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들을 커다란 수건으로 감싸서 안고 나온 뒤, 아내가 아들에게 팬티를 입히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몽고반점이 제법 크게 남아 있군. 대체 언제나 없어지는 거지?” 하고 묻지 않았다면.
아내가 “글쎄…… 나도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영혜는 뭐, 스무살까지도 남아 있었는걸” 하고 뜻없이 말하지 않았다면.
“스무살?” 하는 그의 물음에 “응…… 그냥, 엄지손가락만하게, 파랗게. 그때까지 있었으니 아마 지금도 있을 거야”라는 아내의 대답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 한강 ‘몽고반점’ 중에서 -

소설의 주인공은 영상예술가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던 주인공은, 처제인 영혜의 몸에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아내의 ‘몽고반점’ 발언으로부터 멈출 수 없는 치명적인 상상을 시작하게 된다. 단지 점에 불과했던 ‘몽고반점’에 대한 호기심은 그의 머릿속에 씨앗이 되어 심기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 예술적 에로티시즘을 담은 거대한 작품을 기획하고 행동에 옮기게 된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가운데 ‘몽고반점’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회 칼럼에서 필자 스스로 ‘지도’라는 망치를 든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처럼, 문학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버릇을 차마 감추지 못하고 이 구절을 언젠가 공간정보를 설명할 일이 있으면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갈무리해 놓았었다.

모든 것은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단순한 명제이지만, 많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좀 더 풀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공간정보 서비스는 위치정보를 가진 점에 대한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리정보를 포함한 공간정보에 대한 이해는 이 정보를 이루는 데이터의 형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맥도너(A.M.McDonough)가 ‘정보경제학(1963)’에서 ‘정보(Information)는 의미 있는 데이터(Data)’라고 정의했듯이, 공간정보는 의미 있는 공간데이터로 이루어진, 즉 공간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한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공간정보의 기초가 되는, 공간데이터라는 개념의 시작이 바로 소설 속 처제 몸의 몽고반점과도 같은 ‘점(Point)’이다.

공간데이터를 설명하면서 가장 기본적이고 자주 쓰게 되는 용어가 점(Point), 선(Line), 면(Polygon)의 개념이다. 아시다시피 이들은 평면에 도형을 표시하는 단위로,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된다. 높이 값이 있는 점들을 연결하여 선을 그리고, 이들이 면을 구성하면 입체공간의 객체가 된다. 공간데이터는 공간에 존재해야만 의미가 있는 공간 내 그림의 일종이므로, 최소한 점, 선, 면, 이 셋 중 하나의 형태로 존재한다.

공간데이터가 단순한 종이 위에 그린 도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는 ‘좌표’라는 위치정보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모눈종이 위에 찍혀 있는 점은 ‘가로로 몇 번째, 세로로 몇 번째 칸에 찍혀 있다’고 말을 하고, 이를 (x, y) 형태로 나타내곤 한다. 공간정보에서 다루는 공간데이터는 현실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공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x좌표, y좌표)의 형태로 나타낸다. 3차원 데이터의 경우에는 여기에 높이를 나타내는 z 값까지 갖게 되어 (x좌표, y좌표, 높이)의 형태를 띠게 된다. 실제 산업에서는 좀더 복잡한 내용을 포함한다. 공간정보 서비스 개발 실무에서는 다양한 좌표 기준인 ‘좌표계’(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경․위도 이외에도 다양한 좌표계가 존재한다!)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공간정보 데이터 구축 측면에서는 좌표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기준점’과의 위상관계에 대해서 이해해야 하지만, 서비스 기획 측면에서는 일단 공간정보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개념만 파악하면 절반 이상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좌표 등 위치를 가진 점, 선, 면 데이터를 ‘공간자료(Spatial Data)’라고 칭한다. 그리고, 이 공간자료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속성자료(Attribute Data)’ 형태로 연결한다. 인터넷 지도 검색을 통해 어떤 음식점을 검색하고자 한다. 음식점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하고 검색을 실행하면, 해당 이름을 포함한 다양한 상호 목록이 나타나며 지도 상에 마커가 표시된다. 그리고, 그 마커를 클릭하면 주소, 전화번호, 홈페이지, 사진, 메뉴, 사용자 리뷰, 평점, 좋아요 횟수 등의 정보가 나타난다. 전형적인 공간정보는 이와 같이 마커의 위치에 해당하는 ‘공간자료’와 그와 관련된 ‘속성자료’가 결합되어서 제공된다.(그림 1 참조)

그림 1. 공간정보 사례 : 공간정보는 위치를 가진 ‘공간자료’와 그곳에 대한 상세내용인 ‘속성자료’로 이루어진다.
그림 1. 공간정보 사례 : 공간정보는 위치를 가진 ‘공간자료’와 그곳에 대한 상세내용인 ‘속성자료’로 이루어진다.

공간정보에 대한 인사이트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좌표 속성을 가진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점’(그리고 선과 면)에 본인이 제공하고자 하는 자료를 속성자료로 덧붙이면 된다. 개방형 화장실 위치정보를 붙이면 급한 일 처리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공공 화장실 공간정보가 된다. 지역별 매출 통계를 붙여서 수치 규모에 따라 색상을 달리 하면 근사한 매출분석 공간정보가 된다. 움직이는 버스를 나타내는 이동좌표 포인트는 대중교통 도착알림 공간정보가 되며, 빈 방 정보를 등록하면 공간정보 기반의 부동산 중개 사이트가 된다. 과거에 존재했던 각종 고증자료를 더하면 시간 축을 포함한 4차원 개념의 공간정보가 된다.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공간정보 서비스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처제의 몽고반점을 떠올리고 무한상상을 시작했던 것처럼, 일단 좌표를 가진 점을 떠올리고 그 점에 담을 다양한 정보를 기획하면 된다. 그러면, 그 점으로부터 공간정보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무한정 뻗어나가게 되어 있다. 자, 그렇다면 어떤 점에 대한 상상에서부터 시작해 볼까?

임영모 0duri@naver.com 대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잡지사 기자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출판, 모바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GIS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GIS 분야에서 전통적 GIS보다는 인문학 기반의 다양한 공간정보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활용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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