인 정체성을 통합하는 예술적 실험이었다.

워크숍을 통해 진행된 참사에 관한 리서치와 논의를 바탕으로 구현된 퍼포먼스 연극으로 참여진들은 참사의 시대에서 각자 개인의 삶에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참사 사건을 리서치한 뒤 결과를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유와 성찰을 언어, 신체, 오브제를 통해 퍼포먼스로 구현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모이라이 게임에서 모이라이 역할을 맡은 OOO입니다.’라고 하는데 이 ‘모이라이 역할을 맡은 OOO’는 자신의 게임이 아닌 타인의 게임에서 모이라이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자신이 준비한 게임에서는 '개인'으로 존재한다.

오늘날 이 참사의 시대 속에서 우리 모두 서로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지극히 개인, 완벽한 타인이 운명의 실타래를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관객들이 ‘이것이 실제인지 연기인지 모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한 이유도 있다.

2. 시간과 운명을 강조하는 이유

시간은 어떠한 지점에서 강조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두 개의 게임에서 ‘시간’에 대한이야 기들이 나와서 강조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연 내에서 강조한 시간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이지 않을까. '지금-여기' 공연 시작과 끝은 극 중 '말판을 거니는 유령'의 지금 여기로 마무리된다.

관객들과 함께 ‘지금-여기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시나요?’라는 사유의 장을 열고자 했다. '모이라이 게임'에서 배우들은 각자 모이라이 역할을 맡는다. 모티브를 얻은 모이라이는 그리스신화에서 운명을 다스리는 세 명의 신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참사의 시대 속 우리 모두 서로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참사란 과연 운명과 연결된 것일까 운명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논의도 준비과정 중에 이야기되었고 그런 논의들이 무대화되었다.

3. 각자 준비한 게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각 게임은 워크숍을 통해 발생한 사유들로 구현되었다. 먼저 첫 번째 게임인 '작은 수의 수수께끼'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풀었다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 마지막 수수께끼의 답은 ‘책임’이다. 이 장면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초점을 두었다. 0.001 보다 작은 수들의 나열은 위험해진다는 것을 무심코 넘어가버리는 ‘안일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 게임 '어둠 속의 목소리'는 거대한 참사의 세계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개인의 참사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참사에 처한 개인의 고립감, 소통의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세 번째 게임 '비눗방울 내기'는 비눗방울이 금방 사라지듯 참사에 대한 기억이나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다짐했던 책임지겠다, 잊지 않겠다, 행동하겠다 하는 말들 그리고 분노, 슬픔, 허무한 마음들이 모여 연대했지만 오래가지 않고 금방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혼자서는 금방 잊혀지지만, 잊혀진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고, 그 한 명이 여러 명이 된다면 금방 사라지지 않고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유를 가진다.

네 번째 게임 '아름다운 일상을 찾기 위한 제비뽑기'는 ‘일상성’에 기반을 두고, 평범한 일상이 찢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사로부터 생성되는 일상의 무너짐, 무뎌짐에 대한 사유를 가진다.

다섯 번째 '시체놀이' 게임은 타인(피해자 유가족 등)을 이해 공감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기억과 감정 안에서만 이해할 수밖에 없고 당사자들의 마음만큼 이해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해 이해와 공감을 한다 해도 그들의 아픔과 상실을 동일하게 느낄 수 없다.

이해와 공감을 시도하지만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 우선시되어 그들을 잊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태생적 한계일 것이지만 그렇게 실패를 한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다. 이를 시체놀이에 비유했다. 그리고 게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말판을 거니는 유령'의 게임이다. 그 게임의 규칙은 한 바퀴 돌 동안 결코 되돌아갈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유령은 말판을 도는 동안 수많은 참사를 마주하지만 결코 되돌아가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우리가 참사의 순간을 마주할 때도 그랬듯.

4. 준비 기간

5월 중순 첫 만남을 시작으로 8월 16일 마지막 공연이 올라갔다.

5. 가장 중요하게 준비한 부분 /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

'참사'에 대한 재현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그렇다면 나는 참사의 무엇을 기억해왔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사유를 던져주고 싶었다. 그 사유의 장을 어떻게 이끌어내야 할 것인가를 창작 진 전체가 가장 중요하게 준비했던 부분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이라고 한다면 참사에 대한 사유를 리서치하고 공유하고 논의할 때였다.

참사에 대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이 작업에 참여하기 전까지 깊이 사고해보지 않았다. '참사’에 대해 생각을 하기엔 뉴스만 틀면 쏟아지는 무수한 사건사고들조차 회피하고 싶었다. 이 참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왔고 이 작업을 통해 또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준비 기간 내내 사고했다. 찾아오는 무력감, 준비 기간동안 또 발생하는 끊이지 않는 사건들. 그 사건들이 주는 무력감. 이 무력감을 이겨내고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어려웠다.

6. 공연 소감

코로나로 인해 힘든 이 시기에 공연을 찾아주신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 공간을 벗어난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가고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밤을 보내며 또 다음날, 여러 날들을 지낼 것이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또 사라질 이 게임의 규칙을 기억한다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지금, 여기.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시나요?’

연극 '모이라이 게임' 출연진과 제작진 / 김희주 배우 인스타그램(@gimmethegml) 발췌
연극 '모이라이 게임' 출연진과 제작진 / 김희주 배우 인스타그램(@gimmethegml) 발췌

라이프&컬처팀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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