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후략)
- 민영규 ‘예루살렘 입성기’ 중에서 -

도심에 낯선 사냥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바쁜 걸음으로 거리 곳곳을 뒤지며 사냥감을 찾는다. 과거 사냥꾼들이 들고 다니던 지도나, 나침반이나, 수렵용 총이나, 포획용 그물 따위는 휴대하지 않아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행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냥꾼이다. 다른 사냥장비 대신에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들고 있지만 명백히 그들은 사냥 중임에 틀림없다.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난 전자지도를 보고, 지도에 나타난 표적의 좌표를 향해 서서히 다가선다. 순간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낀다. 사정거리 내에 목표물이 포착되었다. 녀석은 나름 희귀 몬스터에 속하는 망나뇽(Dragonite)이다.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온 신경을 집중하여 포켓볼을 장전한다. 이 녀석 하나만 잡더라도 오늘의 숱한 걸음이 헛되지 않을 듯하다. 휙~!

“Gotcha!!”

‘포켓몬 고(Go)’ 게임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가 2016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모바일 게임 하나가 일으킨 사회적, 문화적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내 유일의 서비스 대상 지역인 강원도 속초 인근은 ‘포켓몬고 태초 마을’이라고 불리며 이 게임의 성지로 각광받게 되었고, 며칠 전 일본 지역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서비스 지역에 포함된 경상북도 포항 주변 역시 각종 SNS에 오르내리고 있다. 순식간에 이들 지역은 포켓몬이 활개치고 사냥꾼이 활보하는 ‘게임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동안 온갖 비용과 아이디어를 쏟아 부으며 벌여온 각종 지역 관광 홍보 및 마케팅은, 지자체 예산 1원 한 푼 투입하지 않은 외산 게임이 가져다 준 방문객 폭증 현상 앞에 빛이 바랬다. 아무도 예견치 못했던 일이 갑작스레 벌어졌다. 예상했던 물때는 아니지만 물이 들어왔으니 노를 저어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장부터 지역 상인까지 합심하여 전방위적인 온타임(On Time) 마케팅을 펼친다. 대대적인 현수막 작업, 게임스팟 지도 제작은 물론, 와이파이 무료지역 확대, 배터리 충전 시설보급 등 아웃도어 게임 인프라 제공을 위한 방안들이 폭주하는 수요자 니즈에 편성하여 착착 추진된다.

관광 행태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더운 여름날 해수욕장에 도착했으나 좀처럼 바닷물에 몸 담글 생각 없이 스마트폰만 주시하고 있다. 일출명소에서는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보다, 바다 위에서 놀고 있는 포켓몬 사진을 담는 데 여념 없다. 포병 출신도 아니면서 3보 이상 차량탑승을 외치며 곳곳에서 차량 정체를 일으키던 사람들마저도, 습득한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서 포켓몬 사냥꾼이라면 마땅히 걸어야함직한 보행거리인 2Km 이상을 기꺼이 걷는다.

스마트폰의 나침반이 포켓몬을 향해 떨리고 있다
모두들 부러운 목소리로 ‘포켓몬 고(Go)’ 의 대박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대중적으로 검증받은 바 있는 캐릭터 집단, 그리고 수집, 육성, 대전을 통한 경쟁요소까지 겸비한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게임 룰은 ‘이런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서 성공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성공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다. 2년 전 만우절 장난처럼 제작되었으나 이제는 게임 예고편 동영상처럼 인지되고 있는 구글의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4YMD6xELI_k) 하나만으로도 기존의 포켓몬 매니아 층은 물론 포켓몬을 접하지 않은 일반 사용자조차도 ‘심쿵’하게 하는 무언가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전 세계 사용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필자가 관심을 갖고 본 부분은 타이틀 뒤에 붙은 ‘고(Go)’라는 단어의 의미다. 게임 속 공간을 ‘현실공간’으로 확장하였다. 게임 캐릭터들은 단순히 스마트폰 화면 속 지도 내에 머물지 않고, 실제 호수와 바다, 산과 계곡, 공원과 관공서, 쇼핑몰과 주택가 등 현실공간으로 뛰쳐나왔다. ‘대문 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실내에만 칩거하던 게이머들 역시 덩달아 아웃도어 환경으로 그들을 따라 나오게 되었다. 게임 속 스토리텔링이,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가 현실화되었다. 몬스터를 잡으러 돌아다니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포켓스톱을 찾기 위해 지도를 열람해서 직접 이동하고, 포켓몬 체육관에 가기 위해서 평생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곳을 찾아 스스럼없이 찾아 나서고, 알을 부화하기 위해서 걷는다. ‘고(Go)’의 의미처럼, 모두가 지금까지 머물던 공간을 박차고 나가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기술의 중심에는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기술이 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꺼진 불'에 속하며, 언급하는 것조차 구닥다리 취급을 받던 AR 기술이 난데없이 주목을 받고 있다.

AR은 간단히 말하자면 ‘방향성’을 중심으로 한 기술이다. 지난 칼럼에서 공간정보의 모든 것이 ‘점’에서 출발하였다고 한 바 있다. 현실공간 속 점(좌표)들을 연결하면 이른 바 ‘방위’라는 속성을 띤 방향성을 가진 선이 하나 형성된다. AR 기술은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포켓몬이나 포켓스톱이 가지고 있는 좌표를 스마트폰의 각종 측위, 지자기, 자이로, 가속도 센서들이 파악하여 사용자가 보고 있는 현실공간 화면 상에 캐릭터나 마커 모양으로 덧입혀 뿌려주는 기술이다. 즉, ‘지피지기면 AR가능’이다. 내 위치를 알고 정보의 위치를 알면, 그 정보를 방향에 맞추어 스마트폰 화면 위에 증강현실 형태로 띄워서 보여준다.

AR 기술은 결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각종 센서를 갖춘 스마트폰 탄생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고 사방을 둘러보면 카메라 화면 위에 커피 모양 마커가 둥둥 떠다니며 주변에 있는 커피전문점의 위치 및 거리를 표시해주었고, 스마트폰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밤하늘 별자리가 펼쳐지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정보를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신기한 새로운 기술로 각광받았었다. 그리고, '포켓몬 고(Go)' 이전에도 AR 기능을 이용한 게임도 여럿 출시되었다. 심지어 포켓몬 고(Go)와 유사한 소재, 방식을 갖춘 게임도 국내에서 출시되었던 사례(2011년, 올레 캐치캐치)가 있다.

AR 기술 자체가 방향성을 중심으로 한 기술이지만, 정작 자신은 그 쓰임의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시장에서 사장될 뻔 했다. 어느 시점부터라고 정확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구닥다리 기술마냥 뒷전으로 밀려나더니 갑자기 기술 관련 이슈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이 대세라면서 AR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유행에 처진 사람처럼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던 AR 기술이 포켓몬 고(Go)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방향성을 찾게 된 느낌이다.

모두가 새로운 게임이 출현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포켓몬 고(Go)’을 엄밀히 분석해 보면 게임 속 등장하는 캐릭터도, 스토리텔링도, 게임 룰도, 기술적인 기능 측면에서도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다. 대부분 이미 있었던 것들, 익숙한 것들의 조합에 불과하다. 결국 성공의 핵심 요소는 서비스를 보는 참신한 기획 시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정보를 어떤 방향에서 접근해서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다. 방향이 바뀌면 익숙했던 것들이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나만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점’을 상상했다면, 그 점과 점이 연결할 방향성을 찾는 것으로 맵에 대한 인사이트는 확장된다. 어떤 방향으로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방향성이 잡히고 나면, 그것에 대한 접근방법은 AR이든 VR이든 근거리 측위 센서든 빅데이터든 상관 없다. 상상을 현실화하는 기술은 나중에 차분히 고민해도 충분하다. ‘포켓몬고(Go)'라는 게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저 게이머에 머물 것인가? 그저 이웃나라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우리의 산업환경을 탓할 것인가? 성공모델이 있으니 아류작을 만들 것인가?

서두에 인용한 시 ‘지남철’는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위 시를 인용하면서 양심을 가진 지성인의 지남철은 항상 떨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자의 지남철 역시 항상 떨리고 있어야 한다. 포켓몬 고(Go)를 보면서 지남철 끝이 떨렸는가? 그렇다면 정상이다. 만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남철 바늘 끝이 불안한 전율을 멈추고 한 쪽에 고정된 채 떨리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더 이상 지남철이 아닌 것이다.

임영모 0duri@naver.com 대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잡지사 기자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출판, 모바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GIS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GIS 분야에서 전통적 GIS보다는 인문학 기반의 다양한 공간정보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활용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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