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1993년에 개봉된 <베를린 천사의 시>의 원제는 <Der Himmel über Berlin>으로 1987년 작품이다. 빔 벤더스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안겨주었다.

독일어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 정도의 뜻인데, 국내 개봉작엔 '천사'와 '시(詩)'가 추가되고 '하늘'이 사라졌다. 독일어의 'über(위)'가 갖고 있는 뉘앙스를 살리는 번역어 쉽지 않았기에 상투적이자 보기에 따라선 창의적인 제목으로 돌아섰지 싶다. 영어 제목 <Wings Of Desire>보다는 한국어제목이 훨씬 나아 보인다.

국내 개봉작 제목에 '천사'가 들어간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의 주인공은 베를린에 '주재'하는 천사 다미엘이다. 다미엘은 홀로 또는 다른 천사 카시엘과 함께 베를린 거리를 돌아다니며 인간사를 지켜보고 가끔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한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스틸 컷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스틸 컷

천사는 영원히 사는 존재이지만, 영원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한 '현재'를 사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느날 다미엘은 공중그네를 타는 서커스단의 곡예사 마리온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인간인 마리온을 동일한 인간으로 사랑하기 위해, 다미엘은 카시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사의 삶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이상이 주요 스토리다.

이 영화는 뚜렷한 경계선 없이 느릿느릿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서사적이라고 하기도 힘들고 서정적이라고 하기도 힘든 방법이 채택된다.

인간과 천사 사이의 사랑도, 경계가 드러내지 않으며 흐릿하게 그려진다. 또한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 역에 현실의 배우를 현실의 이름으로 캐스팅한 넘나듦이 목격된다.

영화는 동서냉전으로 생긴 베를린장벽의 압도적인 음울함과 그 원인 격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 시대 및 시대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고통을 서술하지 않고 보여준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인간다움의 징표이기 때문에 찬미된다.

'베를린 천사'는 그럼에도 왜 인간이 되고자 하였을까. 유한한 존재가 알고 느낄 수 있는 삶의 기쁨 혹은 삶의 비의가 무한한 존재에겐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역설 중에 가장 큰 역설이다. 그러한 역설 속에서도 인간을 무한 동경한다. 마지막 장면은 언어는 언어로서 서술될 수도 있지만 무한은 유한을 통해서만 서술될 수 있다는 역설의 대미이다.

개봉 : 1993.05.15
감독 : 빔 벤더스
출연 : 브루노 간츠, 솔베이그 도마르틴, 오토 샌더, 피터 포크
상영시간 : 130분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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