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예쁜꼬마선충이 꿈꾸는 희망

발행일시 : 2017-03-23 00:00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예쁜꼬마선충이 꿈꾸는 희망

몇 번의 단비는 마른 가지 끝에 초록이라는 선물을 남긴다. 이내 건조하고 차갑던 공기가 따뜻해지고 햇살이 제법 따갑고 강렬하다. 문득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른다. 가난과 병, 꿈의 상실로 불안하고 고독한 삶을 살다간 태양의 화가.

“나는 비록 젊음을 상실했지만 아를에서는 젊음과 신선함이 담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이주를 결심한다. 갑자기 파리에 왔던 것처럼 아를로 향했고 그의 그림은 빛을 분해하듯 변화했다. 아를의 환경은 자연의 정확한 색을 만들 수 있었다. 빈센트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의 빛을 캔버스에 담았다.

인간의 정신세계와 자연의 섭리에 대해 고민하는 문화·예술계의 작가와 과학자는 닮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분야의 전문가들은 생각의 관점과 작업 환경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요즘, 기술적인 측면에서 IT기술을 작품과 연계하여 적용하는 작가가 늘고 있으며 표현의 측면에서 두 분야의 전문가들은 모방이나 복제의 행위가 용납이 안 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얼마 전,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책을 낸 서울대학교 유전과 발생 실험실의 젊은 과학자들(서범석 박사 외)을 만났다. 그들은 과학의 길은 재미있고 매력적이지만 반복되는 고된 작업을 오랜 시간 인내해야 하는 험한 학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꼬마선충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오래전 남학생들 대부분의 꿈이 과학자였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그들이 노래 잘하는 이들보다 더 멋있어 보였는데 말이다.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한 예쁜꼬마선충, 서범석 제공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한 예쁜꼬마선충, 서범석 제공>

근래에 유럽을 시작으로 뇌과학 연구에 대한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는 2013년 4월,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라는 뇌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선언했다. 정식 명칭은 ‘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이다. 공동의장으로는 코리 바그만(Cori Bargmann)이 임명되었다. 코리 바그먼은 예쁜꼬마선충(C. elegans) 모델 생물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자이다.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국립보건원(NIH)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 국립과학재단(NSF) 등이 참여하며 예산만 해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처럼 국가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여러 기관과 협업하여 창출되는 빅데이터는 과학, 의학, IT분야 등에 활용될 터이고 다양한 고용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이보다 먼저,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일에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의 동반이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를 지닌 뇌의 신경 회로를 연구하는 일은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들며 성공에 대한 확실성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팔이나 다리가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 팔을 개발하고 뇌파를 감지하여 일정한 행동을 제어하는 등 뇌의 신비를 연구하는 일을 인류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기초과학자 코리 바그만이 연구한 예쁜꼬마선충이다. 엘레간스라고 불리는 이 선충은 투명한 피부를 지닌 1mm의 아주 작고 여린 선형동물이다. 아마도 그의 우아한 몸짓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86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와 100조개에 달하는 시냅스(Synaps)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쁜꼬마선충은 302개의 뉴런과 약 7000개의 시냅스만을 가지고 있다. 생애는 3주 정도로 짧다. 게다가 자웅동체로 단기간에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연구용 동물 모델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2002년, 영국의 분자생물학자인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와 존 에드워드 설스턴(John Edward Sulston), 미국의 생물학자인 H. 로버트 호비츠(H. Robert Horvitz)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들은 꼬마선충을 실험모델로 하여 각 세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분화되며 사멸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 세포 사멸 프로그램(programmed cell death)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를 처음으로 규명했다. 즉 우리 몸의 수많은 세포가 모두 살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완전한 형태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구리의 꼬리나 태아의 성장과정에서 손가락이 형성되는 현상도 이러한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한 예쁜꼬마선충, 서범석 제공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한 예쁜꼬마선충, 서범석 제공>

신비한 인체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주고 있는 예쁜꼬마선충은 흙속에서 살며 지극히 단순한 일만 한다. 주로 먹이인 박테리아를 찾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단순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의지의 동작이다. 풍족한 환경에서는 3일이면 알에서 성체로 완전한 성장을 한다. 꼬마선충은 기특하게도 독자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기생충처럼 누군가에게 빌붙어 살지 않는 ‘자유생활형’ 동물이다. 달리 말하면,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는 개인주의적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1년의 일이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 연구팀은 기생충들이 먹잇감에 달라붙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닉테이션(nictation)’을 기특한 꼬마선충이 하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하게 된다. 원인은 이렇다. 꼬마선충은 우아하게 생활을 하다가 먹이가 부족하거나 온도가 적당하지 않은 환경이 되면 생존의 위협을 감지하여 ‘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선충이 생각을 한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으니, 본능적으로 이동에 대한 필요성을 감지한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꼬마선충은 하던 일을 멈추고 꼬리를 바닥에 붙여 가능한 몸 전체를 들어 올려 좌우로 몸을 흔든다. 이것이 바로 ‘닉테이션(nictation)’이다. 그리고 지나가는 초파리나 벼룩 등을 기다린다. 이러한 행동은 이동에 필요한 동물의 다리나 몸에 부착될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들은 눈이 없다. 예쁜꼬마선충은 환경의 변화를 꿈꾸며 온 몸으로 희망의 몸짓을 한다. 절대 다른 생물에 붙어 기생하지 않는다. 참으로 예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꼬마선충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애정이 깊은 가 보다. 연구결과는 신경과학 분야 권위지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에 실리기도 하였다.

어릴 적 반딧불이에 대한 추억을 시작으로, 칠십 평생 빛의 희망을 그리고 있는 ‘빛의 작가 우제길(1942년생)’의 그림을 소개한다. 한 때는 직선과 곡선, 금속 등을 이용하여 어둠과 빛의 대비를 강렬하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흔을 넘은 지금도 부지런한 빛의 변화를 시도한다. 작은 불빛을 따라 모여든 꽃빛이 봄을 이룬다. 그만의 형이상학적 미감에 그의 감성과 철학이 더해져서 꽃빛의 에너지가 봄날의 세포처럼 숨을 쉰다. 마치 희망을 꿈꾸는 예쁜꼬마선충의 몸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빛으로 봄을 부르다, 우제길 미술관 제공 <꽃빛으로 봄을 부르다, 우제길 미술관 제공>

서정화 fine0419@nextdaily.co.kr | 칼럼니스트 KBS방송국,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생물자원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하면서 미디어와 박물관·미술관, 환경, 공예·디자인 관련 경험을 하였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며 동화작가이다. 민속학, 박물관교육을 전공하였고 다양한 기획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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