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위에 스프레이로 표현해내는 예술 ‘그래피티 아트’에는 의외로 높은 진입장벽이 국내에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래피티 아트’를 들어본 사람은 많아도 직접 목도하거나 제대로 접해본 사람은 현저히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항’이나 ‘저항’같은 키워드가 따라오는 이 예술을 한국의 길거리에서 실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의 외국 영화에서도 벽에 ‘낙서’를 하다가 경찰에게 걸려 쫓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래피티’를 여전히 비공식적 예술이나 범법 행위로만 본다면 절대 트렌디한 대중이 될 수 없다고 자부한다. 특유의 젊은 느낌을 가득 안고 거대한 공간 속에 ‘그래피티 아트’를 실감 나게 구현해놓은 전시 ‘스트릿 노이즈’가 열리고 있다. 명확한 구역과 감상 순서가 없는 듯 자유로운 전시 공간 안에서 ‘그래피티 아트’라는 장르 자체에 매료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스트릿 노이즈’의 가장 큰 강점은 분위기와 감성이다. 귀를 사로잡는 중독성 있는 비트의 노래가 자꾸만 머리를 맴돈다. 마치 외국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생각지 못한 ‘뒷골목’에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의 회색 시멘트 빛의 벽과 바닥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중간중간 철조망처럼 생긴 구조물 위에 작품이 걸려 있어 ‘스트릿’ 감성을 한층 더 높여준다. 드럼통 위에 놓인 스프레이는 현장감의 정점을 찍게 한다. 액자 안의 작품은 물론 벽 위에 직접 그려진 작품도 있어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머물던 공간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가장 놀란 점은 ‘작품’의 질감이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듯 촉촉한 스프레이의 질감이 시선만으로도 느껴졌다. 그 질감이 실제인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타 전시와 차별화되는 현장감과 통통 튀는 분위기를 더욱 살려주는 중심이 된다는 점은 틀림이 없었다. 그래피티 아트 특유의 ‘힙’한 감성과 쨍한 컬러감이 팝아트와 연결되는 지점에 있기도 했다. 그 연결점을 이용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어 대중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만족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 층’의 취향을 저격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현장감’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코로나 감염증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로 여행을 갈 수 없는 지금 시점에서 심신이 지친 사람은 점차 늘고 있다. 색다른 시각적 자극과 새로운 경험이 결핍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 길거리 감성을 물씬 풍기는 이 전시는 간접적으로나마 이국적 감상을 깨워줄 것이다. ‘제우스’의 흘러내리는 브랜드 로고 아트는 뜻깊은 메시지는 물론 심미적 기준까지 충족시킨다. 다른 작품들 역시 당장 인스타그램 한편에 올려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트렌디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앞서 ‘그래피티’에 대해 높은 진입장벽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했듯 이 전시를 감상한다면 그 장벽을 어느 정도 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정신과 예술적 가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피티 아트를 비공식적 예술로만 취급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지만, 여전히 ‘저항’과 ‘반항’의 의미 있는 메시지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비판하고 싶은 지점을 꼬집어주고, 그 자체로 ‘저항’의 상징성을 띠고 있는 이 예술은 세상에 꼭 필요한 외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는 꽤나 확장성이 있는 예술이기도 하다.

누군가 밤 사이 그림을 그려놓고 간 듯한 생생함과 젊은 감각을 그대로 전해주는 전시, ‘스트릿 노이즈’는 롯데월드 몰 지하 1층에서 진행되고 있다. 6월 13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니 기회가 된다면 관람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전시장의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세민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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