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서 잠을 설치다 다시 잠이 들었다. 실컷 자고 일어나니 11시다.

대시장 입구
대시장 입구

주섬주섬 챙겨 입고 대시장으로 갔다. 들어서는 순간 활기가 느껴진다. 대형 시장은 다 있는듯 싶은데 지저분하지가 않다. 혼자 서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있는 아저씨가 있다. 관광객인 듯 보여서 안심하고 사진 찍어달라니 미스터빈 빙의한 표정으로 외면한다. 순간 멘붕상태로 잠시 돌입했다. 자신감상실로 그냥 시장 사진만 찍기로 했다. 사람들이 셀카봉 들고 다니는 이유를 알겠다.

대시장 내부
대시장 내부

시장 2층은 먹자골목이다. 점심은 근사한 식당 가서 먹으려던 계획이 와르르 무너졌다. 섹시한 자태를 뽐내는 음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먹었다. 남대문시장에서 먹는 느낌이다. 레모네이드를 시켰는데 핫와인이 있어서 또 시켰다. 겨울에 핫와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계피 등 약재를 넣고 데운 핫와인은 먹는 순간 몸이 노곤하게 데워진다.

핫와인
핫와인

겨울이면 그리워지는 핫와인이다. 부다페스트 길거리에서는 수시로 만난다.

시장을 나와서 바찌거리로 갔다. 부다페스트여행의 중심거리답게 북적거린다. 보행자거리전체가 블랙프라이데이 물결로 출렁댄다. 짐 들고 다닐 걱정만 아니면 사고싶은것이 차고 넘친다. 참아야하느니라를 주문처럼 외웠다.

바찌거리 성당
바찌거리 성당

성당이 보여 들어갔다. 관광객들이 오는 성당은 아닌지 썰렁하다. 촛불을 밝히려고 보니 잔돈이 없어서 2천포린트를 넣고 초를 왕창 밝혔다. 부모님들 위해 빌어드리고 남는 초로 세계평화까지 빌었다. 다시 거리로 나와서 아이쇼핑을 계속했다. 인내심테스트하는 기분이다. 결국 참지못하고 목도리 하나를 샀다. 가볍게 입고 나왔더니 생각보다 날씨가 싸늘하다. 백 번은 참고 샀으니 명분도 충분하다.

길을 건너서 벨바로시 성당으로 갔다. 엘리자베스다리옆에 크게 자리잡은 성당이다. 입장료를 천포린트 받는다. 그래서인지 안이 썰렁하다. 덩치 좋으신 아저씨가 설명을 잘해주신다.

성당지하 로마유적
성당지하 로마유적

아직도 발굴 중인 로마유적위에 세워진 성당이란다. 복원중인 프레스코화를 보여주고 지하유적지를 직접 안내해주신다.

벨바로시성당 지하 로마시대 난방시스템
벨바로시성당 지하 로마시대 난방시스템

로마시대 난방시스템이 그대로 보인다. 한국에서 왔다니깐 통일이 멀지않았다며 위로해주신다. 우리는 분단 상태로 오래 지내서 둔감한데 외국인에게는 더 비극으로 보이는듯 싶다. 시간이 해결해줄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신다. 성령의 은총을 받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블랙프라이데이 물결로 가득한 시내
블랙프라이데이 물결로 가득한 시내

시내는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시장이 열려서 활기에 넘친다. 삭막해진 계절을 사람들이 활기롭게 만든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업 된다.

배 나온 경찰
배 나온 경찰

배 나온 경찰아저씨동상이 보인다. 얼마나 배를 만졌는지 배가 빤질거린다. 사진 찍고있는 아가씨에게 부탁해서 사진 한 장 건졌다.

성이슈트반대성당으로 갔다. 입구광장에는 크리스마스시장이 크게 열렸다. 헝가리음식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다양하고 구미에 땡기는 것이 많다. 사진 찍고있는 동양인 커플이 있어서 사진을 부탁했다. 남자가 연예인처럼 잘생겼다. 어디서 본 듯싶기도 하다. 사진 찍고 영어로 물어보니 한국에서 왔단다. 연예인일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귀한 인증샷을 얻었다.

성이슈트반 대성당 내부
성이슈트반 대성당 내부

대성당으로 들어가니 유명한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다. 관광객들도 많아서 사진 찍으려면 줄을 서야할 정도다. 금요일 밤에 오르간연주회를 한다는데 저녁8시에 한단다. 내일 아침 먼 길 떠나려니 늦은 시간이 부담스럽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첨탑으로 올라갔다.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보니 평범한 유럽도시들하고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올라와보니 기분은 좋다.

크리스마스 시장
크리스마스 시장

대성당을 나와 크리스마스시장을 찬찬히 구경했다. 예쁜 것이 너무 많다. 다시 주문을 외웠다. 크리스마스전에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온다. 참자 또 참자. 주문이 물거품이 되었다. 조끼 겸 목도리 겸 4가지로 탈바꿈하는 가디건이 내 주문을 풀었다.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옷이란다.

다시 주문으로 무장하고 식당을 찾았다. 근처 1위 맛집이라고 찾아갔더니 마카롱가게다. 허무했지만 주스와 마카롱을 먹었다. 1위할만은 하다. 즉석에서 구운 마카롱이라 속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하다. 크리스마스시장을 지나면서 핫와인을 한잔 샀다. 걸으면서 마시니 춥지도 않고 딱 좋다. 약간의 알콜기운덕분에 기분도 좋아진다.

세체니다리에서
세체니다리에서

세체니다리쪽으로 살랑살랑 걸었다. 다리입구에서 훈남 2명을 만났다. 한국에서 온 학생이란다. 잘생긴 총각들이 착하기까지 하다. 모처럼 말문터진 주책아줌마 이야기 다 들어주고 사진도 막 찍어준다. 아들하고 여행 온 기분이다. 울아들도 내 말 잘들어주고 잘 달래주는데 결정적으로 여행을 싫어한다. 어릴 때부터 하도 끌고 다닌 부작용이니 내 탓이다. 울 애들이 급 그리워졌다.

두 청년 덕분에 세체니다리를 즐겁게 건넜다. 청년들은 부다성으로 올라 갈거란다. 저녁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시간이 맞지 않다. 엄마 된 기분으로 주머니에서 잡히는대로 커피사서 마시라고 4천포린트를 줬다. 한사코 사양하는데 나를 이길수는 없다. 헤어지자마자 후회했다. 더줄걸... 맛있는 저녁먹을만큼 줄 걸 그랬다.

아직 헝가리돈이 익숙치않은 탓이다. 아줌마의 부다페스트여행은 기승전온천이다. 부다페스트 최초의 온천이라는 루다스온천으로 갔다. 강변을 따라 내려갔다.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있다. 강변산책로는 길을 한번도 건너지않게 잘 만들어져 있다.

남자만 대욕장 입장 가능
남자만 대욕장 입장 가능

온천매표소로 가니 오늘은 대욕장에 남자만 들어가는 날이란다. 대신 다른 건 다 할수가 있단다. 목욕하러와서 그냥 돌아갈수는 없다. 들어가길 잘했다.

옥상 노천탕에서 보는 다뉴브강
옥상 노천탕에서 보는 다뉴브강

루다스온천의 하이라이트는 옥상노천탕에서 보는 경치다. 최초의 온천이라고 해서 낡은 온천일 줄 알았는데 새로 단장을 했는지 현대느낌이다. 락커룸 레스토랑 사우나 등 시설들이 산뜻하다. 경치와 온천을 즐기고 난 후에 생오렌지쥬스까지 드링킹하니 몸안구석까지 깨끗해진 느낌이다. 여자가 대욕장 입장 가능한 날에 다시 와야겠다. 기분 좋게 엘리자베스다리를 건넜다. 부다와 페스트를 잇는 3개의 다리를 걸어서 다 건넜다.

기분 좋게 숙소로 왔다. 4층 썰렁한 내방에 들어오니 조용하다. 4층에 방이 4개가 있는데 다른 방 손님들은 다 밤나들이 나간 모양이다. 부다페스트는 펍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안봐도 비디오다. 지난밤에도 자정이 넘어서 다들 들어오던데 오늘밤도 새벽이 시끄러울 것이 짐작된다. 시차때문인지 온천욕 때문인지 나른하고 졸린다. 일단은 자자.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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