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조선은 남한산성에서 45일을 버티다 항복을 한다. 척화파와 주화파를 대표하는 김상헌과 최명길은 청나라로 끌려가 심양의 옥에 갇힌다. 사형수가 머무는 남관에 투옥된 두 사람은 극적인 화해를 한다. 두 사람을 화해시킨 인물이 백강 이경여다. 역시 투옥되었던 이경여는 두 사람의 충정을 상대에게 이해시켰다.

설득의 달인인 이경여는 세종대왕의 7대손으로 조선 최고 명가의 주역이다. 이경여 가문에서는 3연속 문형, 6정승, 9판서가 배출됐다. 성리학에 경도된 사회 배경에서도 문학, 정치는 물론 수학, 음악, 과학 등 다방면에 인재를 쏟아냈다.

충남 부여군은 조선 최고의 명가인 백강 이경여 가문 스토리를 관광 콘텐츠로 적극 발굴한다. 부여를 전략구상기지로 삼고 현실적 자강론을 전개한 백강 이경여 가문을 부여를 대표하는 유교자산으로 발굴하려는 것이다.

<부산 각서석> 백강 이경여가 1657년 북벌에 관계된 상소를 올렸다. 이를 본 효종대왕이 내린 비답 중 한 구절을 손자 이이명이 1700년에 부여의 백강마을 뒷산의 바위에 새겼다.
<부산 각서석> 백강 이경여가 1657년 북벌에 관계된 상소를 올렸다. 이를 본 효종대왕이 내린 비답 중 한 구절을 손자 이이명이 1700년에 부여의 백강마을 뒷산의 바위에 새겼다.

교훈적인 대서사시의 역사 무대는 부여의 백마강이다. 이경여는 49세에 부여에 내려와 아들과 조카들을 집중 훈육했다. 또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부여에서 비밀리에 북벌을 지휘했다.

이경여 가문의 실사구시 가풍은 집안의 흐름인 현실 자강론과 관계가 깊다. 북벌을 위해 현실적인 과학과 기술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이명은 청나라 북경과 만주가 포함된 북방지도를 세밀하게 그렸다. 이경여와 10만 정예병 양성, 효종과 대재각, 이민서의 이순신 등 민족영웅 발굴, 이사명의 12만 화포병 육성 등 이 집안에는 북벌의 큰 움직임이 있었다. 이와 함께 조선의 150년 베스트셀러인 이봉상 도망사건 등 비화도 한 보따리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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