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에 정확하게 우리를 깨워주는 전화가 왔다. 6시에는 직원이 미리 주문해놓은 아침을 트레이에 담아 방으로 가져다준다. 방에 식탁이 있어서 편하게 먹었다. 아르메니아에서 묵은 호텔중 최고의 호텔이다. 예정에 없이 하루 일찍 떠나게 되어 아쉽다.

체크아웃하고 공항가는 택시를 부탁했다. 짐이 줄어서 가방이 많이 홀쭉해졌다. 일정을 하루 줄이는 바람에 아르메니아돈을 더 찾지않아도 돈이 남았다. 돈을 더 쓰더라도 하루 더 머물면 좋겠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왼쪽을 보라한다. 아라랏산이 구름치마를 벗고 하반신을 다 보여주신다. 아라랏을 몇번이나 봤지만 실물로 전신을 보기는 처음이다. 떠나는 우리에게 잘가라고 인사하는듯 하다.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카운터로 갔다. 이번에 일정이 어찌될 줄 몰라서 조지안 에어라인티켓을 며칠전에 샀는데 공항에 와서 보니 에어로플로트항공이 비슷한 시간대에 있다. 조지안에어라인은 아르메니아항공하고 코드셰어가 된 항공사라 아르메니아항공을 탄다. 하여간 비행기를 타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비행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덜컹대며 이륙한다. 불안한 기분이 살짝 들지만 잠시다. 하늘로 날아오르니 괜찮아진다. 30분정도 날아가는데 기장이 방송을 한다. 코카서스산맥을 날고 있으니 창밖을 보란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카즈베기가 보인다. 카즈베기의 뒤편에는 빙하길이 길게도 펼쳐있다. 카즈베기 뒤에 대형 빙하길이 숨어있을줄이야. 아래에서 볼때도 멋진 산이 위에서 보니 더 멋지다.

카즈베기를 보고 감탄을 하며 지나는 순간 왼쪽으로는 엘브루즈가 눈에 확 띈다. 자리를 왼쪽 창가로 옮겼다. 어디서 보더라도 유럽최고봉답게 독보적이다. 언젠간 엘브루즈언저리에 갈 날이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코카서스를 넘어 분홍호수가 보인다. 지난번 바쿠갈때도 궁금했던 호수다. 근처에 인가도 없고 길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보면 신기한 장면이다. 바쿠근처에도 분홍빛 호수가 있었는데 하늘에서 보니 스케일이 장난아니다. 어디인지 궁금하다.

러시아에 들어오니 국토의 풍경이 달라진다. 우거진 수풀이 이어진다. 모스크바로 가까와지면서 도시들도 눈에 뜨이게 많아진다. 고층건물이 많아진다 싶더니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몸살을 하듯이 착륙한다. 무사히 도착해서 고맙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입국수속하고 짐찾고 나오니 마중오기로 한 숙소기사가 안보인다. 숙소이름을 적은 기사가 기다릴거라 하더니 없다. 숙소에 전화하니 공항건물밖으로 나와서 기다리란다. 밖으로 나와도 안보인다. 편하게 가려고 택시비보다 두배나 비싼 픽업을 요구했는데 더 힘들게 되었다.

모스크바에 8박9일동안 머무려고 아파트를 예약했다. 놀망놀망 모스크바시민흉내내면서 지내볼까 싶다. 붉은 관장근처 메트로타기 좋은 곳으로 선택했는데 다행히 아파트도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짐을 풀고 동네마실가듯이 시장보러 나갔다. 수퍼에 김 간장 라면 초코파이까지 다 있다. 배추도 있다. 고추가루도 판다. 이쯤되면 한국아줌마 본능이 살아날만 하다. 배추2포기와 이것저것 간단히 샀는데 7만원정도 나온다. 서울물가하고 비슷할듯 싶다.

숙소로 와서 배추절이고 쌀도 불리고 마늘 양파 파 다듬고 디포리도 푹 우렸다. 젓갈이 없어서 디포리를 푹 고아서 쓰기로 했다. 뚝딱뚝딱 얼렁뚱땅 김치를 담았다. 삼겹살햄을 마늘 양파와 바짝 구으니 기름이 한바가지 나온다. 기름 쭉빼고 바삭하게 구었다. 간단하게 차렸지만 우리에게 진수성찬 못지않다. 이른 저녁을 먹으니 뿌듯하다.

붉은 광장까지 산책나갔다. 건물들도 깔끔하고 사람들은 세련되었다. 유럽대도시못지 않다. 남편은 20년전하고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계속 놀란다. 20년이면 강산이 두번 바뀌는 세월이다. 도시하나가 충분히 둔갑할만 하다.

붉다는 러시아 말은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이기도 하단다. 아름답고 큰 광장이다. 레닌묘지 앞에서 레닌을 읽으니 남편이 공부시킨 보람 있다고 웃는다. 꼴랑 5자 읽었는데 팔불출남편이 따로 없다.

성바실리 대성당은 사진처럼 아름다운데 생각보다 작다. 묘지도 성당도 입장시간이 지났다. 내일 낮에 시간 맞춰서 다시 와야겠다. 설렁설렁 걸어서 굼백화점을 지났다. 경비가 입구에 서있고 사람들이 들어간다.

카잔성당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서 모스크바입성기념 촛불을 밝혔다. 러시아정교는 십자가모양이 다르다. 정교의 금욕적이고 청빈함이 나는 좋다. 작년에 쿠레마에수도원에 가서 푹 빠져버렸다. 모스크바있는 동안 하루에 한번씩은 러시어정교의 매력에 빠져봐야겠다.

남편하고 살랑살랑 걸어서 과일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먼길 돌아서 도착한 모스크바에 둥지를 틀고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 여행은 시련이다. 내 작은 보금자리를 행복한 느낌으로 만들어주는 시련이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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