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참깨 들깨 쏟아져
주근깨 자욱했는데

그래도 눈썹 좋고 눈동자 좋아
산들바람 일었는데

물에 떨어진 그림자 하구선
천하절색이었는데

일제 말기 아주까리 열매 따다 바치다가
머리에 히노마루 띠 매고
정신대 되어 떠났다

비행기 꼬랑지 만드는 공장에 돈벌러 간다고
미제부락 애국 부인단 여편네가 데려갔다
일장기 날리며 갔다

만순이네 집에는
허허 면장이 보낸 청주 한 병과
쌀 배급표 한 장이 왔다

허허 이 무슨 팔자 고치는 판인가
그러나 해방되어 다 돌아와도
만순이 하나 소식 없다

백도라지꽃 피는데
쓰르라미 우는데

감상의 글
공장에서 일 하다 붙잡혀 가고, 들에서 일 하다 붙잡혀 갔다. 때로는 일본의 앞잡이인 같은 조선인의 꼬임에 넘어가기도 하고, 또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자원하기도 하였다. 그래, 부모와 고향이 그립지만 꾹 참고 돈을 벌기로 했다. 그래, 조금만 참으면 고향에 다시 올 줄 알았었다. 그러나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 이 순수하고 꽃과 같은 처녀들을 기다린 건 성욕에 굶주린 일본 군인들이었다. 하루에 10명~30명 이상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은 자국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해주기 위해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위안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일본 본토에서 창녀나 윤락녀 등을 모집하여 운영하다가 그 인원으로 감당이 안 되자 점령지 및 식민지의 여성들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조선,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 조선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까닭이다.

정신대를 위안부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그 뜻은 다르다. 정신대는 남성들의 전쟁 동원 등으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정신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인데, 순수하게 일본을 위해 몸을 바친 조선의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위안부도 ‘종군위안부’로도 불리는데 ‘종군’이라는 말에도 자발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위안부’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위안부’라는 말보다는 ‘성노예’라는 말이 더욱 정확하다.

그렇다. 그들은 청춘을 ‘성노예’로 보냈다.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이 병들어 숨지고, 폭격으로 숨지고, 처벌 받아 숨졌다. 종전 후 살아남은 이들도 차마 부끄러워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시의 만순이도 죽었거나 돌아오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공장에 돈벌러 간다고 비자발적으로 일장기 날리며 떠난 만순이는 해방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시인은 반어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사람으로서 겪어서는 안 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도 이제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들이 납득할 만한 사과나 배상이 이뤄지길 바란다. 형식적인 사과가 아닌 독일의 지도자들이 유대인들을 향한 사과와도 같은 사과가 있어야 한다. 또 적당한 금액 선에서 합의를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드리는 ‘배상’ 또한 이뤄져야 한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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