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야외 전경 (좌)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전시 포스터 (우)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야외 전경 (좌)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전시 포스터 (우)

◇ 불혹(不惑)의 작가들, 13번째 망설임

지난 4월 천안 아라리오의 2021년 두 번째 전시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이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한국 작가들로 구성된 그룹전으로 나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대한민국 최대 경제 성장기인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세대이다.

이 시기 태어난 세대가 가장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을 법한 나이인 ‘불혹’을 전후하여 맞이한 현실이 여전히 불안함과 망설임 속에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서 전시는 시작된다. 이들 13명의 작가는 각자의 작품을 통해 현실의 다양한 문제와 이에 공감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전시 전경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전시 전경

우리가 몸의 일부처럼 여기는 핸드폰이나 일할 때 없어선 안 될 노트북, 그밖에도 여가를 위한 각종 문화생활을 최초로 이용한 세대는 이들 세대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다양한 외래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고 대다수가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지금은 서브 컬쳐의 주 소비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40세를 전후한 나이에 맞이하게 된 현실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마이너스 성장시대, 최악의 취업난, 부동산 가격 급등, 국제적 팬데믹까지 온갖 사회적 악재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물론 이들만 겪고 있는게 아닌 동시대 모두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다. 하지만 2021년의 불혹은 청년도, 중년도 아닌 비좁은 중간지대에서 이들 세대는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듯 보인다. 그들의 눈으로 본 세계를 감상해보자.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작품도 그렇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는 건물 3·4층에 위치하고 있다. 먼저 전시장 3층은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작품의 성격에 따라 구조를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이점이자 특징이다. 4층은 총 3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계단 좌측과 정면 전시장은 독특하거나 조명이 어두운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 공간에 전시되는 작품들 역시 개성적이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것들이 많다. 4층의 가장 큰 전시장은 계단 우측에 있으며 3층 전시 공간과 마찬가지로 유동적으로 작품이 전시된다.

이진주, 「가짜 우물」, 2017
이진주, 「가짜 우물」, 2017

3층에선 안지산 작가를 시작으로 이진주, 김인배, 백경호, 구지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주로 회화가 위주인 이번 전시에선 대규모 작품들이 눈에 띈다. 커다란 캔버스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숨은 키워드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이진주 작가의 ‘가짜 우물’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마름모꼴을 한 3개의 연속된 캔버스에는 각각 어울리지 않는 장소와 상황이 표현되어있다. 기괴하고 음산한 이 작품에서 가장 위쪽 캔버스에 마치 교수님이 앞에 있는 것처럼 익숙한 강의대가 있는데 그 위에 펼쳐진 책에는 마그리트의 ‘연인들’이 그려져 있다. 각자의 민낯은 배제한 채 서로를 욕망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 넣음으로써 과연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백경호, 「천사-5」, 2018
백경호, 「천사-5」, 2018

백경호 작가의 ‘천사-5’는 캔버스 형태부터 눈길을 끈다. 정의할 수 없는 형태의 캔버스에 그래피티를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사람의 얼굴과 날개, 몸체를 캔버스의 형태로 표현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천사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천사에 대한 작가의 직관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전시 전경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 전시 전경

4층으로 올라가면 더 다채로운 형태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3층과 비교했을 때 더 적극적이고 담대해진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는데 드물게 19세 이상만 출입이 가능한 전시 공간이 있어 관람객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계단 좌측 전시 공간엔 심래정 작가와 돈선필 작가의 작품이 같이 전시되고 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돈선필 작가의 작품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캐릭터를 조형물로 축소 재현한 피규어 작품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피규어 작품을 통해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 활동을 표현하고 있다.

노상호,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2014
노상호,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2014

가장 큰 전시실에 들어서면 노상호 작가의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연작이 눈길을 끈다. 2013년 ‘메르헨 마차 프로젝트’ 당시 진행했던 ‘데일릭 픽션’들이 모여 탄생한 이 작품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고 있다.

노상호 작가의 작품들이 알록달록한 채색의 향연을 보여줬다면 맞은편 좌혜선 작가의 작품은 목탄으로 평범한 일상들을 고독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뭔가 낯설어 보이는 공간에선 외로움과 고독함이 엿보이지만 화면에서 빛나는 빛들은 그 사이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이질감과 익숙함, 그 사이의 감정을 빛들을 통해 전달한다.

‘13번째 망설임 The 13th Hesitation’은 현대 미술 전시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매체인 회화가 많다. 회화 작품의 특성상 표현의 범위가 일차원적인 화면에 제한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는 매체 형태이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이들 시선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관람을 한다면 더 흥미로운 관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전시는 2022년 3월 27일까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나새빈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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