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국내에 처음 등장한 자선냄비. 사진=휘슬러코리아 제공
1928년 국내에 처음 등장한 자선냄비. 사진=휘슬러코리아 제공

매년 연말이 되면 전국 곳곳에 빨간 냄비가 등장한다. 바로 `구세군 자선냄비`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등장했다. 연말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자선냄비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수프를 끓이던 진짜 냄비가 구세군 자선냄비로 탄생한 것이다.

추운 겨울 배 한 척이 파선 당해 난민이 발생하자 당시 구세군 여성 사관 조셉 맥피(Joseph Mcfee)는 그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 그녀는 예전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주방에서 사용하던 실제 솥을 거리에 내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던 오클랜드 부두의 다리에 이 솥을 내걸었다. “냄비를 끓게 합시다”라며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민들에게 따뜻한 수프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성금이 모였다.

구세군은 이 일을 계기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냄비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현재는 전 세계 124개국에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끓고 있다. 자선냄비로 음식을 끓이는 냄비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굶주리는 이웃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한다는 가치가 전 세계로 퍼진 셈이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구세군 자선냄비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는 약 300개의 냄비가 전국에서 끓고 있다. 이때 사용했던 첫 자선냄비는 `사랑의 손길을 자선남비에`라는 붓글씨 글귀를 달고 한국 구세군에 보관되고 있다.

한국 구세군 자선냄비에도 비밀이 하나 있다. 한국의 자선냄비는 당장 수프를 끓여 식탁 위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진짜 냄비 모양을 갖추고 있다. 매끈한 원통형 몸체에 양쪽으로 뻗은 커다란 손잡이 그리고 음식이 끓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윗면까지.

이런 자선냄비는 2004년 독일 주방용품 기업 휘슬러코리아의 작품이다. 주방용품인 냄비를 만드는 휘슬러코리아는 160여년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자사의 스테디셀러 제품인 프로 냄비 라인을 형상화해 새로운 빨간 냄비를 만들었다. 냄비를 만드는 회사가 구세군 자선냄비를 직접 제작·지원한 셈이다.

현재의 자선냄비. 사진=휘슬러코리아 제공
현재의 자선냄비. 사진=휘슬러코리아 제공

휘슬러코리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길거리 자선 모금을 확대하기 위해 관공서 및 소매상점에서도 손쉽게 기부할 수 있는 `미니 자선냄비`를 제작했다. 2006년에는 `365 사랑의 모금함`을 선보였다. 다음 해에는 기업 기부가 용이하도록 `기업형 자선냄비`를, 2008년에는 구세군 설립 100주년을 기념한 `마스코트 모금함`까지 제작했다.

2009년에는 특별한 변신이 이어졌다. 트럭 내부에 자선냄비 마스코트 모금함을 장착한 `찾아가는 자선냄비` 차량을 구세군에 전달했다. 휘슬러코리아는 국내 결식아동과 무의탁 노인 등 전국 방방곡곡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밥을 전달하는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기도 했다.

자선냄비를 제작, 지원하고 있는 휘슬러코리아는 빨강 동전 자선냄비로 세상을 바꾸는 동전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휘슬러코리아 제공
자선냄비를 제작, 지원하고 있는 휘슬러코리아는 빨강 동전 자선냄비로 세상을 바꾸는 동전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휘슬러코리아 제공

올해 휘슬러코리아는 `빨강 동전 자선냄비`를 한국 구세군에 기증하고,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와 함께 `빨강 동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이용해 기부하면 고객이 자선냄비에 모인 돈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한 활동이다.

이와 함께 휘슬러코리아는 전국에서 잠자는 동전을 모아 기부할 수 있는 저금통 모양의 `빨강 동전 모금함` 2만개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작은 관심이 기부로 이어질 때 더 가치 있는 나눔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짝퉁`과 `진품`을 구별하는 노하우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납작한 원기둥 모양이거나 사각 박스 모양은 짝퉁이며, 구세군 자선냄비 글귀가 적혀있는 붉은색 방패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한국 구세군은 휘슬러코리아의 지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선냄비 상단과 옆면, 손잡이 하단에 브랜드명을 표기해 놓기도 했다.

황재용 기자 (hsoul38@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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