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말했지.
“지도만 들여다보면 뭘 해? 남이 만들어 놓은 지도에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거 같니?”
“그럼,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 나와 있는데?”
“넌 너만의 지도가 없지? 그럼 너만의 지도를 하나 만들어야겠구나.”
- ‘파란 고양이의 물고기 지도’ 중에서 -

필자는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사회 진출 후 여러 분야를 거쳐서 지도와 관련된 업종에 발을 들인 지 이제 10여년이 되었다. ‘GIS(지리정보시스템,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분야 혹은 공간정보 분야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늘 ‘지도’를 들먹이며 풀어서 설명한다. 지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농담 삼아 ‘지도층’에 속한다고 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듯이, 이 분야에도 다양한 업무 형태가 존재한다. 지도를 그리기 위한 각종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들, 재료를 모아서 지도 위에 배열하는 사람들, 지도를 쉽게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드는 사람들, 지도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이런 다양한 분야 중에서 지도에 대한 기획 분야를 맡고 있다. 즉, 어떤 지도를 그릴 것인지를 궁리하는 업무다.

국어국문학 전공과 지도 분야의 업무는 쉽게 교집합을 파악하기 어려운 독특한 조합이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과는 사뭇 다른 배경을 지니고 있다 보니, 업계 십여 년 생활을 통해서 나름대로 독특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측량, 전산개발, 공간정보처리 등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으나, 지도를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게 조합하고 서비스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남다른 인문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지도를 만들어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떤 지도를 들고 어느 곳을 향해 찾아갈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이 분야 종사자로서는 지도 자체가 궁극의 목적일 수 있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는 지도는 편리함을 제공하는 수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눈높이 측면에서,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측면에서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손에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라고 한다. 필자는 ‘지도’라는 망치를 든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모든 것을 보고 접할 때 그것에 대해서 지도와 공간을 기반으로 해석한다. 그러한 습관이 잘못되거나 편협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못이 있고, 그만큼 망치의 역할도 다양한 쓰임이 필요하다. 필자가 손에 망치를 들고 있는 것처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필자와는 다른 종이와 제도연필, 페인트통과 붓, 톱과 끌, 시멘트와 파이프, 전선과 전구 등을 들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함께 짓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못과 망치만으로는 집을 짓지 못하듯이, 각자의 분야를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을 활용하면 더욱 쉽고 즐거운 작업을 통해 멋진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리정보나 공간정보는 결코 특수한 분야가 아니다. 우리가 딛고 서있는 땅과 관련된 정보가 모두 지리정보에 속한다. 땅 위, 땅 속에 현존하는 모든 것이 정보의 대상이며, 그곳에 관련된 사람의 정치․경제․사회 활동 역시 마찬가지이며, 역사․문학․예술도 포함된다. 요즘에는 단순히 땅 뿐만 아니라 육해공의 공간으로 확장되다 보니 공간정보라는 용어로 주로 쓰인다. 법률상의 정의를 옮겨 보면 ‘공간정보란 지상ㆍ지하ㆍ수상ㆍ수중 등 공간상에 존재하는 자연적 또는 인공적인 객체에 대한 위치정보 및 이와 관련된 공간적 인지 및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말한다’(국가공간정보에 관한 법률 제2조)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간과 그 공간에 관련된 모든 정보가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정보는 다른 분야의 정보와 융합되어 또 다른 형태의 정보로 성장하여 활용된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서 지리정보 및 공간정보 분야에 대해 제 나름대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처음에는 지도를 포함한 공간정보에 대한 가벼운 이해에서부터 시작하여, 공간정보를 통한 다양한 활용에 이르는 내용을 다루겠다. 단순히 지도가 지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칼럼 속 이야기를 통해서 이 글을 접하는 독자에게 색다른 정보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도는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다. 하지만, 서두에 인용한 책의 구절처럼 남이 만들어 놓은 지도에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없을 수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 필자와 독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들의 지도를 위한 맵 인사이트(Map Insight)를 가져보기를 꿈꿔본다.

임영모 0duri@naver.com 대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잡지사 기자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출판, 모바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GIS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GIS 분야에서 전통적 GIS보다는 인문학 기반의 다양한 공간정보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활용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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