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 21일 원자폭탄을 개발한 미국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 슈퍼컴퓨터가 들어왔다. 6개월의 시험가동 기간을 거친 이 컴퓨터는 1977년 3월 4일 정식 가동에 들어간다. 슈퍼컴퓨터시대의 대명사이자 오늘 날까지 살아 남은 슈퍼컴의 전설 크레이의 첫 기종 `크레이-1(Cray-1)`이었다.

크레이-1은 과학계산용으로 만들어졌으며 무엇보다도 방위산업체들의 복잡한 무기시스템 개발용으로 만들어졌다. 가격은 무려 1900만달러.

이 컴퓨터는 혁신적인 내부 설계와 예술적 터치, 빨라진 연산속도로 화제를 모았다.

위에서 봤을 때 ‘C’자 형태로서 마치 원형 케이크를 반듯하게 잘라놓은 것 같았다. 이 디자인은 컴퓨터에 사용되는 전선의 양을 크게 줄여주었다. 높이 210cm, 지름 270cm에 패키징 무게가 5톤인 이 컴퓨터는 115KW의 전기를 잡아먹었다.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컬러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크레이-1은 IBM,컨트롤데이터(CDC) 등이 이끌던 당대의 최고 컴퓨터에 비해 엄청나게 단촐해진 컴퓨터였다. 하지만 초당 연산 속도는 10배 정도 빨라진 133메가플롭스(1억3천300회연산)를 자랑했다.

이 슈퍼컴 개발에는 집적회로(IC),벡터 레지스터 기술, 프레온가스 냉각 기술, 마그네틱 증폭기술 같은 당대의 혁신적 기술이 총망라됐다.

크레이-1 슈퍼컴. 사진=위키피디아
크레이-1 슈퍼컴. 사진=위키피디아

크레이-1개발자인 시무어 크레이는 컴퓨터회사 컨트롤데이터(CDC)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보다 뛰어난 성능의 과학용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퇴사한 후 위스콘신주 치프와 폴스에 크레이컴퓨터사를 설립해 개발에 몰두한다.

1975년 1월. 시무어 크레이는 로스앨러모스연구소를 방문해 자신이 개발한 흥미롭고 멋진 새 컴퓨터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연설을 들은 로스앨러모스 과학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과학 계산용 컴퓨터가 바로 이 컴퓨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크레이-1컴퓨터였다.

로스 앨러모스연구소는 미 상무성으로부터 이 컴퓨터구매허가를 받았지만 구매 비용이 없었다. 1년 밖에 안된 신생업체 크레이는 이 컴퓨터를 팔지 못하면 회사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었지만 회계년도 중간에 자금이 나올 구멍은 없어보였다. 크레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6개월간 컴퓨터를 무료로 사용한 후 돈이 마련되면 대금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크레이는 로스앨러모스연구소에 크레이-1을 공급하게 된다.

시무어 크레이의 크레이-1 슈퍼컴 성공은 이후 나올 다른 슈퍼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크레이는 컴퓨터 설계시 단순화를 최고의 설계철학으로 삼았다. IBM은 크레이-1을 통해 더 적은 RISC칩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슈퍼컴퓨터 산업계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세이무어 크레이는 불행히도 1996년 9월 콜로라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후 그의 회사는 실리콘그래픽스(SGI)에 매각됐고 이 회사는 2000년 다시 테라컴퓨터회사에 합병됐다. 이 해 테라는 사명을 크레이리서치로 바꾸고 크레이컴퓨터란 이름도 되살린다.

슈퍼컴의 살아있는 전설 크레이 슈퍼컴 개발자 시무어 크레이. 그는 슈퍼컴업계의 에디슨으로 불린다. 사진=컴퓨터역사박물관
슈퍼컴의 살아있는 전설 크레이 슈퍼컴 개발자 시무어 크레이. 그는 슈퍼컴업계의 에디슨으로 불린다. 사진=컴퓨터역사박물관

크레이의 X MP슈퍼컴퓨터. 사진=컴퓨터역사박물관
크레이의 X MP슈퍼컴퓨터. 사진=컴퓨터역사박물관

크레이가 2009년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공급한 크레이XT5(재규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에 올랐다.사진=위키피디아
크레이가 2009년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공급한 크레이XT5(재규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에 올랐다.사진=위키피디아

크레이사가 2009년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공급한 크레이XT5(재규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에 올랐다. 재규어는 이듬 해 1테라플롭스의 성능의 중국 톈허-1A(Tianhe-1A)에 추월 당할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성능의 슈퍼컴이었다.

2012년 10월 크레이는 엔비디아 케플러GPU를 지원하는 20페타플롭스의 크레이XK7(타이탄)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자리에 올랐다. 이듬 해 중국의 톈허-2가 이 자리를 넘겨받았다.

크레이-1 이후 수많은 슈퍼컴퓨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크레이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상업용 슈퍼컴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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