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맞을래요?”

이상한 말이다. ‘손님’이라는 존칭 뒤에 “맞을래요?”라는 협박이 붙어 있다. 이 말은 한때 대한민국 IT의 중심지였던 용산전자상가를 지칭하는 ‘밈(meme)’이었다.

지난 2007년 한 방송사의 기자는 손님으로 가장해 용산전자상가에서 물건 가격만 물어보고 그냥 나가려 했다. 그러자 매장 주인이 이 말을 한 것이다.

용산전자상가 매장 주인이 손님에게 한 이 협박성 발언은 인터넷으로 크게 이슈가 되며 유행했다. 그러나 이 내용이 충격적이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용산전자상가는 이미 엄청난 상술로 유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는 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제품의 적정 가격을 사전에 알아보지 않고 가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바가지를 쓰기 일쑤였다. 심지어 매장 주인들은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들에게 “얼마까지 알아봤어요?”라고 역질문을 하곤 했다. 이 질문에 말려들기 시작하면 바가지를 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과거 용산전자상가는 강압적인 분위기로 제품을 판매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과거 용산전자상가는 강압적인 분위기로 제품을 판매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한 번 구매한 물건은 환불이나 교환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 번 판매된 제품은 매장을 떠난 순간 중고로 여겨져 환불이나 교환을 요청할 때 구입한 금액의 일부만 돌려주거나 인정해 줬다. 소비자는 더 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구매한 제품이 생각과 다르거나 마음에 안 들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써야만 했다.

그리고 제품 안내에 대한 대가도 요구했다. 소비자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면 반드시 그 매장에서 구매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옆 매장의 인원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불사했다.

이쯤 되니 일반 소비자들에게 용산전자상가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며, 여성은 언감생심 무서워서 가지도 못하는 암흑가 뒷골목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소비자들을 겁박하고 속이고 강매했던 용산전자상가의 소매업 종사자들은 소위 ‘용팔이(용산+판매원)’라는 비속어로 불렸다.

이렇게 악명을 떨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당시 컴퓨터 부품이나 전자 제품을 마땅히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에 용산전자상가를 계속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싸늘한 용산전자상가 사진 = 넥스트데일리 DB
싸늘한 용산전자상가 사진 = 넥스트데일리 DB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인터넷이 발달해 온라인마켓이 활성화되면서 용산전자상가를 찾는 소비자가 급감하였고, 용산전자상가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당시 용팔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최악이었기에 용산전자상가가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이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현재까지 컴퓨터 부품 중간 도매상들이 용산전자상가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제 끊길 위기에 몰렸다. 그래픽카드 수입업체들이 엔비디아의 신제품 그래픽카드인 RTX3080의 물량을 오픈마켓 등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국내 그래픽카드의 가격은 대부분 용산전자상가의 도매상에 의해 결정됐다. 국내 시장이 소규모다 보니 수입업체들이 재고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대부분의 물량을 도매상에 공급했기 때문이다.

도매상들은 특정 그래픽카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굉장히 높은 가격으로 판매했다. 지난 2018년 발매된 RTX2080의 가격은 699달러로 RTX3080과 같은 가격이지만 용산의 소매상에서는 150만원에 가깝게 판매됐다.

소비자들은 이를 보고 ‘용프리미엄’이라며 분노했고, 일각에서는 가격을 높이기 위해 유통업체들이 단합하여 물량을 풀지 않았다는 주장도 했다.

일부의 소비자들은 이런 불합리한 가격에 해당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거부해 AS의 불리함과 배송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감안하고 해외직구를 택하기도 했다.

원활한 유통과 재고의 부담을 덜기 위해 국내 유통업체 맡긴 결과가 국내 판매량 하락의 요인이 된 것이다.

이에 RTX 3080 수입업체의 상당수는 폭리를 취해 국내 유통을 방해한 중간 유통업체를 배제하고, 오픈마켓에 물량을 공급하거나 직접 판매에 나섰다.

판매되는 제품의 가격은 100만원 안팎으로 형성됐고 소비자들은 “‘용프리미엄’에 비해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이라며 반겼다.

반면 용산전자상가를 중심으로 도소매상들은 “일부 유통업체가 폭리를 취하긴 했지만 대부분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며 “유통 자체를 막는 것은 대기업의 자영업자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동안 용산전자상가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고, 눈앞의 이익을 더 좇았다.

그 결과 간신히 붙잡고 있던 자신의 목숨줄을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 결국 끝까지 자정하지 못했던 용산전자상가의 최후. 이들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이호 기자 dlghcap@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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