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여행의 마무리는 시장견학이다. 현지 시장 견학이 빠지면 앙꼬없는 찐빵이다. 더구나 동경에는 여행자들이면 꼭 들르는 유명한 시장이 있다. 어젯밤 늦게까지 동경을 누비고 다니느라 피곤하지만 마무리를 안할 수 없다. 다들 퉁퉁 부은 얼굴로 아침 6시에 로비에서 모였다. 하나같이 얼굴에는 딱 한마디가 적혀있다.
'더 자자'
잠은 집에 가서 실컷 자기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호텔문을 나섰다. 바깥공기를 마시는 순간 기분이 급 달라진다. 엄마들의 힘이다. 삼십년동안 가족들 아침밥 해먹이던 힘이 불끈 솟아난다.

츠키지 시장
츠키지 시장

츠키지시장까지 걸어갔다. 도시가 부시시 잠 깨는 시간이라 한적하고 여유롭다. 이 호텔로 정한 가장 큰 이유가 시장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이 가까워오니 북적이기 시작한다. 장보러 온 상인도 눈에 뜨이고 캐리어 끌고 온 여행객들도 많이 보인다.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한다.

삶의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참치경매시장은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가 없단다. 더 이른 새벽부터 열기도 하지만 그만큼 참치경매시장이 중요한 행사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참치해체작업은 볼 수 있단다. 츠키지시장의 하이라이트는 군것질이다.

복숭아가게
복숭아가게

아기엉덩이처럼 예쁜 복숭아를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게 씻어서 잘라준다. 계란지단을 상자처럼 만들어 그 자리에서 꼬치를 만들어준다. 가리비조개위에 토핑을 잔뜩 얹어 구워준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해산물간식이 모여있다. 골목마다 미식자극하는 메뉴로 단장한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한국말로 메뉴설명까지 해준다. 한끼니먹고는 절대로 만족되지 않을 식당순례지다. 담에 오면 시장 옆에 집 얻어서 매끼니마다 한달 동안 사먹고싶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쯔키지시장을 떠났다.

강변산책로
강변산책로

강변산책로를 따라 호텔 쪽으로 걸었다. 조깅하는 외국인도 있고 간간이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걷기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심하게 한적하다. 그늘 없는 산책로에 해가 나오니 괴롭다. 호텔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울상 짓고 가는 아이도 있고 붕붕 떠서 기분 좋게 뛰어가는 아이도 있다. 등에 맨 가방에 안전 커버를 씌운 것이 인상적이다. 호텔 앞 오래된 카페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커피 파는 가게라 들어갔는데 분위기 딱 우리 취향이다.

40년된 다방
40년된 다방

40년된 가게란다. 노래도 40년된 노래가 나온다. 커피만 마시려다 모닝세트를 시켰다.

할아버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빗자루질까지 다하신다. 카메라를 갖다 대면 귀엽게 웃어주기까지 하신다. 에어컨도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40년된듯 정겹다.

테이블 3개와 주방에 붙은 바가 다인 작은 가게다. 귀가 안들리시는지 뭐라 물으면 귀에 손을 갖다 대고 크게 만드신다. 긴 대화는 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 긴 감동을 주고 받았다.

동경 시내 마지막 투어를 감동으로 마무리했다. 호텔로 돌아와서 체크아웃시간까지 꽉 채워 각자 방에서 푹 쉬었다. 더이상 동경 시내를 다닐 의욕이 없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했다. 그릇은 적당히 채우는 것이 좋다. 넘치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나리타공항은 일찍 도착해서 즐기기 좋은 공항이다. 식당도 다양하고 쇼핑가에도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체크인 프론트가 열리기 전에 식당에서 라면을 먹었다. 이번 일본여행에서 처음 먹는 라면이다. 사람들은 일본라멘을 줄 서서 먹기도 한다는데 유명라멘가게에 가서 먹어도 난 그냥 그렇다. 라면은 역시 우리나라 라면이 최고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밤이 깊다. 10시42분 공항버스를 탔다. 앞에 타는 흑인때문에 기사님이 황당해하신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디에서 내릴지를 모른단다. 콩고에서 온 알렉산드리아란다. 내가 물어보니 유게스트하우스에 간단다. 어디인지 아냐고 물으니 서울시내 나가서 택시 타고 가면 된단다. 택시기사님 중에서 게스트하우스로 쉽게 모셔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색해서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하니 안받는다. 내가 걱정하니 그제야 알렉스도 걱정을 한다. G메일이나 왓쯔앱으로 연락하면 된단다. 내 전화기로 테더링해주고 메일하고 챗을 해보라고 했다. 와이파이 연결하자마자 신나게 친구들하고 채팅을 한다. 야경사진까지 찍어서 보낸다. 태평함의 끝을 봤다. 자정 시간의 서울시내분위기를 아는 나만 속이 탄다. 게스트하우스홈페이지에서 주소를 찾아서 지도 검색을 해보니 압구정역에서 내리면 된다. 알렉스에게 압구정역에서 내려 게스트하우스가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머리는 좋은 친구인지 금방 알아듣는다. 버스에서 내릴 때 다시 길을 알려주었다. 내가 짐이 없고 낮 시간이면 데려줄텐데 내 코가 석자다. 알렉스한테 블락수까지 알려주고 다시 당부를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알렉스가 내리자마자 숙소주인으로부터 전화했냐면서 전화가 왔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3일째 콩고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알렉스의 천진함을 아니깐 상황이 이해가 된다. 주인에게 대로변으로 나가보면 알렉스를 바로 만날거니 나가보라고 했다. 밤늦은 시간에 고생이 많은데 한국이 처음인 외국인을 방치할 수는 없다. 집에 도착해서도 걱정인데 주인이 문자를 주셨다. 무사히 잘 도착했으니 걱정말란다. 알렉스가 좋은 숙소 주인을 만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안심이 되니 그제야 피로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침대가 나를 태풍의 눈처럼 끌어당긴다. 그대로 침대의 품에 빨려 들어갔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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